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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추천작가 - 중앙대 홍태호] “전단지 버리죠? 저는 그걸로 기억 엮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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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6호 김금영 기자⁄ 2016.03.28 10:59:34

▲홍태호 작가.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이 가까워지면, 자동차로 변하는 트랜스포머의 범블비처럼 내 나름의 변신술에 들어간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움츠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광고전단지를 피하기 위해서다. 5분도 안 돼 내 손을 떠날 광고임을 알기에.

그런데 홍태호 작가는 이런 전단지를 반긴다. 다른 사람들이 하찮게 여겨, 즉각 버리는 전단지나 명함이 그의 작업에서는 중요한 재료가 된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한 장 더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전단지 알바를 하는 사람에겐 별나고도 반가운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버려진 물건들로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콜라주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원래 평소에도 다 쓴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어렸을 때부터 정리한 물건이 방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모은 전단지와 명함, 잡지 등은 색깔별로 분리해 놓는다. 이런 정리와 분류에 꽤 시간이 걸리지만 작업의 첫 과정이다. 그림을 그리기 전 물감 정리를 하는 것처럼 분류해 놓고, 이후 큰 패널에 자른 전단지, 명함 조각을 차곡차곡 붙이며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나간다.

버려진 물건을 사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까워서다. 그런데 아까운 이유는 그리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정보, 이미지 등 하루가 빠르게 모든 게 소비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1분, 1초마다 잊히는 존재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됐다.

▲홍태호,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북정마을 217-80’. 패널에 혼합 재료, 116.7 x 91cm. 2016.

“처음엔 단순한 습관이었어요. 카페나 음식점에 가면 해당 장소에 있는 명함을 한 장씩 꼭 뽑아왔죠. 제가 그 장소에 있었다는 증표라고나 할까요? 버스표도 버리지 않고 모았어요. 제가 간 장소들의 흔적이니까요. 그런데 이 장소들 중 일부는 어느 날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당연시 됐던 일상이 갑자기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잊히는 현상도 묘하게 느껴졌어요. 익숙했던 버스표가 점점 사라지고, 몇 년 사이에 카드로 대신 찍는 게 보편화된 것처럼요.”

매일 수없이 생산되고 버려지는 전단지, 명함은 이런 현상을 작가에게 더 여실히 느끼게 했다. 잊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런 현상을 보편화시킨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고찰을 그는 ‘희생양’ 시리즈에 담았다. 이 시리즈에는 만화 ‘심즈’의 번즈, ‘스폰지밥’의 집게사장 캐릭터 등이 등장한다.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자로 칭송받는, 금수저 중에서도 ‘갑 오브 더 갑’ 캐릭터다.

▲홍태호,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63-36 대영이발’. 패널에 혼합 재료, 116.7 x 91cm. 2016.

“번즈와 집게사장 모두 돈이 주인이 된,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캐릭터들이죠. 그런데 돈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 금세 잊힐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닌 존재이기도 해요. 하물며 번즈는 스스로의 힘으로 치약도 짜지 못해요. 버려진 전단지와 명함의 조각들을 패널에 붙이고 붙여서 이 캐릭터들의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캐릭터의 형상이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전단지밖에 보이지 않아요. 시야에 따라서도 존재가 잊혔다 나타났다 하는 거죠.”

작은 전단지-명함이 모여 만드는 기록 

‘주소’ 시리즈에도 점점 잊히는 존재를 기억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최근 가장 주력하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작가는 경기도 시흥에서 16년 동안 살았다. 실제 고향은 서울이지만,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제2의 고향이자, 작가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소중한 장소로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자본의 흐름에 따라 이 공간이 재개발 바람에 휩싸였다. 개발 예정이 잡히더니 여기저기 공사가 시작되면서 동네에 드릴 소리와 먼지가 가득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 와서 초, 중, 고 그리고 미대를 진학하기 위해 다녔던 화실까지, 저는 현재 사는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어요. 그런데 개발 계획이 잡히면서 제 기억 속의 장소들이 하나 둘 변해가고, 없어지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지금이야 제가 기억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제 기억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겠죠. 그래서 처음엔 제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작업을 하려 했어요. 그런데 또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런 안타까움을 가진 사람이 저 혼자뿐일까, 다른 사람들 또한 이런 안타까움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홍태호, ‘희생양 미스터 번즈(Mr. Burns)’. 패널에 혼합 재료, 84.1 x 59.4cm. 2015.

▲홍태호, ‘희생양 미스터 크랩(Mr. Krabs)’. 패널에 혼합 재료, 72.7 x 60.6cm. 2015.

이런 생각에 작가는 추억을 상기시키는 작업을, 혼자만의 추억에서 타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확장시켰다. 자신의 동네뿐 아니라 철거 예정인 장소들을 직접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 자료 조사를 통해 30군데 정도 리스트를 뽑았고, 매 주말마다 한두 곳씩 방문 중이다. 현재까지 약 15군데를 찾아갔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소를 물어보니 의외의 장소가 나왔다. 비싼 땅값과 화려한 건물들로 유명한 강남이다.

“강남은 인상 깊었던 장소예요. 일반적인 이미지는 화려하잖아요. 그런데 강남에도 재개발 지역이 있더라고요. 화려한 거리를 벗어나 조금만 더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공간이요.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구역인데, 판자촌과 비슷한 형태로 10가구 정도가 살고 있었어요. 그곳 또한 몇 년 뒤엔 사라지고 잊히겠죠. 저도 ‘주소’ 시리즈 작업 이전엔 존재조차 몰랐던 장소였어요. 제 작업을 통해 그림에서나마 영원히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조각, 한 조각 붙여나가는 과정을 이어가고 있어요. 그림에서 부활해 다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라질 장소를 함께 기억하는 게 목표

직접 장소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그곳에서 받은 느낌을 바탕으로 작업에 돌입한다. 완성된 ‘주소’ 시리즈의 작품들은 실제 그 장소의 주소들을 작품명으로 부여받는다. 아마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그의 그림에서 익숙한 주소를 발견하고 반가워하는 관람객이 있겠지만, 반대로 없어진 주소를 발견하고 모든 걸 지워버리는 이 사회의 참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버려진 물건 덕분에 추억에 잠기는 것이 작가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콜라주 작업, 특히 ‘주소’ 시리즈를 할 때는 항상 작은 바람을 가져요. 제 작업의 대상이 된 집, 또는 장소에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그 추억을 상기시키며 좋은 느낌, 행복한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거예요. 작품을 통한 공감과 교감을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는 많은 고민을 거쳤다. 본격적인 콜라주 작업이 시작된 것은 2014년부터다. 이전엔 물감으로만 주로 그림을 그리다가, 수업 도중 다른 재료를 선택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집 앞 음식점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이걸로 어떻게 그림을 그릴까 했는데, 여러 조각들을 붙이니 점점 새로운 형태가 나오는 게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의 작업을 아는 지인들은 이제 전단지와 잡지를 챙겨 그에게 선물로 준다. 짓궂은 친구는 보고 버릴 성인 잡지를 건네주기도 했다고.

▲홍태호, ‘잠재의식 다비드’. 패널에 혼합 재료, 116.7 x 91cm. 2014.

▲홍태호, ‘잠재의식 비너스’. 패널에 혼합 재료, 116.7 x 91cm. 2014.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당연히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생각했지만, 중간에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고민의 시기가 있었어요. ‘그림 그리기 싫다’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었죠. 그만큼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3학년을 마치고 생각을 정리할 겸 휴학을 했죠. 그리고 그 시기에 콜라주 작업을 통해 관람객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기억하는 작업에 대한 열정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의 추억을 제가 온전히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표현해 전해주고픈 마음이 커요. 나름의 보람도 느껴지고요. 이 작업을 할 때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작가는 무엇보다 끈기 있게 작업을 보여줘야 할 시기 같다고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다.

“김동유 작가는 폐교에서 10년 동안 꾸준히 작업만 하며 스스로의 작업 세계를 다졌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정신으로 꾸준히 작업을 하면 성공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계속 제 작품을 보는 이와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어요. 꾸준히, 열심히 해야죠. 그게 지금 제가 가장 주력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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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핑계 아래 사라질 존재들을 재생”

홍태호는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해 4학년에 재학 중인 예비 작가다. 병영에서 접었던 손이 해방돼서인가, 그는 밤낮으로 작업실을 지키며 작품 제작에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 우연히 들른 새벽 2시의 안성 실기실에서 마주친 그의 얼굴에서 청년 세대의 열정을 본다.

그가 사용하는 콜라주 기법은 미술사에서 오래된 족보를 가졌다. 하지만 그가 채집한 전단지나 잡지, 그리고 버스표와 명함 따위는 캔버스 위에 지금 여기의 시공을 품은 기호로 작동한다. 시공의 기호들을 도구 삼아 최근 그가 탐색하는 세계는 개발의 미명 속에 사라져갈 오래된 동네의 집들이다. 이발소, 쌀집, 푸줏간, 자전거방은 곧 철거될 운명이지만 그 형상은 작품 속에 영원히 생경하게 남아있게 될 것이다.

나는 홍태호의 작품 앞에서 청년에게 기억과 추억의 저장을 요구하는 급변의 사회상을 목격한다. 그리고 이 범상해 보이는 사유와 현실 기록의 행위에서 예술의 본성 하나를 발견한다. 그 진정성이 담긴 창작 열정에서 심화될 작가의 미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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