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안창현 기자) 자동차는 이제 탈 수 있는 스마트폰, 움직이는 컴퓨터로 변모 중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 역시 이런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분주하다. 점점 치열해지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미래를 어떻게 개척해야 할까? 최근 주목 받는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미래의 자동차 문화와 기술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 같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자동차 전문가들이 모여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를 설립했다. 한국 자동차의 미래를 직접 설계해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갖자는 취지다. 자동차의 미래에 관해 다양한 논의를 이어갈 민간 연구소의 설립을 주도한 박재용 이화여대 건축공학과 연구교수는 “미래 자동차의 세계는 단순히 자율주행뿐 아니라 사용자의 인식 변화와 문화 향유의 방식마저 바꾸게 될 것”이라며 “단순히 기계가 아니라 사회적 도구로서 자동차의 미래를 진단하고, 그에 걸맞은 기술 트렌드를 전망하는 연구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가 설립되자마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에서 자동차의 향후 발전 방안을 다양한 관점에서 모색할 연구소의 출현을 반기는 분위기다. 자연히 설립을 주도한 박재용 교수 또한 최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그를 이화여대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먼저 자동차공학과가 아닌 건축공학과 교수인 점이 유별나다. 박 교수는 “재료나 구조의 역학적 측면, 최적 설계 등에서 사실 자동차와 건축이 유사하다. 조선이나 비행기, 자동차 등이 최종 결과물이 달라서 그렇지 역학적인 측면에서는 건축과 같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변 교통 상황을 감지하는 자동차 센서의 개념도. 사진 = 구글 공식 블로그
자동차 평론가로 매체에 꾸준히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박 교수는 사실 대학원에서 자동차공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자동차 전문가다.
변화하는 자동차의 안과 밖
그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자동차에 대한 접근법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며 “미래를 예측하고 내다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연구를 통해 예측과 전망을 구체화하면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연구소 설립 취지를 밝혔다.
▲2014년 운전대와 페달을 없앤 구글의 2인승 무인자동차 프로토타입. 사진 = 구글
▲메르세데스-벤츠 S500 인텔리전트 드라이브 연구용 차량. 사진 = PR인사이트
매년 1월이 되면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가 열린다. 세계 5대 모터쇼 중에서 가장 먼저 열리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라스베이거스 세계가전박람회(CES)에 더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올해 CES는 전체의 약 25%가 자동차 관련으로 채워졌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전자-스마트 제품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자동차는 100년이 넘는 시간을 통해 이동 수단이란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성격이 변하고 있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생활공간에 되는 건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측면”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변화하는 자동차에 대해 기계공학을 넘어 인문사회과학, 디자인, 경영학 등 다양한 분야가 결합해 접근하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가 향후 추구하는 방향이다.
박 교수는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자동차 업계의 변화를 언급했다. 그가 처음 언급한 변화는 역시 자율주행이다. 자동 운전 상태에서 탑승자를 안전하고 빠르게 목적지까지 이동시켜주는 자율주행 연구는 최근 자동차 업계 최대의 화두라고 할 수 있다.
▲CES 2016의 현대모비스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자율주행 자동차의 운전석을 부분 구현한 ‘i-Cockpit 자동차’에서 미래 운전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 현대모비스
“구글을 필두로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가 상용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실전 테스트가 많이 진전돼 조만간 상용 모델로 등장할 것이다. 스위스는 올해부터 미니버스를 대상으로 저속형 자율주행차를 최초 운행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미래에 사라지는 자격증 중 하나가 운전면허증이라고 할 정도로, 자율주행차는 뜨거운 이슈가 됐다. “거의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자동차로 모여들고 있다. 국내에서도 현대차를 비롯해 LG전자, 삼성전자 등이 자율주행과 스마트 기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배터리와 디스플레이, 카메라는 물론 각종 하드웨어와 이를 구동시키는 알고리즘 등 고부가가치 수익 구조가 자동차로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율주행-친환경 차와 전자산업
또 하나의 흐름은 친환경 영역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고, 오는 2030년까지 약 37%의 이산화탄소를 감소시켜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친환경차에 대한 고려는 필수다.
박 교수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라고 할 수 있는 배터리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을 갖고 있다. 물론 향후 하이브리드, 수소연료전지차, 순수 전기차 등 친환경차를 둘러싸고 주도권을 누가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산업 지형이 바뀔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자율주행이나 친환경차 등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동차의 전기전자 부품이 급증하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지금의 자동차는 약 30% 정도가 전기전자 부품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향후 5년 후인 2020년에는 40%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기 에너지의 효율적인 사용이란 측면에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접목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CES 2016에 첫 공개된 쉐보레 전기차 볼트. 양산형 볼트 EV의 가격은 미국에서 연방보조금을 포함해 3만 달러 미만으로 정해졌다. 사진 = 연합뉴스
과거 내연기관차가 약 3만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면, 전기차는 약 40%인 1만 2000개 수준이라고 한다. 또 1~2인승 친환경 소형차가 나타나면서 이동 수단의 개념이 광범위하게 확대할 조짐도 있다. 이런 급격한 자동차 패러다임의 변화를 한 걸음 앞서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가 출범한 지금, 당분간은 세 가지 분야에 주력하며 역량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는 ‘탈 것의 변화’다. 미래는 자동차뿐 아니라 수많은 탈 것들이 공존하는 시대이고, 이 가운데 어떤 이동 수단이 사회의 지배적인 모습을 형성할까 예측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자동차의 주요 소비자로 떠오를 미래 세대의 소비 성향을 예측, 파악하는 일이다. 박 교수는 단순히 10~20년이 아닌 30~50년의 중기, 길게는 100년 앞까지 장기적으로 내다보는 연구가 수행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을 예측하는 연구다. ‘탈 것의 변화’와 ‘미래 세대의 소비 특성 예측’을 통해 어떤 기술이 자동차에 필요한지 연구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에서 가장 먼저 구체화한 프로젝트는 오는 4월 21일, 과학의 날을 맞아 국회 소회의실에서 연구소 주최로 첫 공개 토론회를 여는 것이다. 주제는 ‘자율주행차 사고에 따른 법적 책임’이다. 이 자리에는 자동차 전문가 외에 법조계와 보험업계, 경찰청 등 관련 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논의할 예정이다.
자율주행차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사실 아직까지 자율주행차의 법적 책임은 모호하다. 많은 국가들의 전향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자율주행차를 위한 법규 제정은 여전히 큰 난제로 꼽힌다. 현재 네바다나 캘리포니아 등 미국에서 자율주행차에 발급되는 운전 허가는 시험 운행을 허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교통법의 특성상 구글 등 여러 기업들의 적극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자율주행차가 자유롭게 일반 거리를 다닐 수 있게 되기까지는 여러 장애물이 있다.
“특히 자율주행차의 사고 발생 시 이에 대한 책임의 소재를 규정하는 것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부분적인 자율 주행의 경우 사고의 최종 책임은 대부분 운전자에게 돌아가지만, 완전한 자율 주행의 경우에는 자동차 제조사의 책임으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사고 책임 소재의 불명확성은 향후 자율주행차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에서 관람객과 취재진이 CES 2016 사전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런 문제는 자동차 보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교통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더라도, 보험은 사고가 발생하는 상황을 가정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은 보험업계를 중심으로 자율주행차의 사고 책임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2014년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보험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담 조직이 출범돼 자율주행차가 보급될 경우 보험 시장에 미칠 영향이나 사고 시 책임 소재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또 미국과 영국 등 자율주행차의 시험 운행을 허용한 일부 국가에서도 미래 보험 시장의 변화에 대한 주요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각계각층의 논의가 절실”
교통사고의 책임 부담을 운전자에서 제조사로 전가시킬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 역시 자율주행차의 법규 변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교통사고의 책임은 대부분 운전자 과실을 중심으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운전자의 판단이나 제어가 제한되는 자율주행차의 경우, 제조업체의 배상 책임 비용이 증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자동차 부품이나 관련 소프트웨어 기업들에게도 피해 배상 책임이 확산될 수 있다.
확실히 자율주행차가 기술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박 교수는 “이제 우리도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진전시킬 때”라며 “미래 자율주행차 시대가 열리려면 사고 책임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토대가 먼저 뒷받침돼야 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론화되는 주제인 만큼 흥미로운 토론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미 국내 자동차 업체들도 친환경차나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투자와 연구, 개발을 해온 지 오래다. 그 결과들을 조금씩 시장에 내놓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자율주행차의 경우에서 보듯, 미래 자동차의 향방이 자동차 업계 내부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이제 막 출범한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가 기대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다.
박 교수는 “100년 동안의 내연기관 이후 최근 자동차가 급변하고 있는 현실에서 각개각층의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여기서 연구소가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우선 민간 연구소로서 공정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