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예술동네 - 콜라보마켓] 카페 겸 전시장 겸 세련된 미술점빵
▲콜라보마켓의 라운지 전경. 사진 = 콜라보마켓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연수 기자)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라 불리는 공간들이 있다. 예술가가 자신의 공간을 전시장 또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로 꾸며 공개하는 개념이다. 예술가들은 인테리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신이 직접 리모델링에 나서는데, 그 결과물이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아티스트가 운영(Run)하는 공간들이 주목 대상이 되는 현상이다.
노출 콘크리트, 폐가구를 리폼한 테이블들, 녹슨 철제 캐비닛 등으로 상징되는 이런 공간들은 원래 런던, 뉴욕, 파리 등지에서 공장이나 창고를 예술가들이 자신의 공간으로 바꾸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런 공간을 흉내내 전문 인테리어 업체들이 카페를 꾸미기도 한다.
카페는 원래 18세기 프랑스 예술가들과 중산층 또는 민중이 토론을 나누던 살롱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강점기에 시인 이상이 운영했던 ‘제비다방’과 70~80년대 운영된 ‘사루비아 다방’이 예술가와 인문학도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사실,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니라면, 카페의 운영이 지속되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는 어떤 단골손님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
▲디자인 제품들을 전시한 쇼룸. 사진 = 콜라보마켓
‘그 까페에 어떤 예술가가 자주 찾아온다더라’는 소문이 나면, 그 예술가와 카페의 이미지가 겹치면서 인기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예술적 분위기와 인테리어는 카페에 중요한 차별 포인트가 된다.
콜라보 마켓. “좋은 질과 진정성을 담보해”
서울 서촌 통인시장 입구에 위치한 ‘콜라보마켓’은 앞서 얘기한 요소들, 즉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을 전시하고, 많은 사람과 교류하는 카페다. 빌딩의 2층에 위치한 공간은 낮에는 해가 잘 들고, 밤에는 할로겐 불빛이 켜진다. 벽에는 현재 전시 중인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고, 그 안쪽엔 운영진이 만든 물건들의 전면 유리벽 너머 쇼룸에 전시돼 있다. 질 좋은 와인과 커피 원두가 확보돼 있고, 운영자들 역시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손님을 맞는다.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선보일 공간이 없어 혹은 생계유지를 위해 만든 공간의, 자칫 너저분해지기 쉬운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프로페셔널한 모습이다. 와이셔츠에 베스트까지 단정하게 갖춰 입은 운영자에게 콜라보마켓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꿈을 실현시키는 장인의 손길
콜라보마켓은 아직 40살이 채 되지 않은 젊은 부부 박기범, 이경희가 운영한다. 브랜드로서의 콜라보마켓을 시작한 지는 약 4년 정도 됐다. 강서구에서 처음 가게를 시작해 홍대를 거쳐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 사실 박기범은 패션유통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유명 해외 유통 온라인 숍의 MD도 했고, 우리나라의 유명 패션몰을 중국에 런칭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하며 디자인 및 편집숍 감각을 키웠다.
▲운영자 박기범과 이경희 부부. 사진 = 콜라보마켓
그렇게 패션 유통 시장에 종사한 지 11년이 지났을 때, 부부는 그들이 진짜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미술 관련 사업이었다. 박기범은 학부 때 입체미술(조각)을 전공했고, 이경희는 경영을 전공했다. 그래서 미술을 바탕으로 문화 관련 사업을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가 됐다.
처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미술 사업을 하기 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마련해 놓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첫 번째 아이템은 ‘테일러의 가방’이었다. 사업 시작 당시 에코백 붐이 한창이었다. 보통 가격이 싼 면 원단으로 만드는 에코백을 그들은 고급 양복지로, ‘우븐 공장’이라 불리는 양복 제조 공장에서 제작했다. ‘작은 아이템으로 줄 수 있는 좋은 가치’가 그들의 모토였다. 단순한 디자인으로 디자인 비용을 줄이고, 장인의 손길과 좋은 질의 제품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테일러 메이드 가방으로 시작해 그들의 생산 아이템은 가죽 지갑 및 액세서리 등으로 넓어져갔다. 현재까지 생산이 이어지고 있는 제품들 역시 매우 단정하고 정적인 디자인들이다.
작가들과 함께 꾸려가는 미술 시장
현재의 서촌에 위치한 공간으로 숍을 이전하면서 그들은 미술 작품 소개도 하기 시작했다. ‘아트 컬렉션’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선정된 작가들이다. 선정 작가들에게는 무료로 전시 공간을 제공한다. 카페 라운지의 한켠에 그림을 걸어 전시를 하고, 전시 때마다 영상물을 제작해 모니터로 항시 상영한다.
▲라운지에 걸려 있는 그림. 마음에 들면 구매 가능하다. 사진 = 콜라보마켓
일회성으로 전시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외부 갤러리 기획 전시도 함께 개최한다. 지금까지 김선휘, 남학현, 박정원 손준호, 손경환, 하행은, 이정훈, 한지민 등 8명 작가가 소개됐고, 앞으로 12명 작가까지 소개할 예정이다. 박기범은 “작가들을 지원한다는 개념보다 작품 유통 판로를 ‘함께’ 개척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설명한다. 작가의 작품 판매는 그들이 작업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
이런 이유로 박기범과 이경희는 다른 갤러리 카페와는 차별화되는 ‘아트 마켓’으로서 콜라보마켓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와 더불어 그들 자신의 아트 컨설턴트로서의 정체성도 강조한다. 박기범은 자신들이 ‘관객과 작가의 접점에 서 있다’고 하지만, 사실 생산자인 작가의 입장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온전히 판매를 위한 목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기는 하지만, 생산하는 제품 하나하나에는 그것만의 스토리가 있고 ‘작가들과 함께 꾸려가는 미술 사업’이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작가가 의미하는 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동시에 대중의 취향을 연구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소비자로서의 관객에게 후회 없는 선택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
제대로 된 소비를 위한 ‘눈’
그들이 이 공간을 운영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수준 있는(제대로 된) 소비’다. 현재 미술계에는 큐레이터, 아트 딜러, 아트 컨설턴트 등 관객에게 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다양한 직업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큐레이터는 작품의 의미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데 치중돼 있고, 아트 딜러나 아트 컨설턴트는 소비자로서 관객의 취향에 치중돼 있음이 한계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선정 작가 손경환의 작품 ‘유령들의 시간’. 캔버스에 아크릴, 91 x 117cm. 2015.
특히 최근 일어나고 있는 아트 컨설팅 붐에서 작품 구매희망 소비자는 고학력을 무기삼은 소위 ‘전문가’들에게 소개를 의뢰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작품과 좋은 제품을 구별해 낼 수 있는 ‘눈’이다. 그런 안목을 기르기 위해선 우선 좋을 걸 봐야한다.
좋고 세련돼 보이는 것만 펼쳐놓은 콜라보마켓은 ‘고급’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취향일 뿐이기도 하다. 이경희는 콜라보마켓을 찾는 고객들 또한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들과 닮았다고 했다. 간결하고 단정한 디자인 때문인지 ‘내성적인 사람의 취향’이라는 설명이다.
▲선정 작가 김선휘의 작품 ‘무제. 린넨 위에 유화’, 91 x 72cm. 2012.
이들 고객들은 한 번에 7~8개씩 사가거나, 다 헤질 정도로 쓰고 나서도 버리지 않고 AS를 받으러 오기도 하지만, 온라인 어디에서도 자랑하거나 표내는 걸 본 적이 없단다. 화려하거나 개성을 드러낼 독특한 장식도 없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문화는 최소한 좋은 질과 진정성을 담보한다.
장인과 상인과 예술가가 자기 자리와 역할을 유지하며 공존하는 공간,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콜라보마켓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이다. 그들은 “예술가가 작업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돈에 신경 쓰는 것을 창피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이런 작은 시도들이 모여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문화 수준 전반이 끌어올려지는 힘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김연수 기자 hohma0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