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전시 - 진화랑 ‘예외상태’] ‘맘대로 전시’에, 밤무대같은 전단지까지
▲MR36의 작품이 전시된 진화랑 신관 2층 전경. 사진 = 김금영 기자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뜻밖의 진화랑 전단지를 받았다. 나이트클럽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할 때 나눠주는 전단지와 비슷한 디자인으로 구성된 전단지에는 ‘경복궁 최고시설’ ‘예외상태: 우아한 예술가’ 문구 아래에 마치 그날의 출연가수처럼 MR36(모즈+료니), 파울 쥐르크, 루나정은 리까지 참여 작가들의 이름이 나열돼 있었다. 평소 접한 품격(?) 있는 전시 안내 엽서, 도록이 아니었다. 이것으로도 뜻밖이었는데 진화랑은 ‘거짓말 같은 전시’라고 이번 전시를 소개하며 “주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진화랑은 그간 확고한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구성해왔다. 그런데 2016년 4월, 이번엔 일탈을 시도했다. 일반적으로 작가의 작품 중 최상의 것을 선택해 기획하는 초대전의 형식을 벗어나, 작가들이 마음껏 원하는 작품을 펼치게 자유를 부여한 것. 주제도 정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전시명도 과거 전시와 차별화를 둔 ‘예외 상태’다. 이 정도만 보면 단순한 단체전과 다를 게 무엇이 있나 싶었는데, 진화랑 측은 작가들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해 눈길을 끌었다.
진화랑 측은 “통상 갤러리는 미술 시장에서 이미 작품 판매력이 입증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엔 미술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날것 상태의 작가들을 갤러리 공간 안에 풀어놓고 어떤 제약도 주지 않으면서 그들의 가능성을 보고 싶었다”며 “주제에 제한을 전혀 두지 않았다. 파격적인 시도를 위해 갤러리 공간을 부수거나 불을 피우는 등의 거침없는 시도를 해도 좋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루나정은 리와 파울 쥐르크는 평면 작업에 영상 이미지가 투사되는 결과물을 보여준다. 사진 = 김금영 기자
하지만 다행히(?) 작가들은 갤러리를 부수지는 않았다. 다만 주제 없이 자유롭게 만난 4명의 작가는 갤러리 공간을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4명의 작가는 각자의 표현 방식이 매우 다르긴 하지만 작업을 통해 이야기하는 점에서 공통점이 드러났다.
루나정은 리와 파울 쥐르크는 ‘발견된 오브제’를 주요 테마로 평면 작업과 영상의 콜라주 작업을 선보인다. 루나정은 리는 잠들기 전 여러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페인팅과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조합한 화면을 1차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 작품이 걸리는 공간의 특성에 맞게 라인 등 오브제를 활용해 공간과 작품을 연결시킨다. 여기에 파울 쥐르크의 영상이 덧입혀진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왼쪽부터) 료니, 모즈, 루나정은 리, 파울 쥐르크 작가. 사진 = 김금영 기자
완성된 결과물은 매우 화려하다. 하지만 작품 속 이야기는 밝지만은 않다. 루나정은 리는 “작품이 예쁘고 현란한 색감으로 밝아 보인다. 하지만 작품이 다루는 주제는 사회의 어두운 일면이나 이슈를 다룬다. 사람들이 가볍지 않은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갖고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작업은 신관 1층에 구성됐다.
사회의 어두운 일면-이슈를 4가지 다른 시선으로 제안
2층으로 올라가면 묵직하게 쌓인 폐지와 바닥에 덩그러니 굴러다니는 1000원 짜리 지폐, 다양한 사진들이 눈에 띈다. MR36의 작업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벽에 걸린 사진들을 자세히 보면, 폐건물 옆에 비치된 거대한 프랜차이즈 간판 사진 등 뭔가 의미심장한 느낌이다. 루나정은 리와 파울 쥐르크가 차가운 현실을 자신들만의 작품 해석으로 다시 탄생시켰듯, MR36도 사회의 냉혹한 일면에 주목한다.
MR36은 “우리 팀 이름 자체가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의 줄임말이다. 즉, 사회에서 약자로 취급되는 소수의 존재들, 버려지고 소외된 존재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고 말했다. 작업을 위해 직접 철거된 건물이나 소외된 지역을 찾아다니며 소재와 작업 재료를 구한다. 전시장에 비치된 폐지는 실제로 박스를 모으는 사람들에게서 구입했다. 많은 양이었지만 폐지 가격은 단돈 2000원이었다. 자본주의 사회 속 뼈 빠지게 일하면서도 얻어지는 건 단돈 2000원인 현실이다. 그저 커피 한 잔 값. 그 느낌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폐지 옆에 2000원을 고스란히 놔뒀다.
진화랑 본관에는 이 4명 작가들의 작업이 모두 모여 조화를 이룬다. 처음엔 주제 없이 모인 이들이었지만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 전시를 꾸며 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는 반응이다. 앞서 언급된 전시 전단지도 이들의 아이디어가 모인 결과물이다.
▲진화랑의 ‘예외 상태: 우아한 예술가’ 전시를 홍보하는 전단지. 사진 = 진화랑
MR36은 “과거 전시 준비 과정에서 큐레이터와 의견이 맞지 않아 전시가 무산된 경우가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업으로 마음껏 하고 싶었기에 전시를 포기했다. 이번엔 우리를 믿어주고 적극적으로 협조해줘 흥미로운 작업을 펼칠 수 있었다”며 “꼭 부수고 불을 피우고, 이런 것만이 센 작업이 아니다. 이미 작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펼쳐 놓았다. 작품을 보고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루나정은 리와 파울 쥐르크는 “제약의 부담 없이 갤러리 공간을 재미있게 실험해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평범한 화이트 큐브였던 공간, 그리고 거울이 설치된 공간 등을 오가며 작업하면서 작품이 지닌 무한대의 확장 가능성을 봤다”고 소감을 전했다.
진화랑 측은 “자유롭게 놀아보자, 작가들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쳐보자는 게 콘셉트였다. 작가들의 즉흥적인 작업, 거기에서 느껴지는 순발력이 흥미로웠다. 기획을 오래 한 입장에서 틀을 깬 전시, 반전을 주는 전시를 선보이고 싶었는데 우리 쪽에도 새로운 활력이 됐다”고 밝혔다. 전시는 진화랑에서 4월 30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