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1980년대. 가수 김광석은 담백한 음색과 통기타 소리로 대중의 귀를 홀렸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상무의 만화 독고탁이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들은 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음악과 만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했다. 분야는 달랐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예술가로서 대중과 소통하려는 점은 같았다. 30년 시간이 훌쩍 지난 2016년 문화예술계의 두 별, 김광석과 이상무를 기리는 추모 전시가 열리고 있다.
1984년에 데뷔해 수많은 명곡을 남기고 떠난 가객. ‘김광석을 보다 - 만나다·듣다·그리다’전은 故 김광석(1964~1996)의 2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다. 김광석과 초·중 동창생이자 절친한 친구인 이택희 예술 감독이 기획했다. 공연 때 사용했던 자필 악보를 비롯해 친필로 써내려간 일기와 메모, 통기타, 그와 관련해 발표된 LP앨범과 CD, 카세트테이프, 각종 공연 포스터와 티켓, 리플릿 등 300여 점의 유품이 전시된다.
특히 음악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김광석의 일생을, 음악과 함께 전시하는 특성이 있다. 생전 그가 1000회 이상 라이브 공연을 했던 상징적인 곳인 대학로에서 열려, 대학로에 그의 음악이 울려 퍼지게끔 한다.
▲‘김광석을 보다’전 두 번째 섹션에 전시된 김광석의 사진. No.18 ⓒ김광석을보다展 - 만나다ㆍ듣다ㆍ그리다ㆍ2016
전체적인 콘셉트는 ‘김광석이 들려주는 김광석의 이야기’다. 전시장 입구에 마련된 오디오 가이드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안녕하실테죠? 제가 김광석입니다. 어서 오세요!” 하는 김광석의 실제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지금까지 공연한 자료를 토대로 구성한 음성 자료다. 각 대표곡 섹션 앞에 서면 김광석의 목소리가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또 전시는 대중들이 주로 기억하는 가수 김광석뿐 아니라 그 저편에 가려져 있던 ‘아빠 김광석’ ‘남편 김광석’ 등 인간으로서의 김광석의 삶에 주목한다.
전시장은 총 8개 전시관과 2개의 영상관으로 구성된다. 첫 섹션에서는 민중가요를 부르던 학창 시절, 그리고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와 ‘동물원’ 시절의 김광석을 만날 수 있다. 중학교 현악부 시절, 김광석은 손이 작아 배우고 싶던 첼로 대신 바이올린을 잡았다. 그때의 이야기와 더불어, 중3 때 처음 만든 ‘그대 웃음소리’ 음악을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중학생 시절을 지나 대학시절 친구들과 결성한 그룹으로 시작된 ‘동물원’ 활동 당시의 음반, 포스터, 사진도 전시된다.
두 번째 섹션은 김광석의 1~3집 활동을 중점으로 다룬다. ‘너에게’ ‘사랑했지만’ ‘그날들’ 등 1989년 김광석이 홀로서기를 통해 내놓은 명곡들과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세 번째 섹션은 잠시 가수 김광석에서 인간 김광석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의 일상생활과 일기, 자필 악보, 메모 등이 공간을 채운다. 무료함을 싫어하고, 늘 창작에 골몰했던 그의 노력이 일기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네 번째 섹션은 한국의 100대 명반에 선정된 3장의 음반을 다룬다. 아직까지도 청춘의 대표곡으로 회자되는 ‘서른 즈음에’부터 대한민국 남자의 필수곡 ‘이등병의 편지’ 등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전한다. 처음부터 김광석의 노래가 아니었지만 김광석이 부름으로 인해 열풍을 불러 일으켰고, 군대에서 직업군인으로 삶을 마감한 형을 그리며 이 노래를 불렀다는 얘기다. 이밖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도 감상할 수 있다.
▲가수 김광석 뿐 아니라 ‘남편 김광석’ ‘아빠 김광석’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사진들도 전시됐다. 사진 = 김금영 기자
다섯 번째 섹션은 1000회 이상의 공연과 관련된 자료 및 공연 사진 등을 전시한다. 공연 포스터, 티켓 등 그 시대 소품들은 복고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재미가 있다. 또한 통산 1000회 공연 당일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이어지는 여섯 번째 섹션은 김광석이 5집을 생각하면서 정리했던 메모와, 사후 발표된 곡 ‘부치지 않은 편지’ 관련 자료를 선보인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고운 불빛으로 밤을 장식하듯 머리를 세우고(빗고)/ 오늘은 또 어디로 떠나는가?’(김광석의 5집 메모 중) 삶이 다하는 날까지 예술가로서 고뇌했던 그의 흔적이 여실히 느껴진다.
일곱 번째 섹션은 김광석을 기리는 아티스트와 팬이 참여한 전시 공간이다. 이외수, 곽정우, 고학찬, 구상미, 김기라·김형규, 김석영, 박미화, 박방영, 성태진, 안윤모, 안혜경, 윤혜덕, 이다애, 이인, 이종구, 이창우, 이택희, 정혜경, 찰스장, 최루시아, 하성흡, 홍지윤 등이 김광석을 추모하며 만든 작품을 전시한다.
전시에 참여한 찰스장은 “김광석의 음악은 내 삶과도 이어져 있다.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며 군 입대를 했고,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듣고 신이 났으며, ‘서른 즈음에’를 듣고 젊음에 대해 고민했다. 곡 하나하나가 삶이고 철학이고 인문학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어떻게 이 감정을 표현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단순히 얼굴을 그리는 데 그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김광석의 노래를 다시 듣고, 사진들도 많이 찾아보면서 자연스럽게 드로잉을 하나 하게 됐다. 그만의 헤어스타일, 야무진 입술 등 그만의 느낌을 표현해 봤다. 그의 나이를 훌쩍 넘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며, 김광석이 고민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작업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윤모는 자신의 작업에 주로 등장하는 부엉이의 손에 통기타를 들려줬다. 그는 “김광석은 다른 아티스트보다 유독 기억에 남는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의 음악을 들었다. 자유가 제한받던 시절, 저항의 일환이던 그의 노래는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다. 특히 ‘광야에서’ 노래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시를 준비하며 오랜만에 다시 노래를 들었는데 여전히 두근거렸다. 노래를 들으며 과거 젊은 시절, 통기타 시대가 생각이 나더라. 젊음의 방황과 열정, 저항을 상징하는 그의 애절한 가사가 마음을 울렸다”고 말했다.
▲인간 김광석과 관련된 유품도 이번 전시에 함께 선보인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여덟 번째 섹션은 ‘고리카페’가 콘셉트다. 김광석의 형 김광복이 차려준 ‘고리’라는 카페의 콘셉트로, 김광석의 음악을 테이블에 앉아 들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매주 싱어송라이터들의 토크 콘서트가 이곳에서 진행된다. 피터팬컴플렉스, 위아더나잇, 배우 오만석, 싱어송라이터 램즈 등이 참여한다. 마지막으로 영상관이 펼쳐진다. 길거리, 방송 무대 위 등에서 자유롭게 노래하는 김광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화려한 효과 없이 김광석의 노래와 온전히 마주하는 공간이다.
전시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80~9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김광석이 거짓말처럼 대학로에 다시 돌아온 듯 그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전시이자, 그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음악을 다룬 전시”라며 “그 시절 힘든 시기를 음악으로 버틴 젊은이들과,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 받고 있는 현 시대 젊은이들 모두가 함께 그를 기리는 뜻 깊은 자리”라고 밝혔다. 전시는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6월 26일까지.
70~80년대 독보적인 캐릭터였던 독고탁. 응팔(1988)세대라면 독고탁을 모를 수 없다. 고아원을 뛰쳐나와 산전수전 다 겪으며, 마운드 위에서는 무섭게 돌변하는 투수. 필사의 승부욕을 지녔지만,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청춘의 꿈. 그 시대의 자화상 같은 존재였다. 이 독고탁의 탄생 뒤엔 이상무 작가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독고탁이라는 캐릭터로 더욱 기억되는 존재였다.
▲‘울지 않는 소년, 이상무’전의 입구. 사진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1946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한 작가는 1966년 만화 ‘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했다. 순정만화가 인기를 끌었던 시절, 작가는 야구, 축구 등 스포츠를 소재로 한 극화로 차별성을 갖추며 사랑 받았다. ‘태양을 향해 던져라’ ‘내 이름은 독고탁’ ‘다시 찾은 마운드’ ‘독고탁의 비둘기 합창’ 등은 인기에 힘입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또한 일반적인 주인공에 대한 이미지도 반전시켜 눈길을 끌었다. 주로 잘생기고 선한 이미지의 주인공이 대세였던 시절, 다소 모자란 외모와 반항심과 질투심으로 똘똘 뭉친 독고탁을 탄생시켰다. 처음엔 이질적이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캐릭터의 현실적인 인간미에 공감을 느낀 대중은 환호했다. 이 결과 독고탁은 시리즈 형태로 꾸준히 나왔다. 작가는 인종차별, 장애, 재일교포 2세와의 갈등 등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도 많이 다뤘다.
펜으로 그린 종이 만화보다 컴퓨터를 이용해 그린 웹툰이 대세가 된 시대에서도 작가는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공부하며 적응력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만화만이 지닌 감성은 놓치지 않으려 했다. 활발한 창작 활동뿐 아니라 한국만화가협회 이사로도 역할을 하며 만화 사랑에 힘을 쏟고 있던 중인 지난 1월 3일 그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작업 도중 향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많은 독자들과 이별의 시간조차 갖지 못해 깊은 향수와 안타까움을 남겼다.
▲이두호 작가가 전시 개막일 당시 故 이상무 작가에게 만화 메시지를 남기는 모습. 사진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그의 대표작인 ‘울지 않는 소년’에서 제목을 차용한 이번 전시는 故 이상무 작가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자리다. 앞서 2014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만화 원고 3만 여 점을 기증해 ‘이상무 기증자료 특별전 - 돌아온 독고탄’전이 열린 바 있다. 2년 만에 열리는 이번 추모 전시에는 미공개 원고도 전시된다.
전시는 작가의 작품과 작업 도구, 생전 인터뷰 영상 및 사진 등을 통해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코너로 구성됐다. ‘울지 않는 소년’의 주인공 독고탁이 등장해 독고탁의 아버지인 작가를 직접 소개하는 형식으로 꾸몄다. 또한 김광성, 김수용, 여호경, 이정헌, 이충호 작가 등 동료 및 선후배 만화가 28명의 추모 만화도 전시된다. 추모 만화에는 이상무 작가와의 에피소드나 작가로부터 받은 영향 등이 담겼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희재 이사장은 “만화라는 도구로 대중문화사에 한 획을 긋고 우리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을 남긴 이상무 작가를 쉽게 보내지 못하는 마음을 이번 전시에 담았다”며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이상무 선생을 기리는 것은 물론 독자들에게 사랑 받은 작가와 작품을 보존하고 알리는 데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시는 한국만화박물관 1층 로비에서 4월 1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