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윤하나 기자) 소복하게 먼지가 앉은 유년 시절 보물 상자를 다시 열어본 적이 있는가? 한창 재밌게 가지고 놀던 요요 장난감이나 반짝이던 유리구슬, 컴퍼스나 몽당연필부터 어느 장난감의 알 수 없는 부속까지. 이제 이런 물건 중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유효한 물건은 없을지 모른다. 그저 과거의 추억으로 아련하게 빠져들게 하는 묘한 힘이 있을 따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을 정리하던 작가 김용훈은 어머니의 장 속에서 작은 양철 상자를 발견했다. 예스러운 색감과 무늬로 어머니의 취향을 고스란히 닮은 그것은 어머니가 쓰시던 반짇고리 상자였다. 쓸모를 잃은 상자는 버려져야 했을지 모르지만, 작가는 차마 어머니의 반짇고리를 버릴 수 없었고, 지금까지 그의 작업실에 남아 있다.
이 경험은 그가 2006년부터 쓰기 시작한 한 뼘 크기의 수첩과도 이어진다. 위클리 다이어리로도 불리는 그 수첩에는 그의 일상 속 작은 움직임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는 한 해씩 쌓여가는 수첩들을 다시 볼 때면 그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한때 곁에 두고 즐겨 쓰던 물건들에 자신의 체취와 사용감이 그대로 남듯 말이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가족에게 선물 받은 만년필이나 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주시던 양은 도시락, 따뜻한 밥을 차려내셨던 꽃무늬 양은 쟁반, 휴대용 라디오, 분식집의 녹색 플라스틱 그릇 등은 이제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시대물에서나 볼 수 있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쓸모를 잃고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물건들은 그저 버려져야 마땅할까? 의문을 품고 주변의 물건들을 탐색하던 작가는 자신의 추억을 담은 물건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김용훈, ‘시대정물(時代情物) 시리즈’.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
이윽고 주변에 수소문해 기억의 아카이브를 기증받으면서 이 ‘시대정물’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버려진 것과 버려질 것들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한때 소중했던 물건들을 그는 사진 속에 영원히 남겨두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버릴 수 없었던 어머니의 반짇고리를 시작으로 시대의 정물들은 그의 사진 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
쏟아질 수 없는 균형 감각
작가의 정(情)물 시리즈를 디지털 이미지로만 보다가 실제로 출력된 사진 작품으로 만나게 되면 생각보다 큰 차이를 느끼고 놀라게 된다. 혹시 이 글을 통해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난다면 간혹 그의 작품이 그림인지 사진인지 헷갈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기자도 그의 작품 이미지를 먼저 접하고 그림 같은 사진을 찍는 작가라고 여겼다. 두 가지 명확한 색감으로 위아래가 나뉜 화면 속 정물들은 각 작품마다 배치를 달리하면서도 일정하게 안정감 있는 구도를 유지하기에 어떤 면에서 회화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리라.
▲김용훈, ‘시대정물(時代情物) 시리즈’.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
그의 정물이 회화적으로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정물이 오른 바닥면에 있었다. 마치 영화 ‘인셉션’의 공간 변형처럼, 당연히 납작하게 누워 있어야 할 테이블의 바닥면은 일정 이상의 각도로 세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위의 정물들은 쏟아지지도 않고 어떻게 저 정밀한 배치를 유지하는지. 궁금한 마음에 작품을 한참 바라보다 그에게 이유를 묻자 미소를 띠며 옛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커다란 카메라 쪽을 가리켰다. 디지털 카메라가 성행하는 시대에 여전히 필름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그는 주로 그 대형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 작품을 촬영한다고 말했다. 대형 카메라의 렌즈와 필름 사이, 속칭 ‘자바라’로 불리는 구간을 약간씩 접어 이미지 굴절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설명이 뒤따랐다. 요즘은 포토샵을 이용해 간단히 사진을 매만질 수 있지만 그는 사전 작업에 오랜 시간 공들여 한 장의 필름만을 사용해 촬영한다.
필름을 구하기도, 현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시대에 대형 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필름을 고집한다기보다 그저 편해서 쓴다”고 소탈하게 답했다. 그는 또한 “여전히 암실 작업을 하는 분들께 그 이유를 물어보면 암실의 불을 키고 끄는 게 포토샵을 열어 작업하기보다 편해서라고 답한다”고도 덧붙였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자신이 처음 사진을 배울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을 사용한 카메라가, 계속해서 신형이 발표되면서 새 기술을 익히라고 강요하는 신식 카메라보다 더 손에 익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까지 2G 핸드폰을 사용하고 수첩 다이어리를 쓰는 것처럼, 그냥 익숙하고 편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한 시대가 지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에 아날로그 감성이 더욱 아련하게 다가오는 것일지 모른다.
▲김용훈, ‘시대정물(時代情物) 시리즈’.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
김용훈 작가는 지난 10여 년간 한 송이의 꽃을 강렬하게 담아내는 사진 작업을 이어왔다. 그 시절 그는 꽃의 연약한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매주 꽃을 촬영했다고 한다. 꽃을 촬영할 때 작가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바로 조명이다. 보통 3개 이상의 조명을 사용해 꽃이 가진 궁극적인 색감과 형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빛을 만들었다고 한다. 노고가 숨어 있는 그의 작품 속 꽃들은 진한 향기를 남긴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궁극의 빛깔로 영속시키던 그가 정물 시리즈로 방향을 튼 이유는 어머니의 부재 외에 또 한 가지 있다.
꽃으로만 기억되고 싶지 않아
디지털 사진기술의 발달로 이제 누구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특히 꽃 사진은 이미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일로 그리 대단치 않게 여기는 경향도 있다. 처음엔 그에 대한 반감으로 일상적인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별히 아름답지 않은 사물에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랜 기간 대상의 본질을 탐구하고 관찰해야 하는 정물 사진은 사진가의 감각에 많이 좌우된다. 조명과 앵글 설정, 프레임 내의 사물 배치에 충분히 고민의 시간을 담아내야 그 원초적인 감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꽃 사진에서 정물 사진으로 이행하면서 가장 주목한 것은 사물의 배치였다. 전체 프레임 중 반을 차지하는 바닥면만이 사물의 배치를 허락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그는 매번 다른 사물들을 이용해 늘 가장 이상적인 배치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이는 오랜 관찰과 여유가 필요한 일이었다.
완결의 균형 찾아가는 심미가의 눈
디자이너였던 아버지의 영향 덕분인지 그의 작업실에서 숨길 수 없는 그의 예민한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일상에 녹아 있는 심미적 태도는 그의 사진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각 사진마다 개성을 달리하는 강력한 색감과 구도는 의도에서 비롯되기보다 순간적 감각에 의존했다. 특히 필름을 이용한 촬영 특성상 결과는 감각으로 예측할 뿐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뷰 파인더에 보이는 대로 사진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저 “지르는 느낌”으로 셔터를 눌러야 한다고. 예민한 감각으로 결정적인 한 장의 사진만을 남기는 그는 평소에도 심미적인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동시대적 감각이 그의 영민한 발견과 탐색을 짐작케 했다.
▲김용훈, ‘화병 시리즈’.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
요즘 그는 정물 연작과 더불어 화병 연작을 번갈아 진행 중이다. 화병 하나에 꽃 한 송이를 꽂아 근접 촬영하는 이 과정은 꽃과 정물 연작의 절충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기억을 담은 사물을 구하기 힘든 것만큼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화병을 구하는 데 느낀 어려움도 드러냈다. 금방 시들어 버려지는 꽃을 집에 꽂아두는 문화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탓도 있다. 같은 사물을 다시 찍지 않겠다는 그의 신념 탓에 그는 화병을 구하기 위해 중국 등 다른 나라로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김용훈, ‘시대정물(時代情物) 시리즈’.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
그가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으로 남기는 것들은 모두 그 쓰임이나 생명력이 한정돼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들이다. 김용훈은 작가노트에서 “모던의 등장으로 우리의 삶은 풍요롭지만 우리는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준 각각의 손때 묻은 물건들과 쉽게 작별을 고해왔던 것 같다. 나는 시인의 마음으로 마치 버려진 사물을 시적 언어로 재탄생 시키듯이 사진에 담아낸다”며 “감성은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물건들을 저 구석 혹은 서랍 속 깊은 곳에서 꺼내어 나만의 시각적 감성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그가 서랍 속에서 꺼낸 지난 순간들은 이제 그의 카메라를 통해 영원히 벽과 책 위에 남을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