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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자연을 닮은 도예와 단색화의 '협주'…상업 갤러리가 주목한 도예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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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9호 김연수⁄ 2016.04.15 09:18:25

▲'이흥복'전이 열리고 있는 통인옥션갤러리 전경.(사진=김연수 기자)


한국의 단색화를 발견했던 해외 미술 시장의 시선들이 한국의 공예, 그 중에서도 도예 분야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른 어떤 나라의 도자기보다도 특히 달항아리나 막사발의 형태가 이목을 끌고 있다. 그 이유는 물질의 속성을 이기려 하지 않고, 불과 손이 만들어낸 형태가 자연스럽고 투박하게 남아 있는 한국 도예의 특성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예 = 일상의 반복 = 자연이 하는 일


다양한 흐름의 갈래를 보이고 있는 현대 미술 안에는 인간을 자연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바라보지 않고, 자연을 구성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동양적 세계관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 독일 작가 볼프강 라이프의 작업은 꽃가루를 채집해 전시장에 쌓거나 펼쳐 놓는 것이다. 꿀벌을 닮은 그의 작업 과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는 반복의 연속이어서 명상적이고 수행적으로도 보이지만, 사실은 반복이라는 측면에서 하루하루를 똑같이 살아가는 듯 느끼는 현대인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라이프는 반복되는 작업을 통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변화를 관찰하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완성된 그의 작업 결과물, 즉 황금빛 꽃가루로 이뤄진 바닥에 깔린 네모난 평면은 한국의 단색화라 불리는 작품들의 화면과 매우 닮아 있다. 또한 그 결과를 위한 행위들은, 장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행위와 매우 흡사하다.


최근 열린 두 전시는, 앞서 얘기한 반복적 행위의 결과로서 도예 작업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최근 그저 취미생활의 한 분야로 보이는 지경까지 격하된(?) 공예의 한계를 벗어나 자연스럽게 물성에 대한 실험으로 향해가는 두 도예작가의 시도를 볼 수 있는 전시들이다.


통인옥션갤러리 ‘이흥복’전


인사동의 통인옥션갤러리는 4월 13일~5월 1일 이흥복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의 작업은 원래 큐브 모양의 작은 도자기들이 반복적으로 나열된 전개된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업들은 금속재와 나무, 종이 등으로 만들어진 단위 형태들이 그 큐브 도자기의 자리를 대신한다.


알루미늄 판재들을 작가가 직접 자르고 구부려 화면을 가득 채우고 빨강, 노랑, 검정 등의 원색으로 컬러링한 평면작업들은 단색 추상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 작업의 출발과 과정을 살펴보면 그 근원은 물성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됐음을 유추하기가 어렵지 않다.

▲이흥복,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 레드'. 흙, 나무, 알루미늄, 95 x 130 x 10cm. 2015.


학부 시절 도예를 전공한 이흥복의 작업 과정에 물질의 특성은 분명 크게 작용한다. 흙이라는 물질은 처음 접할 땐 쉽게 느껴진다. 그러나 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예민하고 어려운 속성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그런 물성을 실험하는 데에 큰 매력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성에 묶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 듯 하다. 그는 “단지 재료에 경계를 두지 않을 뿐”이라고 소탈하게 웃으며 답한다. 그렇기에 그는 작업 과정에서 종이, 나무, 철이라는 재료에 관한 정의를 딱히 내리려 하지 않는다. 그때 그때 재료의 질감에 집중하며 그 물성에서 받을 수 있는 인상을 깊게 받아들인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 필요한 행위를, ‘쌓는다’고 표현한다. 적층은 도예의 작업 행위 중에서도 가장 자연과 닮은 행위다. 볼프강 라이프가 그랬 듯, 부정하고 싶어도 시간을 담을 수밖에 없는 행위이며, 결국 작품은 행위, 즉 과정의 결과가 된다. 그 과정은 무심의 경계에 있는 것이며, 그저 재료와 함께하는, 인상과 감성에 충실한 운율을 담은 결과물이 탄생한다.


그는 “흙에서 벗어나 재료적으로도 방법적으로도 자유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덧붙여 “그렇다고 공예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다만, 앞서 이야기했던 “한 가지 재료에 대한 물질성으로의 천착은 스스로 갇히는 꼴을 만드는 격”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공예 분야는 작가들이 스스로 닫고 갇히는 경향이 심해 발전이 더디다고.

▲이흥복 작가. (사진=통인옥션갤러리)


설치미술, 조각, 회화 등의 다양한 시도를 보이는 이흥복의 작업에선 미국에서 공부한 영향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도예를 하는 과정에서 익힌 물성을 대하는 자세와 작업 과정이 보이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시도는 도예 분야에서는 분명 센세이셔널 한 측면이 있다.


더불어, 오랜 시간 작품을 수집해 온 안목으로 공예 및 미술 분야에서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통인갤러리가 작가에게 공예 갤러리가 아닌 현대 미술 갤러리를 내주었다는 사실에서 공예 분야를 다시 격상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이흥복,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 옐로우'. 흙, 나무, 알루미늄, 95 x 130 x 10cm. 2015.



갤러리 에이큐브 ‘절제된 공간’전


한편, 서울 서촌에 있는 갤러리 에이큐브는 규모는 작지만 탄탄한 기획의 전시들을 선보이고 있다. 4월 6일~5월 15일 선보이는 ‘절제된 공간’전은 도예가 박정우의 작품들과 함께 윤형근 화백의 작품을 같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단순히 기능성이 강조된 도예 작품을 선보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단색화가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작업 과정에서의 공통적 속성을 돋보이게 한 점이 눈에 띈다.

▲'절제된 공간'전이 열리는 갤러리 에이큐브 전경.(사진= 갤러리 에이큐브)


큐레이터 주안나는 “분야는 다르지만 장기간에 걸치는 반복적 창작 행위라는 공통된 작업 과정”이라는 점을 이번 전시 기획을 통해 강조한다. 인간 존재를 자연을 닮은 행위를 통해 증명하는 동양적 세계관의 핵심을 잘 바라본 기획인 듯하다.


물레를 쓴 흔적 없이 손작업으로만 말끔하게 정돈된 작품들은 정 없이 깔끔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불 맛, 손맛이 표면에 묻어난다. 직접 만든 유약과 기물 표면의 가장자리에 일부러 의도한 듯 내놓은 유약 실패의 자국들, 그리고 세월에 닳고 닳아 둥글어진 몽돌과의 어울림은 자연이 만들어 내놓은듯 한 모습이다.


이번 기획전을 위해 박정우는 작년부터 새로운 작업을 준비했다고 했다. 작업 기간이 짧을 수 없는 도예의 특성 상, 많은 작업은 아니지만 단정하고 고즈넉하게 정돈된 작가의 작업은 그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갤러리 에이큐브에 전시된 도예가 박정우와 윤형근 화백의 작품.(사진=갤러리 에이큐브)


“모든 자연물은, 많은 구성들이 유기적으로 모여 전체를 구성한다. 그리고 각 부분 사이에 긴밀한 통일을 이뤄 부분과 전체가 필연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박정우의 말은 작가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동시에, 작품을 통틀어 작가의 미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더불어, “재료의 물성은 변화하면서 어떤 대상의 형태 등 고유의 특성을 변질시키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깊이를 더하고 풍미를 진하게 품어내며 그것만의 고유한 향기를 가지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박정우의 도예와 윤형근의 회화는 그런 재료가 지닌 물성을 최대한 살리고 인공적인 표현이나 기교를 절제해 여백이 숨 쉬는 자연 그대로의 날것, 즉 본연의 힘이 주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한다.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장르의 경계를 벗어나 미술이 가진 공통적인 속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 큰 기쁨이었다”고 전하면서, "이 전시를 통해 박정우나 윤형근이라는 작가를 부각시키기보다 한 공간 안에서 다른 분야 작가들의 숨겨져 있는 공통분모를 내보이고자 했다”이라는 기획의도를 밝혔다.

▲박정우, ‘물성과 비례’. 점토, 흑유, 몽돌, 47 x 47 x 38cm.

▲박정우, ‘물성과 비례’. 점토, 흑유, 45 x 41 x 4cm.

이번에 살펴본 두 전시에선, 현재 공예 분야가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더 깊거나 더 자유로운 시도를 하는 작가들의 태도를 물론 눈여겨봐야 한다. 하지만 더불어, 견고했던 두 미술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공간적-시간적 제약을 가진 상업 갤러리들이 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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