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행근 중국부자 이야기] ‘재벌 = 당간부’ 현상을 시진핑 해결할까
(CNB저널 = 송행근 중국경제문화학자) “부자가 되고 싶으면 관직을 맡지 말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한 지 1년 후 ‘중국 청년의 날’에 명문 베이징대학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주문한 말이다. 부귀란 한꺼번에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니 ‘부’든 ‘귀’든 하나만 선택하라는 말이다.
왜 시진핑 주석은 부자가 되고 싶으면 관직을 맡지 말라고 강조했을까? 여기에는 중국의 어두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어두운 현실이란 다름 아닌 정경유착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경유착으로 인해 소수의 신흥재벌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인민들은 가난한 계급으로 전락했다. 그러다보니 노동자 계급이 아닌 신흥 재벌이 영도하는 중국이 되어버렸다.
이미 2009년 기준으로 중국 상위 1만 번째까지 신흥 재벌 가문의 자산 합계는 2조 1000만 위안(247조 원), 가구당 평균 자산은 2억 위안(332억 원)이었다. 또 상위 3000번째까지 재벌 가문의 자산 합계는 1조 6960만 위안(280조 원)이었다. 가구당 평균 재산은 5억 6540만 위안(935억 원)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2014년 기준으로 6747달러(약 777만원)에 불과하다.
‘신흥 재벌’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국영기업 관련 사업을 수주하거나 국영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대다수 신흥 재벌이 이에 속한다. 둘째, 공산당 간부와의 특수한 인맥 형성을 통해 떼돈을 벌었다. 정경유착이 신흥 재벌이 되는 첩경임을 증명한 셈이다.
완다그룹의 주주를 보니 이건 “정경유착”
중국에서 본격적인 정경유착이 시작된 시점은 1995년이다. 당시 중앙정부는 대형 국유기업을 주식회사로, 중소형 국유기업을 민영화하는 국유기업 개혁을 단행했다. 그런데 국유기업의 소유권을 장악한 국가 공권력이 기업 활동에 개입하는 정경유착의 빌미를 제공했다. 혁명 원로와 고위 간부 자제 및 태자당(太子黨)이 수익성이 높은 국유기업 요직의 90%를 차지했다. 특히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경기부양책으로 시장에 푼 막대한 정부 자금이 부동산과 사회간접자본시설 개발에 투자되면서 고위직 부패 관료와 국유기업의 정경유착이 정점을 찍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 1일 오후(현지 시간)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시나리오 기반 정책 토의에서 관계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정경유착은 시진핑 주석이 당면한 시대적 과제이다. 이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 주석은 취임하자마자 반부패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정경유착의 사슬을 쉽게 끊어내지 못한다. 왜 그럴까? 제도적으로 정경유착이 사실상 합법화된 강력한 국가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합법화 된 강력한 국가적 시스템은 무엇일까?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이다.
올해 양회에는 ‘중국판 포브스’라 불리는 후룬 리포트 100위권 안에 포함된 중국 부호 가운데 총 36명이 전인대 대표와 정협 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표적인 억만장자를 들어보자. 리허쥔(李河君) 한넝홀딩스 회장, 장진둥(張進東) 쑤닝그룹 회장, 리옌훙(李彦宏) 바이두 회장, 레이쥔(雷軍) 샤오미 회장, 쉬자인(許家印) 헝다그룹 회장, 쭝칭허우(宗慶後) 와하하그룹 회장 등이다. 다시 말해 최대의 권력기관인 양회가 정경유착의 장이 되고 부자들의 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격유착의 대표적인 사례는 완다그룹의 성공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완다그룹은 부동산·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회장은 중국 최고 부자인 왕젠린(王健林·62)이다. 뉴욕타임스(NYT) 베이징 특파원 마이크 포사이스는 왕자오궈(王兆國) 전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의 아들 왕신위(王新宇)가 완다 그룹의 4대 주주이며, 자칭린(賈慶林) 전 전국정협 주석의 사위 리보탄(李伯潭)이 경영하는 우구펑(五谷豊)투자자문사와 유명 연예인의 모친 리줘성이 완다 주주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작년 4월 28일 NYT 보도에서 시징핑 주석의 큰누나 치차오차오(齊橋橋), 왕 전 상무위원의 아들 왕신위(王新宇), 리보탄 등이 완다의 주주라고 폭로했다. 치차오차오는 시 주석이 가장 좋아하는 누나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완다의 성공신화는 중국 최고 권력층의 가족과 친지를 주주로 끌어들인 강력한 정경유착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양회와 완다그룹에서 잘 나타나듯이, ‘꽌시’를 통해 구축된 정경유착은 고래심줄처럼 질기다. 그러다보니 정경유착은 시진핑 시대의 최대 난제이자 풀어야 할 숙제가 되고 있다. 그 때문에 시 주석은 2013년 3월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맑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관료’와 ‘상인’의 왕래는 도리를 지키며 손님처럼, 서로를 존대해야 하고 공과 사의 경계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3월 초 인터넷에 게시된 시진핑 국가주석 퇴진 요구 공개서한에 대한 조사에 나선 가운데 3월 29일 오전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명경신문망에 시 주석 퇴진을 요구하는 또 다른 서한이 게시됐다고 홍콩 언론이 30일 보도했다. 사진 = 빈과일보 캡처
특히 올해 3월 시 주석은 새로운 정경관계의 정의를 ‘친(親)’, ‘청(淸)’ 두 글자로 요약했다. 중국이 ‘친’과 ‘청’ 두 글자로 정경관계를 정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친’은 무엇인가? 지도층 간부들이 허심탄회하게 민영기업과 소통하고, 비공유제 경제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그들과 마음을 나누며 이끌어 주어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청’은 지도층 간부와 민영기업가 관계가 청렴결백하고 순수하며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는 동시에 돈과 권력의 거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민영기업가 자신들이 결백하고 정도(正道)를 걸으며 기율과 법 준수로 기업을 세우고 광명정대하게 경영하는 것을 말한다.
권력과 돈의 관계, 親淸 할 수 있을까?
만약 ‘친’과 ‘청’의 경계를 허물면 어떻게 될까? 두 가지이다. 반부패로 처벌받거나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시 주석은 취임하자마자 강도 높게 반부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부패를 때려잡는 것만이 중국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013년부터 “호랑이와 파리 모두 잡자(老虎苍蝇一起打)”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본격적으로 반부패 운동에 나섰다. 호랑이는 부패한 고위층 공무원과 공산당 간부를 말한다. 파리는 부패한 하위직 공무원과 공산당 당원을 뜻한다.
그 결과 작년 10월에 쑤수린(蘇樹林) 푸젠(福建)성 성장 겸 당위원회 부서기가 낙마했다. 현직 성장으로 낙마한 경우는 처음이다. 올해 초에는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 정책을 담당하는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의 궁칭가이(龔淸槪) 부주석을 비롯하여, 류즈캉(劉志康) 광둥성 부성장과 주밍궈(朱明國) 광둥성 정협(정치협상회의) 주석 등 호랑이들이 줄줄이 낙마하였다.
정경유착의 대가는 혹독하다. 감옥에 가거나 가산을 몰수당하거나 목숨을 잃는다. 푸싱(復星)그룹 대표이사 궈광창(郭廣昌)은 중국의 워렌 버핏으로 불리던 유명한 사업가다. 그는 약 78억 달러(9조 2000억 원)의 재산을 소유한 중국 부호 순위 17위의 인물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실종되었다. 중국경제주간은 지난해에 자살하거나 의문의 사고사를 당한 고위 관리가 25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정경유착은 중국 경제 성장의 암초다. 시 주석의 반부패 정책은 앞으로 더욱 강력하게 시행될 것이다. 관료와 기업가의 사이가 ‘물처럼 맑은 군자의 사이’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송행근 중국경제문화학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