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법률 칼럼] 이혼한 전처가 아이를 해외로 데려간다면?
(CNB저널=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이혼하는 과정도 어렵지만, 이혼 후에도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새로운 숙제가 남습니다. 누가 아이를 제대로 양육할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는 아이가 커가는 내내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 쪽 배우자가 아이의 양육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 상대 배우자는 ‘면접교섭권’이라는 형태로 아이와 접촉할 권리를 보장받습니다. 이혼 과정에서 당사자들끼리 너무 감정의 골이 깊은 나머지 변호사에게 상대 배우자가 아이를 보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면접교섭권이라는 권리는 특별한 경우, 예를 들어 상대방이 아동학대 범죄자인 경우가 아니면 박탈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는 다른 쪽 부모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에 많이 문제가 되는 사안은 아이를 양육하던 어머니(혹은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외국으로 훌쩍 떠나는 것입니다. 특히 일방 부모가 교포인 경우나 외국인일 때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이렇게 아이를 데리고 외국으로 가면, 보통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 아이를 보고 싶은 부모는 애간장이 타들어 갑니다. 특히 가족법 개정으로 아이의 성과 이름을 바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예를 들어 엄마가 재혼하면서 자식의 성을 변경하는 경우) 아이의 성과 이름을 바꾸고 외국으로 나가 연락이 두절되면, 사실상 남겨진 아버지와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단절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대법원 판결 중에 남편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자식을 베트남으로 데리고 가 친정에 맡긴 베트남 여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있습니다.
베트남 여성 B씨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고,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그러다 B씨는 남편 몰래 생후 13개월이던 아이를 데리고 베트남의 친정으로 가버렸습니다. 그 후 B씨가 돈을 벌기 위해 홀로 입국했다가 남편의 고소로 형사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B씨가 베트남으로 출국하던 당시 B씨는 남편과 아직 혼인 관계가 유지된 상태였습니다. 즉 이혼을 하지 않았고, B씨와 남편은 아이에 대한 공동친권자로서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검사는 B씨를 ‘국외이송약취 및 피약취자국외이송’으로 기소했습니다. 쉽게 말해 아이를 약취(유괴)해 외국으로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B씨가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아이를 데려간 것이 약취(유괴)에 해당하는지 문제가 됐습니다. 왜냐하면 약취라는 것은 “사람을 폭행, 협박 또는 불법적인 사실상의 힘을 사용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지배하에 둔다”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다문화가정의 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와 관련한 법적 제도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은 결혼이민자를 위한 한국어 교실 모습으로, 본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사진=연합뉴스)
우리 대법원은 “피고인(베트남 여성 B씨)이 아이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난 행위는 어떠한 실력을 행사하여 아이를 평온하던 종전의 보호·양육 상태로부터 이탈시킨 것이라기보다 친권자인 어머니로서 출생 이후 줄곧 맡아왔던 아이에 대한 보호·양육을 계속 유지한 행위에 해당하여, 이를 폭행, 협박 또는 불법적인 사실상의 힘을 사용하여 아이를 자기 또는 제3자의 지배하에 옮긴 약취 행위로 볼 수는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대법원 2013.06.20. 선고 2010도14328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결은 당시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갈렸는데요, 대법원의 소수의견은 “공동친권자인 부모의 일방이 상대방의 동의나 가정법원의 결정이 없는 상태에서 유아를 데리고 공동양육의 장소를 이탈함으로써 상대방의 친권 행사가 미칠 수 없도록 하였다면,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공동친권자의 유아에 대한 보호·양육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봐 약취 행위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다문화가정의 이혼 후 양육권 정비 필요
판결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대법원의 다수 의견은 약취죄의 해석에 중점을 두고 판결했습니다. 즉 약취죄의 개념상 “폭행, 협박 또는 불법적인 사실상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베트남 여성의 행위는 문제가 있는 행위지만, 우리 법 규정이 부족해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위 판결은 결혼 생활이 지속되던 중(그러니까 이혼하기 전에) 이뤄진 굉장히 예외적인 사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런 사례는 이혼한 후에 많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해외에 친정을 둔 아이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외국으로 가버린 후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점을 방지하기 위해 이혼 조정 때 “양육권자가 해외로 이민 가는 경우에는 양육권자를 다시 정한다”는 문구를 넣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 해외로 아이를 데리고 나간 이후에 이 조항은 있으나마나한 조항입니다.
이혼을 했건 하지 않았건 한쪽 배우자가 아이를 데리고 외국으로 사라진다면 다른 상대에게는 큰 상처가 될 뿐만 아니라 부모의 권리를 침해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쪽 부모가 상대방의 동의나 가정법원의 결정 없이 미성년 자녀를 외국으로 데리고 나간 경우에 대한 입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안창현 기자)
안창현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