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의학적으로 36.5℃는 신체가 안정감을 느끼는 온도라고 한다. 이보다 조금 넘어간 37℃는 고열에 가깝고, 35℃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는 저체온증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서울미술관 ‘연애의 온도’전에서의 온도는 조금 다르다. 37℃에서는 가슴이 뛰고 설렌다. 그리고 안정화를 거쳐 36.5℃에 이르고, 마지막으로 35℃에서는 몸과 마음이 차갑게 식는다. 바로 두근두근 사랑의 첫 시작부터 가슴 시린 이별까지의 온도를 상징하는 것.
‘연애의 온도’전은 2013년 하반기에 영화와 미술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전의 두 번째 시리즈다. 류임상 서울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서울미술관 1전시실에서는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 2전시실에서는 미술 전문가들을 위한 전시, 3전시실에는 젊은 층을 위한 전시를 선보여 왔다. 3전시실에서 열렸던 ‘러브 액츄얼리’전은 특히 젊은 층에게 호응이 좋았다. 성원에 힘입어 이번엔 ‘연애의 온도’전을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러브 액츄얼리’전에서 영화가 활용됐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누구나 겪었을 사랑의 감정, 그 보편적인 감정을 극대화 하는 장치로 대중음악이 함께 한다. 본격적인 사랑 이전에 서로 밀당을 하는 썸남썸녀의 대표곡 ‘썸’을 비롯해, 사랑과 이별곡의 대표 가수 성시경과 버스커버스커, 나얼 등의 음악이 미술 작품과 함께 어우러진다.
전시실 입구에서 가수들의 음악과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오면서 관객을 맞이한다. 그리고 각 전시 공간에 설치된 의자에 앉으면 사랑과 관련된 음악이 귓가로 흘러 들어와 노래를 들으며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또 노래 가사도 벽과 바닥에 표기돼 있다.
대중음악과 미술 작품 사이의 적절한 조화를 위해 곡을 먼저 선정하고, 그 의미와 부합되는 작가를 매칭하는 과정을 거쳤다. 총 22명의 작가가 참여해 총 129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 과정에서 미술관에서는 잘 전시되지 않는 일러스트 작가들과의 만남도 이뤄졌다.
류 학예실장은 “회화와 조각의 순수미술 분야를 포함한 일러스트, 사진,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이번 전시에 구상했다. 네이버에 일러스트를 올리는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서 일러스트 작가들을 추천 받았다. 대중적으로 사랑 받고 친숙한 일러스트를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매력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사랑의 첫 시작부터 살펴보자. 전시의 첫 시작은 37℃ 바로 ‘설렘의 온도: 사랑의 시작, 그 떨리는 감정’이다. 전시장 벽면도 핑크빛으로 절로 마음이 들뜨게 만든다. 시미즈 토모히로, 이우림, 장수지, DNDD(이정헌, 이고은), 김원근, 요시자와 토모미의 작품이 관객을 맞이한다.
시미즈 토모히로의 작품엔 한 소녀가 등장한다. 류 학예실장은 “소녀가 사랑을 하고 성장을 하면서 여자가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첫사랑의 풋풋한 첫 설렘과 동시에 처음으로 겪는 사랑의 감정에 대한 두려움까지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주제로
대중음악과 미술 작품의 만남을 시도
이어서 장수지의 화면엔 두 눈을 크게 뜬 사람이 등장한다. 눈은 그 사람의 감정을 말해준다고 했듯, 화면 속 인물이 어떤 사랑에 빠졌을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밖에 소박하고 평범한 우리네 일상 속에 존재하는 사랑을 표현하는 김원근, 동화 속에서 봤을 법한 소녀를 전시장으로 끌어내 사랑의 설렘을 느끼게 하는 요시자와 토모미 등 이 공간을 돌아다니는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사랑의 시작으로 급격히 뛰기 시작한 심장 박동을 잠시 안정화 시킬 수 있는 곳이 이어지는 두 번째 공간 36.5℃ ‘사랑의 온도: 행복한 우리, 언제까지나 함께’다. 썸을 타는 시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사랑에 푹 빠지며 행복을 느끼는 단계다. 이 공간에서는 특히 하정우, 퍼엉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주로 인물을 그리는 하정우가 사랑의 감정을 가득 담아 그린 하트가 전시장에 걸렸다. 류 학예실장은 “하정우(배우 겸 화가)는 창작 욕구를 그림으로 푸는 예술가”라며 “이번 전시를 위해 사랑과 관련된 작품을 찾아보다가 하정우가 그린 작품을 발견했다. 이번 전시 콘셉트와 맞아서 전시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 퍼엉의 그림도 이 공간에 설치됐다. 류 학예실장은 “이번 전시에서 일러스트와 순수 회화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싶은 의도도 있었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퍼엉의 작업에서 사랑 이야기를 발견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김영아, 구루부, 살구, 현현, 배예슬, 정혜경까지 따뜻한 봄날 사랑의 감정을 부추기는 작품들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세 번째 공간에서는 분위기가 반전된다. 핑크빛 전시장 벽면도 새하얗게 변한다. 바로 35℃ ‘이별의 온도: 멀어진 마음, 안타까운 우리’ 공간이다. 머리에 뿔이 돋고 화나 있는 듯한 임지빈의 조각상으로부터 이 공간이 시작된다. 임지빈의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화가 나면서도 상처 받은 마음에 아파하는 감정까지 아우르며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사라짐이라는 단어에 기초해 주인공 ‘사라’가 가진 추억의 짐을 그린 봄로야, 이별의 감정을 말라비틀어진 꽃으로 담아낸 정현목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조문기는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원망하게 되는 상황을 거침없이 담고, 이사림은 혼자가 된 사람의 일상을 덤덤하면서도 먹먹하게 담아낸다. 또한 눈물을 머금고 추억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미지를 흐릿하게 구성한 국대호의 작품까지 어우러진다.
전시의 마지막은 ‘나얼의 방’이 장식한다. 류 학예실장은 “이번 전시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기본으로 하고, 또 대중음악과 미술 작품의 만남까지 아우른다. 나얼(가수 겸 화가)이야말로 이 모든 주제에 가장 부합하는 아티스트이기에 전시장에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을 꾸렸다”고 말했다.
따뜻한 봄날, ‘연애의 온도’전은 사랑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사진을 자유롭게 찍으며 놀다갈 수 있는 곳으로 꾸려져 있었다. 류 학예실장은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 여기에 어우러지는 대중음악과 작가들의 작품까지, 어렵지 않게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전시”라며 “부담 없이 전시를 편하게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서울미술관 제3전시실에서 7월 3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