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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 시리즈 ① 에이큐브 대표 이승원] “좋은 그림 원한다면? 많이 보고 겁없이 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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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0호 김연수⁄ 2016.04.23 09:51:11

▲갤러리 에이큐브 대표 이승원. (사진=갤러리 에이큐브)


페기 구겐하임, 찰스 사치, 한국의 간송 전형필처럼 미술 컬렉터는 작가의 가장 큰 팬으로서 작가가 진심을 담아 작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뿐 아니라, 미술사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렇기에 콜렉터의 안목은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다.


경복궁 옆 서촌의 작은 갤러리 에이큐브의 대표 이승원은 갤러리를 운영하지만 많은 작품을 소장한 컬렉터이기도 하다. 그녀의 세심한 안목은 그녀가 운영하는 갤러리의 기획전시를 통해 드러난다. 규모가 작다고 해도 각각의 작품이 돋보일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 작품을 배치하는 것은 물론 비싸고 유명한 작품이라고 무작위로 가져다 놓지도 않는다. 주제와 기획력이 명확히 보이는 전시를 볼 때마다 이 작은 갤러리의 운영자가 궁금해지곤 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최고의 작품”


직접 만난 대표의 모습은 생각보다 매우 젊고 아름다웠다. 어려 보이지만 이미 미술계에 종사한 지 20년이 넘고 아이도 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 스스로의 이야기보다 미술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에 더 눈을 반짝거리곤 했다.


이승원은 국문학을 전공하고 석사로 아트 마케팅을 전공했다. 20여 년 전 미술계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는 고미술부터 접했다. 당시 국보급 도자기 등의 작품을 많이 만났는데 그때는 가치를 몰라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느낄 수 있었던 확실한 한 가지는 “가능한 한 많이 보는 것만큼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지름길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좋은 작품을 만나면 딱히 연구하지 않아도 작품에 대해 말이 막 나온다”고 했다. 그만큼 좋은 작품을 만나면 신이 나고 안목에 자신감이 생긴다는 뜻이다. 더불어 “작품의 투자가치보다 작가가 가진 철학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투자가치라는 것은 결국 작가의 환경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구작과 신작은 어떻게 다른지를 일부러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작가와 작품의 역사를 공부하게 된다.


인터뷰 도중에도 기자의 등 뒤에 걸려 있던 작품을 가리키며, “70년대 그림인데 저것이 어딘가를 떠돌다가 나에게 와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난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아무리 미술 이론 공부를 많이 해도 직접 작품을 보고 소장하는 경험에는 못 미친다고 강조한다. 이런 그녀의 자신감은 좋은 작품이라 판단되면 그 자리에서 구입하는 행동력으로 이어진다. 사실 아무리 만만한 액수의 작품이라도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경험으로 다져진 자신의 직관을 믿는 편이라고. 우물쭈물 하다가는 귀가 얇아지기 마련이란다.


▲윤형근, '무제'. 캔버스에 오일. 94 x 64cm. 1986.



“그려본 적은 없지만 어떻게 그렸는지는 보여”


그녀의 소장품들은 단색화와 일본-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소장품 중에 일본 작가의 작품이 많은 것은 에이큐브 갤러리가 일본의 갤러리와 결연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에이큐브 갤러리에는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종종 소개되며,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일본에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일본에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일본 작품을 많이 보면서 오히려 ‘한국적인 매력’이란 뭔지 더 잘 보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만들어 본 일은 없다고 했다. 신기한 것은, 그녀가 소장한 컬렉션들이 직접 재료를 만지고 접해본 작가들이 호기심을 보이는 물성 중심의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그녀는 “사람이 작품이고, 작품이 사람 같은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철학이 없는 작품은 처음에 아무리 예뻐 보여도 쉽게 질리고, 가슴으로 만든 작품은 확실히 오래 간단다. 그녀의 말처럼 오랜 경험의 축적은 보는 것만으로도 물질에 마음을 담아내는 작가의 태도를 읽어내게 하는 걸까.


▲이마이 류마, ‘Pag(패그)’. 캔버스에 에나멜과 아크릴, 53 x 41cm. 2015.

▲츠보타 마사히코, ‘玄・描・彩(현· 묘· 채)’. 종이에 실크스크린과 석판화, 50 x 66cm. 2007.


박서보, 윤형근 등의 한국 단색화를 비롯해, 화려한 색을 감각적으로 쓰는 이마이 류마, 츠보타 마사히코 같은 일본 화가의 작품들은 재료의 특성에 기반을 둔 반복적 행위에 의한 작품 구성이 특징이다. 이 대표의 뚜렷한 취향은 최근 입체 작업으로 그 호기심이 옮겨가고 있다. 최근 단색화의 물성과 연관시켜 전시한 박정우의 도예 작업과 송용원 작가의 작업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박서보, ‘묘법 No.104-83’. 캔버스 위에 한지와 혼합 매체, 68.5 x 101.6cm. 1983.


특히 철사를 반복적으로 감아, 마치 공중에 그리는 드로잉 같은 효과로 동물과 인체의 골격을 표현하는 송용원의 작업은 그녀가 최근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업 중 하나다. “차가운 소재를 사용했지만 따뜻함이 묻어나는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최근 송용원 작가를 비롯해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찾고 있는데,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작가의 인성을 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출신 학교니, 전시 경력 등등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다.


▲송용원, ‘증강현실+말’. 글루, 철사 용접, 바느질, 검은 실, 크리스탈 코팅, 98 x 27 x 64cm. 2014.


“많아진 관심만큼 사명감 느껴”


그녀는 미술과 친해지려면 직접 가서 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백날 인터넷으로 정보만 찾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라는 말이었다. 직접 현장에서 작가나 큐레이터한테 질문을 해야 한다. 어떤 질문도 상관없다. 생기는 호기심만큼 100개든 200개든 질문을 하란다. 또 다른 팁은, 최근 열풍이 불면서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는 아트페어를 가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 발품 팔 필요 없이 한눈에 미술 시장의 동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파악하는 국내 미술 시장은 매우 긍정적이다. 다른 무엇보다 미술에 관심이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확연하기에 그렇다. 미술품이 사치품이라는 인식은 이제 예전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더불어 2007~2008년 한국 미술 시장에 한창 거품이 형성됐을 때 상처받았던 사람들 역시 다시 돌아오는 추세라고. 


당시 호황기였던 미술 시장에선 좋은 작품의 공급이 부족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 고가에 팔려나갔고, 이제는 잊혀진 작가들의 작품을 붙들고 있는 피해자들이 속출했다. 그때 상처 받은 컬렉터들이 한국 미술의 호황과 더불어 이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그녀는 오랜 경험을 가진 컬렉터이자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는 딜러로서도 기존의 컬렉터를 비롯해 이제 막 시작하는 아마추어 컬렉터들을 잘 인도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컬렉터로서 작품 구입을 위해 다른 갤러리를 가보면 작품에 대한 애정 없이 거짓말 하는 게 보일 때가 있단다. 큐레이터나 딜러가 작품에 애정을 보이지 않으면, 작품과 작가의 매력 또한 생길 리 없다.


▲갤러리 에이큐브의 전시 공간. 송용원과 장주리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갤러리 에이큐브)


컬렉션의 방식이나 미술계의 생존에서 다른 특별한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성실하고 정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그녀는, 마지막으로 최근 일본 미술 시장은 침체에서 조금씩 벗어나 작품이 많이 나오는 추세라며, “일본 시장에서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팁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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