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주목 전시] 인도네시아 젊은 작가 14인의 패기가 한국에

송은 아트스페이스 '인도네시아 젊은 작가'전 현장

  •  

cnbnews 제481-482호 김금영 기자⁄ 2016.04.29 09:01:30

▲에드원 로세노의 작업이 벽에, 아낭 삽또또의 작업이 바닥에 펼쳐진 모습. 두 작업 모두에 인도네시아의 일상이 반영됐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전시장을 향해 걸어가던 길. 멀리서도 사진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시장 바깥에 걸려 있는 사진엔 한 인물이 있다. 인도네시아 제복을 입고 얼굴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감싸져 있다.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전시장에 들어섰는데, 이번엔 “부우우웅!” 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제 막 하늘로 떠오르는 비행기 영상 속 힘찬 엔진 소리가 전시장을 가득 채운 것. 그리고 다른 한 쪽엔 절을 하는 듯한 사람들의 그림이 바닥에 자리한다. “전시장에 어서 오라”고 환영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이처럼 ‘인도네시아 젊은 작가’전은 첫 시작부터 강렬하다.


송은 아트스페이스가 마련한 ‘인도네시아 젊은 작가’전은 2012년부터 시작된 국가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2012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매해 한 국가와 연계해 진행된다. 송은 아트스페이스 측은 “국내에 소개된 바 없는 각국의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을 소개하는 한편, 이들에게도 한국미술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해 시각 미술과 문화 전반을 보다 심도있게 이해하고 상호 교류하고자 기획했다”고 밝혔다. 2012년 스위스, 2013년 프랑스, 2014년 이탈리아가 선정됐고, 올해는 네 번째로 인도네시아다.


특히 올해 전시는 예술사진의 실험적 제작 및 보급을 위해 2002년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예술가들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 조직 MES 56의 그룹전을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로 눈길을 끈다. MES 56은 사진과 미디어라는 매체를 통해 자국의 정치, 사회, 종교, 문화 전반에 대해 조명해 왔다.


총 17명으로 구성된 MES 56 멤버 중 한국 전시를 위해 14명(짐 알렌 아벨, 아끽 아웨, 위모 암발라 바양, 누눙 쁘라스띠요, 앙끼 뿌르반도노, 랑가 뿌르바야, 유다 꾸수마 뿌뜨라, 에리 라마 뿌뜨라, 웍 더 록, 에드윈 로세노, 아낭 삽또또, 다니엘 사띠야그라하, 안드리 윌리암, 디또 유워노)이 함께 했다. 여기에 협력 큐레이터 락사마나 띠르따지도 참여해 전시를 함께 꾸렸다.


한국을 방문한 작가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인상적이고 독특했던 그들의 작업과도 확실히 닮아 있었다. 바깥에서부터 설치된 작업을 함께 보기 위해 서 있는 와중에도 전시를 보러 온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사진을 찍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어색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질감과 호기심을 한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들의 이런 태도는 인도네시아에서 선보여온 그들의 전시와도 닮았다.


‘멋지고, 유명한’ MES 56이 한국에 왔다


락사마나 띠르따지 협력 큐레이터는 “맥락과 개념적인 생각들이 틀에 박힌 시각적 형태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한 가지 원칙 아래, 암실에서 사진을 인화하는 전통적인 사진 작업 방식부터 설치, 퍼포먼스, 지역사회와의 교류, 비디오아트에 이르기까지 미래를 향한 현대 사진의 변화 과정에 지속적으로 적응하며 작업해왔다”고 MES 56을 소개했다.


이어 “MES 56은 그룹의 이름이자, 모두가 함께 작업하는 공간을 뜻한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활발한 전시를 이어왔지만, 이들의 작업이 예술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았다. 순수 예술가들은 사진을 예술이 아닌, 그냥 한 번씩 해보고 그치는 행위로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중 2003년 전시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았다”고 말했다.


MES 56은 2003년 족자카르타에서 열린 ‘제7회 족자카르타 비엔날레’에 처음으로 공식 초대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미술계와 사진계에서 낯선 존재로 취급 받았던 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락사마나 큐레이터는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시 했다. 작품 전시뿐 아니라, 전시 기간 동안 관객의 사진을 직접 찍어주면서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위모 암발라 바양의 작품. 성지 순례의 진정한 모습과 의미를 묻는 작업이다.(사진=김금영 기자)

▲다니엘 사띠야그라하의 ‘뉴 로맨틱(New Romantic)’. 인도네시아 새신부들이 전통 결혼식 복장을 입은 모습을 찍었다.(사진=김금영 기자)

MES 56의 브랜드인 ‘Keren dan Beken’도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멋지고, 유명한(cool and famous)’을 뜻하는 MES 56의 대표 브랜드를 사진과 함께 프린트해 비엔날레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그렇게 족자카르타 비엔날레를 매혹시킨 MES 56의 다음 목적지는 한국이다. MES 56 스튜디오에 붙어 있던 ‘Keren dan Beken’ 표어도 그대로 떼어 가져왔다. 처음 보고 놀랐던 비행기 영상은 ‘파 어웨이 소 클로스(Far Away So Close)’로, 인도네시아를 떠나 한국으로 떠나는 작가들의 설렘과도 같은 영상이다. 이처럼 전시장 2층은 전시장을 찾은 한국 관람객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는 콘셉트로 꾸려졌다.


이어 3~4층에는 각 작가들의 개성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걸렸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현실을 꼬집고,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예컨대 위모 암발라 바양과 누눙 쁘라스띠요는 인도네시아에서 흔히 이뤄지는 성지 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위모 암발라 바양의 사진은 매우 고요하고 경건해 보이는 반면, 누눙 쁘라스띠요의 사진엔 너도나도 핸드폰을 꺼내들고 성지 순례 광경을 촬영하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에 관광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 등 매우 이질적인 풍경을 동시에 노출시킨다.


락사마나 큐레이터는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로 성지 순례가 아주 중요하다. 위모 암발라 바양의 사진엔 본격적인 성지 순례를 시작하기 전의 복제품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장소가 아닌, 이 장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복제품의 사진을 찍으며 경건한 마음가짐을 갖는 시간을 가진다. 그런데 이어지는 누눙 쁘라스띠요의 사진을 보면 경건할 줄로만 알았던 성지순례의 현장이 마치 관광지를 보는 듯한 풍경이었음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두 작가는 성지 순례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인지, 두 풍경을 동시에 보여주며 생각할 거리를 준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곳곳 풍경 보여주며 한국 관객과 소통


그런가 하면 앙끼 뿌르반도노의 작업엔 독특한 의상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마구 찢어진 바지와 삐뚤어진 모자 등이 하이패션과도 비슷해 보이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모두 족자카르타 지역의 노숙자들이다. 인도네시아 노숙자들의 어려운 삶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들만의 철학을 보여주여는 것.


락사마나 큐레이터는 “사진 속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철학을 갖고 살아가는 족자카르타 지역의 노숙자들이다. 의도보다는 즉흥성 위주로 작업된 것들이다. 이 작업은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태도를 보여주다. 일반적으로 패셔너블하다는 기준을 깨부수고, 고정적이지 않고 자유로움 속 개성과 철학이 생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에드윈 로세노와 에리 라마 뿌뜨라의 작업엔 매우 일상적인 인도네시아 풍경이 펼쳐진다. 에드윈 로세노는 쓰다 남은 통조림 캔을 재활용해 화분으로 사용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락사마나 큐레이터는 “이는 인도네시아에서 흔한 모습으로, 버려진 폐품에 자연을 담은 풍경이 인상적”이라고 설명했다. 에리 라마 뿌뜨라는 족자카르타를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시내 이곳저곳을 찍은 풍경을 보여주면서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담았다. 꾸미지 않고, 포장하지 않은 풍경 자체를 보여줘 현실감을 더한다.


▲앙끼 뿌르반도노의 ‘비욘드 베르사체(Beyond Versace)’.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지역의 노숙자 모습을 통해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짐 알렌 아벨의 ‘더 디너(The Dinner)’. 2013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 당시 지인들과 함께 한 지지자 대담을 작업으로 다룬다.(사진=김금영 기자)

다니엘 사띠야그라하는 인도네시아의 새신부들 모습을 담았다. 사진 속 신부들은 전통 결혼식 복장을 입고 있는데, 하나같이 긴장한 표정들이다. 인도네시아의 결혼 풍습을 엿봄과 동시에 한국과의 예복 비교도 할 수 있다. 


디또 유워노는 자신의 내면과 일상 이야기를 전한다. 어린 시절 받은 수술의 영향으로 어느 순간 타인과 자신의 모습이 다르다는 걸 깨닫고, 이를 작업으로 표현했다.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도네시아의 평범한 일상과 더불어 정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짐 알렌 아벨은 실제 인도네시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했던 경험을 작업 ‘더 디너(The Dinner)’로 탄생시켰다. 테이블 위에는 음식을 먹는 영상이 펼쳐지고, 의자에 설치된 조형물엔 끊임없이 말을 하는 입의 영상이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뒤로 대화의 내용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락사마나 큐레이터는 “이 작업은 2013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 때 지인들과의 대담을 다룬다. 당시 후보 두 명이 큰 주목을 받았다. 한 사람은 과거 주요 세력들과 연계된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은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었다. 작가는 지인을 초청해 지지 후보와 그 이유를 물었고, 이를 바로 다음날 작업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랑가 뿌르바야는 정치적 상황으로 외면해야 했던 가족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가족 중 실종 인물로 처리된 할아버지에 관심을 가졌다. 락사마나 큐레이터는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과거 쿠데타 사건과 관련이 있었고, 집안은 쿠데타 집안으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할아버지를 애초부터 집에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실종 신고를 했다”며 “작가는 할아버지의 존재를 다시 이야기하기 위해 끊임없이 추적을 펼쳤다. 이 작품에서도 인도네시아 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랑가 뿌르바야의 ‘스토리즈 레프트 언톨드(Stories Left Untold)’는 쿠데타에 휘말려 실종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추적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밖에 유다 꾸수마 뿌뜨라, 웍 더 록, 안드리 윌리암은 인도네시아 현지 사람들과의 협업 작업을 보여준다. 유다 꾸수마 뿌뜨라는 사진 위에 유치원생이 그림을 그리는 이색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인다. 그리고 웍 더 록은 인도네시아 유명 예술가들의 팬들로부터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와 그 이유’를 설문해 작업으로 꾸렸다. 안드리 윌리암은 유명 작가들의 아트 상품을 이용해 새로운 작업을 탄생시켰다.


이 모든 작업을 다 감상하면 아낭 삽또또의 이미지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절을 하는 듯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전시장에 처음 들어설 때는 “어서 와라”고 인사를 건네지만, 나갈 때는 “헤어져서 아쉽다”고 다시금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락사마나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인도네시아의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마음껏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6월 25일까지.


▲한국 전시를 위해 송은 아트스페이스를 찾은 인도네시아 젊은 작가 그룹 MES 56.(사진=김금영 기자)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