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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공모 당선작가 ⑤ 김민정] 재개발에 쫓기면서 '이면의 공간'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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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1-482호 윤하나⁄ 2016.04.29 16:27:38

▲김민정, '기억의 전개도 2'. MDF에 스텐실과 믹스미디어, 120 x 45 x 7cm. 2014. (사진 = 김민정 작가)

몸 누일 곳이 위협 받는다는 말은 비단 사람에게만 유효하지 않다. 식물도 뿌리내릴 땅이 없다면 결국 생을 유지하지 못하듯 사람도 살 집이 없다면 편히 쉴 공간은 물론 삶에 뿌리내릴 여유조차 잃게 되니까. 주거 불안이 극에 달한 오늘도 도시 곳곳에서 재개발이 한창이다. 재개발은 도시재생과 보다 많은 이에게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됐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이에게 상처를 남겼다. 재개발 때문에 여러 번의 이사를 하게 된 김민정 작가는 철거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경험했다.

 

인터뷰 당일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던 중 한 대학교 옆에서도 재개발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일차선 넓이의 비포장 도로 사이로 높다란 가림막이 건설 현장과 하늘을 동시에 가리고 있었는데, 이 경험이 더해져 작가의 이야기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다. 작가가 말하는 폐허가 된 철거 현장과 그곳에서 발견한 그 이면의 공간에 대해 들어보자.


▲작품 '더 블루 스테어스(The Blue Stairs)'의 그림자 옆에 선 김민정 작가. (사진 = 윤하나 기자)

추억과 현재 담은 시간의 그릇, 집 

재개발은 작가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야기다. 작가는 유년기를 보낸 마을을 떠나 옆 동네, 또 그 옆 동네로 이사한 현재까지, 모든 이사에는 재개발이 있었다. 심지어 잠시 부모의 집을 떠나 친구들과 작업실을 얻어 옮긴 목동에서도 1년 계약을 마저 못 채우고 8개월 만에 재개발로 떠나야 했다.

 

작가가 공간, 특히 건물에 관해 작업하게 된 이유는 이 경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동네 주민들이 모두 떠나 마을은 폐쇄되고, 철거되다 반만 남은 집들이 상처를 벌린 채 남아 있는 모습을 모두 지켜봤다. 심지어 두 번째 이사한 곳에선 조합원들의 돈을 들고 도망간 조합원장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의 형체만 남은 폐허 속에서 마치 누군가가 막 나와 밥상을 차릴 것 같은 반상을 발견했다. 그 누군가가 매일 밥을 먹던 공간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남은 흔적들이 신기루처럼 작가에게 다가온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집이었을 장소들은 막 부상당한 병사의 상처처럼 삐죽한 철근과 시멘트 단면을 적나라하게 내보였다. 집 주인의 흔적이 곳곳에 남은 이 폐허 공간이 작가의 재개발 구역' 연작에 고스란히 담겼다.


▲김민정, '36-7'. 종이에 아크릴릭, 36 x 24cm. 2015. (사진 = 김민정 작가)

작품 ‘36-7’에는 재개발 현장 가림막과 천막 너머로 보이는 거실등, 밥상 위의 따뜻해 보이는 밥과 수저 그리고 가림막 밖으로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통이 기묘하게 혼재됐다. 삶의 흔적은 고스란히 발견되지만, 그 자리에서 사람만 쫓겨난 것 같다. 그것도 급하게... 36-7번지라는 주소도 주인이 미처 챙겨나가지 못한 사라질 것들의 일부다.

 

그런데 작가는 이 현장을 쓸쓸한 감상으로만 표현하지 않는다. 작품 공격받은 집재개발 지역은 평온한 공간이던 집이 포클레인과 크레인으로 휘청이고 위협받는 상황을 그린 직관적인 드로잉이다. 재개발에 관한 일련의 작업들은 오랜 기간 너무 가까이서 지켜본 철거 현장을 작가 내부로 소화하는 동시에 외부로 드러내기 위함이 아닐까. 왜냐하면 가림막의 내부는 직접 찾아가지 않는 이상 외부인들에게 보일 일이 없는 공간일테니까.

   

시각과 인지의 사각지대

작가는 이전까지 건물을 그저 우리가 주로 생활하는 정육면체 돌덩어리라고 여겼다.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되는 집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작가는 춤을 춘 듯 휘어져 있는 철심들과 벽과 벽 사이의 색 바랜 스티로폼, 그리고 콘크리트의 허옇게 뜬 가루들을 보고 평소 지내왔던 건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우연히 본 건물의 단면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관통할 주제를 발견한다. 바로 이면의 공간이다.

 

겉으로 드러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뜻하는 이면의 공간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중요한 표현이다. 시각의 범위, 그리고 인지의 범위 밖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는 이전부터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강력히 확신했다. , 다중차원 등 관념적인 것에서부터 당장 내 눈앞에 없지만 실재하는 일들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철거민 추방과 재개발 현장의 아수라장이 가림막에 가려져 있듯이, 내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를 부정할 순 없는 일이란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유년 시절과 연관된 재개발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이면공간의 시각적 가능성에 대해서도 작업해왔다.

 

▲김민정, '디 아치(The Arch)'. 아크릴에 실크스크린과 스텐실, 30 x 40 x 12cm. 2014. (사진 = 김민정 작가)

 

이면의 세계

작가가 원래 갖고 있던 건물에 대한 인식은 철거 중인 건물 단면을 봄으로써 깨졌다. 이 과정, 즉 건물이 직접 보여주는 외면과 평소 보이지 않는 내부 구조를 작가는 정()과 반()의 단계로 인식했다. 그리고 이렇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중의적으로 합()체하는 과정을 작가는 작업으로 구현한다. 시각적으로 인지되지 않는 공간을 상상하고 가상의 차원을 더해 비현실적인 구조를 만든 이면의 세계시리즈가 그것이다.

 

투명한 아크릴판을 이용해 계단이나 아치 등의 건축적 요소가 들어간 구조물을 만들고, 여러 질감과 색감을 곳곳에 삽입했다. 이 작품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공간을 은유한다. 투명한 소재를 사용한 이유도 우리가 일반적으론 볼 수 없는 공간이란 의미를 내포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구조물에 빛을 비추면 어떻게 될까?


▲이면의 세계에는 그림자가 더 선명한 외침을 던지기도 한다. 김민정, '더 블루 스테어스(The Blue Stairs). 아크릴에 실크스크린과 스텐실, 32 x 40 x 8cm. 2014. (사진 = 윤하나 기자)

  

작업실 등을 끈 채 작은 불빛을 구조물을 향해 비추자 복잡하리만치 선명한 구조물의 숨은 내부가 드러났다. 공간의 내외부가 모두 보이는 이 투명한 구조물은 오히려 구조물 자체를 바라볼 때보다 그림자를 통해 더 극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된다. 투명하거나 불투명한 부분, 색감과 질감, 구조와 벽의 두께감이 모두 그림자가 돼 구조물 이면을 타고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 비현실적인 4차원의 공간에 대해 작가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공간(또는 사건)의 외침이라고 표현했다. 이면의 세계는 바로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잊고 있는 어떤 것에 물음을 던지는 작업이다. 이렇게 건물의 가려진 공간, 철거 현장의 가림막 너머 등 작가가 발견한 이면의 세계는 현재도 계속 확장 중이다.


또 다른 사회의 이면 탐구

작업실에 놓인 드로잉들을 보며 이야기는 현재 진행 중인 작업으로 이어졌다. 하나는 집이란 공간에 대한 기억의 아카이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회적 문제가 담긴 드로잉이었다. 작가가 보여준 한 장의 드로잉에는 거대한 굴뚝의 사다리 아랫부분 철근이 모두 하늘을 향해 휘어 있었다. 바로 쌍용자동차 굴뚝투쟁 사건이 떠오른다.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은 것과 잊힌 것의 간극을 담아낼 예정이라고 한다. 작가는 세월호, 용산참사 등의 중요한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해야 할지 고민하고 다시 한 번 인식되길 마음에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에 물음을 던지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는 진부해 보이더라도 진부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야기를 건넬 때 사람들과 깊이 교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김민정, '어 듀얼 스모크스택(A Dual Smokestack)'. 종이에 연필과 스텐실, 36 x 24cm. 2015. (사진 = 김민정 작가)

 

현재 작가는 2016 아르코 신진작가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작가로 살기 위해선 때로 작업할 시간도 포기해야 하고, 이겨낼 것도 많지만 그래도 작업을 이어나가고자 지원했다고 한다. 워크숍을 통한 기획 전시도 올해 말 인사미술공간에서 예정됐다. 전시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가에게서 기분 좋은 설렘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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