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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스타 금수저' 물고 미술 입문한 조영남, 손으로 일하는 작가 모욕말라

조영남의 代作, 그건 관행 아니라 착취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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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4호 김연수⁄ 2016.05.19 11:47:21

▲진중권 교수의 트위터.(사진=진중권 교수 트위터 캡쳐)

가수이자 작가를 자처하는(?) 조영남 대작(代作) 논란은 작가 본인이 아니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보다 “그것이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조영남 자신의 변명이 더 큰 논란을 가중시킨 듯하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미술계의 관행’이란 발언이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작품을 완성하는 행위를 과연 관행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현재까지 대개의 언론들은 평론가와 교수들의 말을 빌어 "관행이 맞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술 작품은 당연히 작가가 직접 만드는 것'인 줄 알았던 일반인들은 상식이 깨지는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다. 그에 따라 논란 또한 거세지고 있다.


평론가 목소리는 크고, 미술작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진중권 교수를 비롯한 평론가와 몇몇 미술 교수들은 그런 관행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근거를 현대미술의 특징에서 찾는다. 개념미술과 팝아트 이후 작가는 개념만 제공하고, 물리적 실행은 다른 이에게 맡긴다는 소리다. '권위 있는 식자들'의 그럴 듯한 논거에 언론들은 조영남 작업이 대작인지 아닌지의 판단을 개념의 여부로 판단하는 듯하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언론 보도에서는 정작 전업 작가의 의견은 배제돼 있다. 미술계를 형성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생산자인 작가들이다. 대작인지 아닌지, 즉 작가의 양심 여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왜 정작 직접 붓을 들고 조각칼을 잡고 작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거의 취재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또한 현대미술을 '개념 위주의 미술'로 한정짓는, 공부 좀 했다는 분들의 식견이 참으로 놀랍다.


재료와 씨름하며 고뇌하고, 작품에 혼을 불어넣는 예술가를, 트렌디하지 않은 장르를 한다는 이유로 르네상스 고전주의, 혹은 18~9세기 낭만주의라는 구시대 예술가처럼 정의하거나, 자신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지에 의한 몰이해로 몰아가는 모습이 창작자 측 입장에서는 그저 헛웃음만 나오게 할 뿐이다.


정작 창작자인 작가들 사이에서 조영남의 작품은 "사기"라는 게 중론이다. 작가와의 교류가 눈에 띄는 평론가 임근준은 “윤리적 타락에 저급한 미적 사기”라고 비판했다. "조영남은 발상과 노동의 분리로 어떤 미적 실험을 한 것도 아니다"는 지적이다.


조영남의 그림은 개념미술에 해당하나? 


상식에 근거한 대중들의 판단 역시 조영남의 작품이 개념미술의 영역에서 논의될 성질이 아님을 알고 있다. 조영남 작품의 미적가치 판단 기준에, 그가 정식으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미술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쌓은 명성이 작용했다는 편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른바 '아트테이너'로 불리는 연예인들이 그들의 작품을 몇 천만 원씩에 팔아 치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입시 기간을 합쳐 몇 십 년씩 작업과 씨름했지만 이름을 알릴 수 없었던 작가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예술가로서 편협한 시선으로 작업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작업이 반드시 잘 받은 순수예술 교육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란 예술적 판단도 있다.


한국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하지만, 목소리 큰 평론가들의 "현대미술에선 콘셉트가 중요하고 대작은 관행이니 문제 안 돼"라는 헛된 이론만 울려퍼지고, 정작 도구를 손에 들고 고군분투하는 작가들의 의견은 부각되지 않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이번 사태의 두 번째 핵심은, 조영남이 대작 임금을 작품 당 10만원씩 지급했다는 대작 작가의 증언이다. 미술계의 해묵은 썩은 관행을 들춰낸 셈이다. 그렇다. 관행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미술의 특징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착취로서 존재해왔다.


스승과 제자라는 명목으로, 미술계의 줄서기라는 명목으로…. 팝아트-개념미술에나 적용돼야 옳은 서구의 관행이, 이 땅에선 조영남이 한 것처럼 평면 회화에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실행돼 왔다. 물론 제대로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게 중론이다.


미대생 착취하는 교수들은 "개념 운운" 말할 자격없어


특히, 대학에서 교수들의 작업을 위한 학생의 노동력 착취는 거의 질병 수준이다. 교수가 개념만 제공한 뒤 컬렉티브 작업이나, 컬래버레이션으로 포장되는 것은 차라리 고마운 일이다. 임금 한 푼 없이, 함께 만들었다는 단 한 마디 언급없이, 그저 밥 한 끼에 만족하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왜 바보같이 그러고 있냐고?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나라 미술계가 너무도 좁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에 의해 여론이 크게 흔들리는 바닥인 탓이다. 미술계에서까지 흙수저를 운운해야 한다는 현실이 구차스럽지만, 자신이 하는 미술 영역에서 사장되지 않으려면, 줄없고 뒷배경 없는 작가들은 작품 몇 점이라도 팔려면 어떤 줄이라도 잡아야 한다.


그런 와중에 “대작 작가를 도와주기 위해 안 그려도 되는 작품을 10만원씩 주고 그리게 했다”는 조영남의 말은 괘씸하다. 정말 도와줄 마음이 있었다면, 작품 판매 활로를 열어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미술 작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조영남은 양심을 속인 채(양심을 속인 것 자체를 스스로 모를 수도 있지만) 어설프게 알고 바보같은 변명을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대작을 공급하는 행위가 현대미술의 관행이라며 그를 옹호하는 평론가와 교수들은 미술계의 '갑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노력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평론가는 그들이 아는 식견과 경험의 한계 탓이라 쳐도, 미대 학생과 졸업생들의 현실을 잘 아는 교수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


사실, 이 모든 문제는 썩은 관행을 말없이 키워온 예술가들 스스로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것이 조영남이라는 한 연예인의 어설픈 예술가 놀이로 들춰진 것일 뿐이다. 작가의 진실한 고민을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평론가와 관객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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