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눈을 가린 채 웃고 있는 인물. 성별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이빨엔 교정기가 가득하며 눈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한 느낌이 있었다. 웃고는 있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어두운 느낌에 더 가까웠다. 아마 영화 ‘하울링’에 등장한 작품의 이미지가 강하게 인식됐던 것 같다. 겉으로는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속을 살펴보면 불법업소를 운영하는, 전혀 두 얼굴을 지닌 공간에 등장한 작품의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그랬던 인물이 미세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화면은 더 화려해졌고, 여전히 눈을 가리고 교정기를 꼈지만 뭔가 밝아진 느낌이 포착된다. 초창기 작업에서 잘 볼 수 없었던 ‘복(福)’ 등 행복을 기원하는 글자를 바탕으로 한 작업도 눈에 띈다.
한국의 전통 종이인 장지 위에 ‘욕망’과 ‘존재’라는 화두를 가지고 작업해온 김지희 작가가 2년 만에 국내 개인전으로 돌아왔다. 표갤러리에서 5월 3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플로팅 원더랜드(Floating Wonderland)’에서 근작을 중심으로 그녀의 작업 세계를 보여준다.
오랜만에 만난 작가는 자신의 작업처럼 밝아진 모습이었다. 그녀는 특히 지난해 바쁜 시간을 보냈다. 홍콩 뉴월드그룹 대형 쇼핑몰 디파크(D PARK)와 신년 기념 컬래버레이션을 하며 홍콩 관객들과 만났고, 단체전 및 국내외 아트 페어에도 꾸준히 나갔으며, LG생활건강과도 청윤진 10주년 기념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또 김지희 개인으로서도 바쁜 생활을 보냈다. 결혼 후 예쁜 딸을 낳아 이젠 엄마로서도 새 인생을 시작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어요. 하지만 꾸준히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죠. 올해는 국내에서 오랜만에 개인전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만날 수 있어 뜻 깊어요. 욕망과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이어져요. 현대인의 가면성을 시작으로 이 이야기를 계속 해왔죠.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웃는 얼굴에 부여된 교정기는 현대인이 쓴 가면과도 같다. 인간은 늘 더 나은 삶을 욕망한다. “나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싶어” “나는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난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싶어” “난 명품가방을 갖고 싶어” 하지만 작가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 욕망들이 정말로 본인이 원하는 것일까?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기준에 맞춰 욕망을 억지로 부여받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의문을 화면 속 인물에 교정기를 부여하면서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다. 교정기는 인물을 억지로 웃게 하는 장치, 즉 억압과도 같은 존재다.
그리고 이 작업이 그녀의 대표 시리즈로 꼽히는 ‘실드 스마일(Sealed Smile)’ 즉 포장된 미소다. 눈을 가린 것도 ‘학습된 욕망’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됐다.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는 눈을 안경 등으로 가려 정말 원해서 웃고 있는 것인지, 위장된 웃음인지 알 수 없는 여지를 남겼다. 냉소적인 미소라고도 볼 수 있다. 화려한 화면은 욕망을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다.
욕망에 대한 냉소적 시선에서
진정한 욕망의 이상향 바라는 마음까지 발전
“왕관은 욕망을 상징하는 요소이고, 꽃은 찰나의 순간 아름다움을 발하고 지는 욕망의 순환을 상징해요. 꽃과 왕관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순간의 욕망에 홀리고,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들어가 있죠.”
현재도 이 시리즈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점은 희망적인 태도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욕망에 대한 의문과 안타까움을 보여주는 데서 더 나아가 “누구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원더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도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일단 글씨 작업이 눈에 띈다. 이 작업은 작가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보고 받은 강렬한 인상에서 비롯됐다.
“젊을 때 성공한 추사 김정희 선생은 주위의 시기와 질투에 시달려 유배를 떠나게 됐죠. 제가 본 글씨는 김정희 선생의 말년 작업이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화려했던 과거 시절의 글씨보다 말년의 글씨가 더욱 와 닿았어요. 겉으로는 원하는 것을 다 손에 넣은 것 같은, 화려한 시절에 오히려 김정희 선생은 쓸쓸함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말년에서야 진정으로 자신의 진정한 욕망의 이상향을 이룬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시선으로 욕망을 바라보니, 욕망은 정말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정말 가까운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바라보고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화면에 글씨 ‘복(福)’을 등장시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잉어, 모란 등 전통적인 조형 요소를 통해 부귀영화, 무병장수, 입신양명을 향한 인간의 염원, 그리고 행복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까지 담았다.
아마 이런 변화는 작가의 삶의 변화에서도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만났을 당시의 김지희는 화려한 느낌이 강했다. 작업에의 열정이 대단했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미술계뿐 아니라 미샤와의 컬래버레이션, 인기 그룹 소녀시대와의 컬래버레이션 등을 통해 대중에게도 그녀의 작업이 널리 알려지면서 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갈수록 커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번에 만난 김지희는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치열한 마음이었어요. 얼른 미술계에서 자리를 잡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죠. 누군가가 성공했냐고 물으면 제 대답은 정해져 있었어요. ‘아직 멀었다’고. 그런데 어떤 가수의 인터뷰를 봤어요. 그 가수는 행복하냐는 질문에 ‘사랑을 많이 받아 행복하다’고 했어요. 물론 더 욕심을 낼 수 있는 일이에요. 하지만 지금 이 행복한 순간을 간직하는 모습이 정말 좋아 보였어요. 그리고 나서 제 주위를 둘러보니 감사한 것들 투성이더군요. 왜 그동안 못 봤나 싶었어요. 너무 앞만 보면서 주위를 둘러본 건 아닌지, 저야말로 학습된 욕망을 쫓은 건 아닌지 저부터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내일만 살면 소중한 오늘을 놓칠 수 있다”고 연신 강조했다. 김지희의 마음은 이번 전시에 회화와 함께 내놓은 조각 작업에서도 느껴진다. 결혼하고 아기를 가지면서 처음으로 도전한 조각 작업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특히 느껴지는 작업이다. 서로 감싸 안은 곰 모양의 조각상들에서 냉소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따뜻함이 가득하다. 전시에는 5마리의 곰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그녀의 희망적인 메시지와 더불어 대형 작업을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주로 소형, 중형 작업을 많이 선보였는데 이번 개인전을 위해 처음으로 200~300호 규모의 대형 작업을 했다. 김지희는 “속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하면서 정말 즐거웠다. 그림을 그리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실컷 담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변화가 포착되기는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꾸준하다. 다만 이야기를 부드럽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그녀가 꿈꾸는 ‘플로팅 원더랜드’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새로운 궁금증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전 작업에서는 어두운 느낌이 강했어요. 부담감도 있었죠. 그런데 저는 이 길을 평생 걸어갈 길로 여기고 있어요. 그래서 눈길을 끌기 위해 꼭 강하게 말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조급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건네는 거죠. 욕망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진정한 욕망을 찾아가는 과정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고요. 꾸준히 계속해서 작업으로 이야기를 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