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발칸 반도] 발칸 아름다움의 핵, 마케도니아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6일차 (슈코드라 → 알바니아 티라나 →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마케도니아라는 국명 때문에 생긴 갈등
남한의 27% 정도 국토 면적을 가진 인구 206만 명의 마케도니아는 발칸 남부에 자리 잡은 내륙 산악국가다. 마케도니아 또한 발칸의 다른 나라들과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졌다. 즉, 로마제국, 불가리아왕국, 세르비아왕국, 비잔틴제국, 오토만제국, 나치 지배, 유고연방, 그리고 연방 해체 후 독립선언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이 그것이다. 다만 독립을 이루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처럼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는 것이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는 1991년 독립선언 이후 그리스의 완강한 반대로 몇 년이 지나서야 독립을 인정받는 어려움을 겪었다. 마케도니아라는 국가 명칭을 놓고 같은 이름의 지역 명칭이 그리스에 있고 넓게는 알렉산더대왕의 고대 마케도니아제국 또한 그리스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것이 그리스의 반대 이유였다.
북쪽 국경을 맞댄 코소보도 마케도니아에게 편한 존재는 아니다. 1999년 코소보전쟁 때 세르비아의 공격을 피해 36만 명의 알바니아계 코소보 난민들이 들이닥치기도 했고, 마케도니아 영토 내에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자치정부 설립을 주장하는 코소보해방군(KLA: Kosovo Liberation Army)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아름다운 산악국가
마케도니아는 유럽에서 마지막 남은 미지의 땅으로 산과 호수와 강이 어우러진 자연경관, 풍요로운 역사 유적과 목가적인 전원 풍경까지 갖춘 아름다운 나라다. 주민의 다수는(64%) 정교를 믿는 마케도니아인이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알바니아계(25%)를 비롯해, 집시와 터키계까지 다인종이 어우러져서 사는 나라여서 어떤 의미로는 발칸의 대표자라고도 할 수 있다. 참고로 유럽에서 로마(Roma)라고도 부르는 집시의 인구대비 비율은 불가리아(10.3%, 75만 명)에 이어 마케도니아 9.6%(20만 명), 슬로바키아 9.2%(50만 명), 루마니아(8.3%, 185만 명) 등의 순으로 마케도니아는 집시가 많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바르다르강이 도심을 관통하는 스코페는 발칸의 중심이자 문명의 교차로에 있다.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공존하는 다문화, 다종교, 다인종 도시다. 사진 = 김현주
이번 여행 기간 중 발칸의 여러 소국을 지나며 수없이 입경과 출경을 반복했지만 국경 통과는 언제나 성가신 일이다. 소국이라 하면 보통 면적이 남한의 15∼60%, 인구는 적게는 68만(몬테네그로), 많아야 700만(세르비아) 정도다. 그래도 역사적, 문화적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끼리 함께 사는 나라를 세우려고 저마다 피까지 흘린 것을 생각하며 작은 성가심이나 불편함 따위는 넘겨 버린다.
그러는 사이 버스가 마케도니아 국경도시 스트루가(Struga)에 도착하니 완전히 어두워졌다. 택시를 타고 오흐리드(Ohrid)에 찾아들어간다. 불과 8km 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 택시기사는 무려 15유로(한화 2만 1000원)를 요구하며 물러서지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 4500달러 정도인 마케도니아의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엄청난 바가지다. 처음 와서 길이 낯선 여행자들을 상대로 심술을 부리는 택시기사의 상혼이 얄밉다.
7일차 (오흐리드 → 마케도니아 스코페)
산과 호수에 쌓인 교회당과 수도원
새벽에 오흐리드 유적지 탐방에 나선다. 오흐리드의 새벽을 독점하는 기분이 삼삼하다. 숙소를 나와 15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호수, 아니 바다 같은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는 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의 자연 국경을 형성한다. 오흐리드는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98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됨으로써 문화와 자연 유산을 모두 가진 드문 곳 중 하나가 됐다. 2800m 높이의 산과 호수에 감싸인 오흐리드는 11세기 잠시 불가리아제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호수 주변은 유럽에서 인류가 가장 먼저 정착한 곳 중 하나이고 호수는 300만 년이나 됐으니 역사보다 오래 됐고 전설보다 오랜 곳이다.
올드타운 옛 골목에 들어선다. 여기 또한 성곽도시다. 반쯤 허물어진 성곽 담장과 오래된 교회가 먼저 반긴다. 1035년에 건축된 성소피아교회는 1000년이나 됐는데도 거의 원래 모습 그대로다. 오토만 시절 모스크로 전환되면서 현관이 덧붙여지기도 했으나 교회 내부의 프레스코는 온전히 보존됐다. 화강암 깔린 골목은 언덕진 것도 그렇고 하얀 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것까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의 골목을 많이 닳았다.
▲오흐리드 호숫가의 예쁜 마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흐리드는 2800m 높이에 산과 호수로 둘러싸여 있다. 사진 = 김현주
▲오흐리드 호숫가 절벽에 자리 잡은 작은 카네오 교회가 보인다. 아담하고 작은 교회가 숨 막히게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사진 = 김현주
깊은 산중에 숨은 비경
호숫가의 예쁜 하얀 집들, 투명하게 깨끗한 호수,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풍경인 것 같다. 벌써 교회나 수도원을 몇 개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위치가 가장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교회나 수도원이 있다. 한때 365개의 교회가 있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 같다.
물론 성곽 바깥 도시에는 오토만 시대 이후에 생긴 발칸터키식 모스크도 적지 않으니 여기 또한 발칸의 예루살렘 아닌가?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성요한 카네오 교회(St. John Kaneo Church)는 아담한 작은 교회이지만 오흐리드 호수를 내려다보는 절벽에 자리 잡아 숨 막히게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이렇게 깊숙한 곳에 비경을 숨겨 놓은 신에게 저절로 영광의 찬미가 솟는다.
성 판텔레몬-플라오슈닉(St Pantelejmon-Plaoshnik)은 매우 중요한 종교적 중심이었다. 10세기에는 최초의 대학이 열렸고 키릴 문자(Cyrillic Alphabet)가 창제된 곳이다. 오늘날 키릴문자는 발칸 국가 대부분은 물론이고 러시아와 구 소련연방 국가에서 사용한다. 언덕을 끝까지 올라 사무일왕 요새(King Samuil Fortress)에 닿는다. 내려오는 길 중간에는 원형경기장(ampitheater)이 있다. 이 좁은 산언덕에 온갖 문명이 흔적을 남겨놓은 인류가 위대하다. 탐방을 끝내고 보행자 거리를 지나 숙소로 돌아온다.
▲강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가 많은 가운데 스코페 스톤 브리지는 단연 압권이다. 15세기 오토만 시대 술탄 메메트 2세가 건설했다. 사진 = 김현주
시간이 더 허락하지 않아 짧은 탐방을 마치고 아쉽게 떠나지만 시간이 넉넉한 사람들은 호숫가 전망이 더 나은 지점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버스로 오흐리드를 떠난다. 스코페(Skopje) 가는 길 또한 계속 첩첩산중을 지난다. 여러 작은 도시들을 들러 버스는 4시간 만에 스코페에 도착했다. 이로써 발칸에서의 길었던 버스 여행이 무사히 끝났다. 모두 합하면 버스를 타고 30시간, 1500km를 이동했다. 발칸에서는 버스가 육상 교통의 최강자다.
남부 발칸의 교차로
발칸 내륙의 중심 도시답게 스코페는 깨끗하고 세련된 현대 도시다. 바르다르(Vardar)강이 도심을 관통하는 스코페(인구 51만 명)는 베오그라드와 아테네를 잇는 남북 발칸 루트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문명의 교차로에 있고 발칸의 중심에 있는 만큼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공존하는 다문화, 다종교, 다인종 도시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도시 탐방에 나선다. 빨간 2층 버스가 눈에 많이 띈다. 마케도니아 정부가 중국 유통(Yutong, 宇通)사로부터 220대를 구입해 운행 중이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시내 중심을 향해 걷는다. 국립극장, 국립박물관 등 신축 건물이 멋진 새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 한창 마무리 단장 중이다. 새로 시작하는 나라답게 공공건물들은 대부분 새 건물이거나 새로 짓고 있다.
▲스코페 도심 풍경. 발칸 내륙의 중심도시답게 깨끗하고 세련된 모습을 뽐낸다. 사진= 김현주
그 중에서도 마케도니아 투쟁(Macedonian Struggle) 박물관, 국립문서보관소, 교향악당(음악당), 국립경기장, 알렉산더대왕 국제공항 등의 공공시설이 아주 최근 완성됐고 도심 곳곳에 광장과 다리, 동상들이 새로 들어섰다. 강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가 많지만 그중 압권은 스톤 브리지(Stone Bridge)다. 15세기 오토만 시대 술탄 메메트(Sultan Mehmet) 2세가 건설한 것이다. 1963년 1000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지진으로 사라진 18~19세기 콜로니얼 건축물들은 더 멋진 신축 공공건물로 거듭났다.
올드타운 바자르 풍경
다리를 건너니 발칸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적 의의가 큰 시장(bazar)이 자리 잡은 올드타운이다. 모스크, 여관, 시계탑, 터키식 목욕탕, 교회당, 그리고 수많은 상점과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방금 다리를 건너기 전 본 21세기 유럽 도시는 온데간데없고 확성기에서 코란 낭송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기가 분명 동방과 서방의 오랜 교역 중심지이자 문명의 점이지대(漸移地帶)임을 깨닫는다. 바자르에서 케밥으로 저녁식사를 한다. 맥주를 곁들여 발칸 여행의 끝을 자축했다.
▲스코페 올드타운에는 발칸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적 의의가 있는 시장(bazar)이 있다. 여관, 시계탑, 교회당을 비롯해 수많은 상점과 음식점이 있다. 사진 = 김현주
내친 김에 요새까지 올라갔다. 6세기 비잔틴 시대에 건설된 요새 망루에서는 도시의 동서남북이 훤히 보인다. 건너편 보드노(Vodno)산 정상에는 기독교 2000년을 기념해 건립한 밀레니엄크로스(Millenium Cross)가 서 있다.
인구 200만 명이 조금 넘고 면적은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에 불과한 산악 국가지만 고대로부터 발칸의 중심에 꼿꼿이 존재하며 종교, 인종, 문화와 언어의 융합 속에서 이질적인 구성원들이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한 곳이다. 와보는 것이 쉽지 않은 발칸, 그중에서도 마케도니아 탐방을 마치는 감회가 크다. 사람들은 소박하지만 아직 마케도니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알바니아와 함께 발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여서 마음이 편치 않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