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법률 칼럼] 건물신축 때 계약서 안 살피고 후회하는 사람 너무 많아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저희 회사의 한 의뢰인 중에 제주도 바닷가에 아주 멋진 카페를 지으신 분이 있습니다. 이 의뢰인이 전화가 와서 카페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면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때 마침 저는 제주도에 출장 갈 일이 있어 카페에 들렀습니다.
바닷가에 아담하게 지은 2층 카페였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면 카페 안으로 물이 흘러들어오고, 빗물 때문에 전기가 합선되고 카페 벽면의 인테리어가 떨어지는 등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새로 지은 건물인데도 안전성에 큰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일단 하자가 있는 부분을 사진으로 찍고 동영상으로 촬영해 기록했습니다. 일단 건축물의 하자와 관련한 분쟁이 생기면 건설 부분의 ‘하자 감정’을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감정을 잘 받기 위해서는 상세한 감정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초기에 하자 조사 자료를 잘 만들어야 하자 감정을 평가하는 사람의 일도 수월해지고 건축주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분쟁은 가능하면 소송으로 가지 않고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건축 관련 소송에서 하자 감정 절차는 필수적인데, 이 하자 감정 비용이 변호사 비용보다 많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카페 주인인 의뢰인과 건설업자는 서로 합의가 어려울 만큼 감정이 격해졌고,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됐습니다. 건설업자가 추가 대금을 달라는 소송을 먼저 제기했고, 우리 측은 이에 대응했습니다.
건축 하자 이전에 설계 하자가 더 문제다
건설 관련 소송에서는 법원에서 감정인을 지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소송 중에 법원에서 선정한 감정인이 건축물의 하자 감정을 실시했습니다. 그 자리에 저희 측 변호사가 입회해서 하자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감정인이 “건물의 여러 부분에 하자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설계가 잘못됐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깜짝 놀라서 해당 설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감정인은 건물 외벽에 기본이 되는 ‘물길’ 혹은 ‘물받이 길’이 건축 설계도 자체에 빠져 있다고 했습니다.
빗물이 빠져나갈 길이 설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빗물이 카페 내부로 들어와 전기 합선, 인테리어 부식 등의 문제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의뢰인에게 설계도면을 작성한 건축사가 누구인지 물어봤습니다. 의뢰인은 “그냥 건설업자가 소개해준 곳에 맡겼다. 여러 군데 견적을 받아보긴 했는데, 가격이 가장 싼 이 업체에 맡겼다”고 말했습니다. 건설업자로서는 설계도면에 따라 시공했다고만 하면 상당 부분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했습니다.
대규모 건설과 달리 규모가 작은 건축 설계는 흔히 건축사 사무실에서 잘 알아서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큰 의심 없이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소규모 건축이라도 일단 건물이 지어지면 나중에 변경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설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나중에 보완하려고 할 때 큰 비용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건물을 짓고 나면 늦습니다. 제대로 된 건축사와 건설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소규모 건설의 경우 대개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 일을 맡기다 보니 추후에 문제가 생겨도 제대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물은 짓고 나면 분쟁이 발생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꼼꼼히 살피는 것이 최선이다. 사진은 본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 = 연합뉴스
그런데 많은 건축주들이 건축 설계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물론 비용을 많이 들였다고 해서 꼭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싼 물건은 싼 값을 하듯 설계 자체에도 하자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건물은 한두 해만 쓰고 버릴 물건이 아닙니다. 일단 지으면 오랜 기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건물 설계를 단순히 지인의 소개나 건설업자의 소개로 용역을 맡겨선 안 됩니다. 조금 더 알아보고 신중히 결정해야 합니다. 설계사 자격이 있는지 여부, 직접 설계한 건물이 있다면 그 건물에 대한 내역 등을 확인하기만 해도 설계와 관련한 위험성은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계약서만 잘 써도 분쟁 막을 수 있어
제가 처음 건축물 관련 사건을 맡았을 때 건물 짓는 것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건축주들이 계약서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놀랐습니다. 보통 건설표준계약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살피지 않았습니다.
덮어 놓고 계약서에 서명한 후 나중에야 계약 내용을 잘 몰랐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표준계약서는 그래도 계약의 당사자들에게 공평하게 작성돼 있는 편인데, 이 계약서의 내용 중 몇몇 조항이 일방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수정됐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건설 금액 중 ‘부가가치세 별도’인지 ‘부가가치세 포함’인지는 중요한 문제인데, 계약서에 이를 명시하지 않아 분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건축 자재에 대한 것도 제대로 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계약 시 시공하기로 한 건축 자재와 실제 공사에 사용한 건축 자재가 달라 분쟁이 생기는 경우 건축주는 난감할 따름입니다.
이미 시공한 자재들을 떼어내고 새로운 자재를 다시 붙일 수도 없습니다. 계약 단계에서 중요한 몇 가지 사항들만 제대로 살펴도 큰 분쟁은 막을 수 있습니다. 귀찮아하지 마시고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고, 필요한 내용들을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