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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人 - 신고 프란시스] "디지털상 쓰레기를 작품으로"

스페이스비엠 '고요한 현존' 개인전서 신작 페인팅-비디오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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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5호 김금영 기자⁄ 2016.05.27 08:51:58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갖는 신고 프란시스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디지털 시대에서의 쓰레기.” 신고 프란시스는 자신의 대표 작업을 이렇게 소개했다.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갖는 그는 신작 페인팅과 비디오 작업을 포함해 총 18점의 작품을 공개했다. 이 중 ‘쓰레기’라 칭한 작품은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비디오 작업이다.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작품을 예쁘게 소개하기도 바쁠 텐데, 공들인 작품을 쓰레기라니?


일단 이 작품의 화면을 들여다봤다. 화면 송출에 이상이 생겼을 때 ‘지지직’ 거리는 화면처럼 깨진 픽셀 이미지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얼핏 보니 바다에서 세차게 치는 파도의 모습이라는 걸 눈치 챘다. 하지만 바다의 푸른색이 아닌, 전체적으로 붉은 빛에다가 군데군데는 색깔도 변질된 듯한 모습이 눈길을 더욱 끈다. 바다의 영상이었다면 오히려 “바다구나” 하고 지나쳤을 것 같다. 어느 곳의 풍경일까? 작가가 직접 가본 장소가 분명할 것이기에 물어봤지만 작가는 “모른다”고 대답한다.


“평면 드로잉 작업을 주로 하다가 디지털 작업에 흥미를 가진 지 약 2년 정도 됐어요. 저는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작업 중인데, 어느 곳을 가든 발전된 디지털 기기 문명을 느꼈죠. 세계적 추세예요. 그러다 디지털 이미지의 원소 단위, 즉 픽셀까지 흥미가 생겼어요. 그때 이 영상을 발견했죠.”


▲신고 프란시스가 처음으로 시도한 비디오 작업. 서핑 사이트에서 발견한 망가진 이미지를 작품으로 재탄생 시켰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평소 서핑을 즐긴다. 그래서 서핑 관련 웹사이트를 뒤지다가 사람들의 방문이 거의 끊긴, 실질적으로 폐쇄 사이트라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그곳에 이 바다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아마 성능이 좋은 카메라로 찍었는데, 낡은 컴퓨터로 영상을 출력하는 과정에서 이미지가 깨진 게 아닐까 추측해봐요. 영상에는 계속해서 날짜와 시간이 흘러가는 게 표시되는데, 어떻게 찍었는지, 이곳이 어디인지 저도 정확히 몰라요. 영상이 깨끗하지도 않아 더욱 장소를 유추하기 힘들고요. 그런데 이 온전하지 않은 영상이 제 흥미를 끌었어요. 쓸모가 없어 발길이 끊겼지만 이 영상은 계속 존재하고 있었어요. 디지털 시대에 쓰레기로 판단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여기 있어’라며 꾸준히 애쓰는 것 같았죠. 저는 쓰레기로 분류된 이 영상을 작품으로 재창조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영상 속 파도의 물결이 작가에겐 현 시대에 계속해서 존재하려 노력하는 외침으로 느껴졌다. 처음엔 그의 언급처럼 단지 ‘쓰레기’ 영상과의 만남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와 만나 ‘작품’으로 새 생명력을 부여받고 국내 관객들을 만났다.


깨진 화면이 작품→또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


▲신고 프란시스, '칼라 플로우 - 마젠타(Color Flow - Magenta)'. 캔버스에 혼합 매체, 101 x 178cm. 2016.

작품으로 재탄생한 이 영상은 이번 전시에서 또 한 번의 재탄생의 과정을 거친다. 바로 작가의 평면 드로잉 작업을 통해서다. ‘칼라 플로우(Color Flow)’는 이 영상의 한 장면을 종이에 프린팅한 작업이다. 단순히 옮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화면 위에 표백제로 드로잉 하듯 그림을 그렸다. 이어 햇빛에 말리자 어느 부분은 색이 더 빠지고, 또 다른 부분은 덜 빠지는 등 변화를 거치며 새로운 이미지로 탄생했다.


“우리는 사물 또는 환경을 눈으로 봐요. 그런데 보이는 것 자체가 전부가 아니죠. 똑같은 나무라도 RGB 칼라를 적용하면 굉장히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요. 저는 세상을 더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찾아내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실험 중이에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양화 시키는 건 ‘색’을 통해서다. 작가의 초기 작업은 단색화적이었다. 겹겹이 붓질을 쌓아 만든 차분한 색을 보여줬다. 신작 ‘비욘드 더 퍼리퍼리(Beyond the Periphery)’ 시리즈가 이쪽에 가깝다. 오일 페인팅 작업으로, 앞서 소개한 영상 작업이 역동적이라면, 이 시리즈는 평온하고 차분하다.


▲신고 프란시스, '비욘드 더 퍼리퍼리 - 블루·바이올렛(Beyond the Periphery - Blue·Violet)'. 캔버스에 오일, 40 x 30cm. 2016.

먼저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큰 색이 있다. 화면 아래 부분에는 하나의 선이 자리를 지킨다. 전체 화면과는 다른 색이다. 그리고 화면의 맨 위와 맨 아래엔 색이 완전히 칠해지지 않았고, 약간의 여백도 보인다. 다채로운 색을 띤 영상 작업과는 달리 단색화적 느낌 때문에, 두 작업이 완전히 달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색의 실험, 그리고 이를 통해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작가의 의도는 같다.


“이 시리즈는 거대한 자연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담았어요. 그런데 그 느낌을 제한하지 않고, 오픈된 형태로 풀어놓았죠. 화면의 위와 아래를 색으로 빼곡하게 채우지 않고 흐릿하게 처리한 것도 그 이유예요. 보이는 세상뿐 아니라 그 이외의 세상까지 바라보려는 시도지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현존하는 세상과 또 다른 세상과의 경계라고도 할 수 있고요. 처음 페인팅을 시작할 때는 파란색으로 시작했는데, 이후 보라색, 빨간색 등 색에 대한 실험을 거쳐 가면서 화면 안에 다양한 세상을 담아 보려고 해요.”


▲신고 프란시스, '비욘드 더 퍼리퍼리 - 버밀리언·블루(Beyond the Periphery - Vermilion·Blue)'. 캔버스에 오일, 40 x 30cm. 2016.

신고 프란시스는 20세기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샘 프란시스와 비디오 아티스트 마코 이데미츠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빛과 색을 배운 그는 “예술의 길로 나를 이끈 사람은 아버지”라고 했다.


하지만 이젠 단지 영향을 받는 데에서 더 나아가, 자신만의 독자적 작업을 보여주는 발걸음이 주목된다. 추상 개념의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히 경험하는 모든 빛과 색, 자연과 디지털 화면을 바탕으로 그만의 시각 언어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목격한 ‘고요한 현존’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이유다. 전시는 스페이스비엠에서 7월 1일까지.


▲신고 프란시스, '비욘드 더 퍼리퍼리 - 옐로우·터크오이스(Beyond the Periphery - Yellow·Turquoise)'. 캔버스에 오일, 40 x 30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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