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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人 - 캉용펑] 물감 쓰레기로 그린 에너지 철철 세계

국내 첫 개인전 갖는 캉용펑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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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6호 김금영 기자⁄ 2016.06.02 11:12:03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 방한한 캉용펑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그림 속 폐차가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망가진 전조등에 두 눈을 밝히며 트랜스포머처럼 화면에서 벌떡 일어설 것 같다. 캉용펑 작가의 그림을 보고 느낀 감정이다. 그는 캔버스 위에 충돌되고 파괴된 자동차, 오토바이 같은 사물을 그린다. 이뿐 아니라 자신의 작업에 영향을 준 반 고흐, 렘브란트 등 예술가도 소재로 그린다. 그림 속 폐차가 시동을 걸 것 같다면, 그림 속 예술가들은 관객을 똑바로 응시하며 곧바로 입을 열고 뭐든 이야기를 시작할 것 같다. 그림의 생동감 덕에 이런 착각에 빠지기 쉽다.


아트사이드 갤러리가 중국 작가 캉용펑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그룹전, 아트페어 등을 통해 작품이 일부 소개된 적은 있지만, 한국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돈 바덜 후 아이 앰(Don't Bother Who I am)' 시리즈. 반 고흐, 렘브란트 등의 예술가를 소재로 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동재 아트사이드 갤러리 대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 작가들과 인연을 맺으며 전시를 시작하고, 많은 작가들을 소개했다. 중국 미술을 소개하며 한국 미술과 어떻게 다른지 다양한 전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미술도 워낙 흐름이 빨라 작가 선별이 어려웠다. 그 가운데 캉용펑 작가도 있었다. 그가 30세일 때부터 현재 37세에 이르기까지 알고 지내왔는데 왕성한 작업 활동이 눈에 띄었다. 작가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전시는 작가의 작업을 크게 네 시리즈로 소개한다. 전시장 1층엔 반 고흐와 렘브란트가 눈을 똑바로 뜨고 관객을 응시하는 ‘돈 바덜 후 아이 앰(Don't Bother Who I am)’ 시리즈가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지하 1층 공간에는 충돌로 파손된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재의 ‘뷰잉(Viewing)’ 시리즈, 또 만개한 매화가 힘 있게 뻗어 오르는 ‘씨너리 스플린터즈(Scenery Splinters)’ 시리즈가 어우러진다. 전시장 한 벽면은 10m의 대작 ‘문릿 나잇 오브 스프링(Moonlit Night of Spring)’이 꽉 채웠다.


▲충돌로 파손된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소재로 한 '뷰잉(Viewing)' 시리즈.(사진=김금영 기자)

예술가, 파손된 자동차, 매화까지 전혀 동떨어진 소재를 다루는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는 한 가지 주제 아래 모인다. 작가는 아무도 관심을 주거나 주목하지 않으며, 시선을 두지 않는 곳에서 포착한 ‘생명’ 그리고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저는 제 경험,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감정을 바탕으로 작업합니다. 예술가를 내세운 자화상 시리즈는 작품 제목부터 ‘내가 누구인지 상관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어요. 학창 시절 반 고흐와 렘브란트의 자서전을 읽고 그들의 그림을 봤습니다. 제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친 예술가들이에요. 이들은 본인의 얼굴을 내세운 게 아니라 작업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죠. 그리고 그들의 작업에는 생명, 그리고 그 생명이 꿈틀거리는 힘이 있었어요. 그 생명력에 존경을 느꼈습니다.”


파괴와 고통의 이미지 속 생명력 포착


이어지는 ‘뷰잉’ 시리즈에는 부서진 자동차와 오토바이, 죽은 가축이 등장해 생명이 다한 순간만 다룬 듯 보인다. 실제 현실에서 이런 장면과 마주치면 섬뜩한 분위기에 얼른 지나칠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멈춰 서서 이 풍경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숨겨진 에너지를 이끌어냈다. 파괴와 고통의 이미지에서 생명력을 찾아내 이야기하는 작업이다. 그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고통과 생명은 반대가 아니라 동전의 앞뒤처럼 한 존재의 양면이다. 산고의 고통으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처럼.


▲'씨너리 스플린터즈(Scenery Splinters)'는 꺾이고 부러진 가운데 만개한 매화를 담았다.(사진=김금영 기자)

“그림에 부서진 자동차와 오토바이, 죽은 가축들이 등장해 매우 황량해 보이죠? 하지만 모두 파괴됐다고 보는 이 광경에서도 발산되는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파괴와 고통은 모든 걸 없애버리는 것 같죠. 하지만 그 파괴와 고통이 지닌 에너지 또한 막강합니다.”


이와 연결되는 10m의 대작 ‘문릿 나잇 오브 스프링’을 잘 보면 거친 질감 속에 반짝이는 거울 조각, 그리고 끈 등이 보인다. 거울 조각은 생명력이 다 한 것 같은 자리에, 계속 조명 빛에 반사되며 존재를 알리고 끊임없이 생명에의 의지를 보이는 힘을 느끼게 한다. 끈들은 화면에 운동감을 줘 사물과 잔해 속 숨겨진 생명력을 표현한다. 또 화면 한쪽엔 사자가 이곳을 지키는 듯 떡하니 자리를 차지한다.


작가는 “파괴와 고통으로 생명력을 지닌 이 시대를 표현하는 게 내 회화 언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인즉슨, 흔히 보이는 대로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오히려 생명력이 없을 것이라 예측되는 곳에서 발견한 힘을 내보이고 싶었던 것.


▲물감의 잔해들로 만들어진 고흐의 조각상.(사진=김금영 기자)

이런 시도는 매화 그림에서도 발견된다. 화면에 등장하는 매화는 멀쩡하지 않다. 만개했지만 꺾이고 부러진 상처의 흔적이 있고, 가지 사이 곳곳엔 균열되고 파괴된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활짝 피어 있다. 고통 속에서도 생명력을 분출하는 지점이 엿보인다. 작가는 “매화의 정신에 탄복했다. 이전엔 우아한 꽃이라고만 알았다. 겨울을 이기고 생명력을 꽃피우는 매화의 강렬한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모든 작업이 평화롭기보다 거친 질감을 지녔다. 이 또한 생명이 지닌 힘을 표현하려 선택한 방법이다.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릴 때 붓, 칼 등을 사용해 한 획을 그리는 과정에서, 캔버스 위에 역동적인 파도가 휘몰아치는 듯한 질감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물감의 잔해로도 작업을 한다. 조각 작품 ‘의지’는 제목처럼 생명력을 분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미 사용하고 남은, 폐기될 운명에 처한 이른바 죽은 물감을 예술로 재탄생 시킨 작업입니다. 본래 그림을 그리는 취지와도 맞은 작업 방식이고, 일종의 자아를 극복하는 정신과도 연결된다고 봅니다. 남들이 보는 대로만 보지 않고, 주변에 휩쓸리지 않는, 스스로의 자아를 찾아내는 것이죠.”


▲10m 길이의 대작 '문릿 나잇 오브 스프링(Moonlit Night of Spring)'을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사진=아트사이드 갤러리)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개인적인 측면에서 벗어나 사회와 연결된다고도 밝혔다. 중국 작은 시골에서 태어나 학업을 위해 소도시, 대도시로 이동해 톈진 대학에서 유화를 공부한 그는 중국의 변화의 흐름을 몸소 느꼈다. 빠른 발전의 흐름 속, 사람들이 주목하고 잊는 것 또한 빨랐을 터. 빠르게 흐르는 그 한 지점을 포착해 생명력을 찾아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파괴와 고통은 오늘날 우리 사회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끊임없이 파괴와 고통이 순환되며, 생명과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져 오고 있죠. 이 복합적인 현상을 작품에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결국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죠.”


전시는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7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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