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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人 - 문형태 작가] 잠수함에서 잠시 나온 작가의 고백

인간관계에 관한 통찰을 회화-드로잉-오브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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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기자⁄ 2016.06.03 14:14:11

▲작품 앞의 문형태 작가. 그림에 길어지려는 코를 막으려는 듯한 인물의 모습이 인상적이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잠수 타지 마.” 현 시대는 잠수 탈 권리를 잘 허락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잘못한다고 지적받기 일쑤다. 이 과정에 지친 몇몇 사람들은 스스로 조금씩 잠수를 타며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는 길을 택한다.


문형태 작가는 스스로를 “잠수함을 탔다”고 표현했다. 평소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엔 별다른 생활이 없기 때문이다. 진화랑에서 6월 18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의 타이틀은 그래서 ‘생각하는 잠수함’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잠수함으로 통한단다. 마치 개인전이 ‘문형태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꼭 개인의 이야기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작가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기처럼 펼쳐진 작업들은 공감 요소가 가득하다.


“결국은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예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거리감을 느낄 때 각자의 섬이 있다고 표현하잖아요? 저는 그걸 잠수함으로 생각했어요. 물 깊이 잠수해 고독을 느끼다가 수면 위로 잠시 올라와 햇살을 받기도 하죠.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가 형성되는 거예요. 제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낀 감정들을 복합적으로 작업에 담았습니다.”


▲세 작품 가운데 자리한 '선물'이 눈길을 끈다. 환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 또한 평범한 사람이기에 그가 이야기하는 인간관계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특히 그의 작업엔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이 묻어난다. 2007년 첫 개인전을 갖기 이전 무명생활을 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고 과연 ‘작가로서의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 시기에 늘 곁에 가족이 있었다. 어찌 사랑만 있었겠는가. 갈등도 다툼도 여느 평범한 가정처럼 있기 마련이었지만, 그래도 가족은 지금까지 작가가 작업을 이어오게 한 원동력이 됐다.


“제가 중학교 때 자만심에 가득 차 있을 때가 있었어요. 그림을 잘 그린다고 스스로 자부심이 넘쳤거든요. 그때 아버지는 제게 세상 모든 사람들 사이에 속한 존재라고 조언했어요. 당시엔 잘 이해를 못했죠. 응원을 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상처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모두 저를 위한 한 마디, 한 마디였고, 저는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미술계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가족이 최우선이었죠.”


▲문형태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1층 전시장 일부. 배 설치물에는 칼날 모양의 노가 설치됐다. 사람과의 관계 속 상처를 주고 받는 과정을 이야기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선물’ 작업에는 이런 작가의 마음이 담긴 듯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두 인물을 보고 연인 같다는 말도 들었는데, 저 두 인물은 어머니, 아버지일 수도 있다. 따뜻한 관계와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족과의 관계뿐 아니라 친구,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작가는 느낀 게 많았다. 관계에서 비롯되는 상처와 억울함도 있었다. 1층에 설치된 배 설치물이 그렇다. 칼 모양의 노가 특히 눈길을 끈다. 잠수함에서 수면으로 올라와 물 위에 뜬 배에 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를 저었다. 하지만 그 노는 나무가 아닌 칼날로 작가의 가슴을 후벼 파기도 했다.


흙 바른 화면 위에 펼쳐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


▲문형태 작가의 드로잉이 전시된 모습. 벽에는 작업과 관련해 작가가 적은 글이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관계를 맺을 때 내가 상처받고 희생한다는 생각이 앞설 때가 있어요.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죠. 하지만 알고 보면 제가 그 관계에서 희생한 게 아니라 받은 게 많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그런 복합적인 마음이 작업에 표현된 것 같아요.”


1층의 또 다른 작업에 등장하는 피에로는 피노키오와 합쳐진 모양새다.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 또는 상대방을 해치기 위한 거짓말 등 현대인은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 좋든 싫든 거짓말을 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작가가 벽면에 써놓은 ‘귀를 닫아야 폭풍우 치는 마음이 들리고 말을 삼켜야 가슴에 가까이 닿는다’ ‘뜨겁게 붉어진 코를 잡아당기는 동안 거짓말 같은 사랑도 거짓말 같은 시간도 지나가버렸다. 거짓말처럼 빠르게, 모두가 어른이 된다’는 글이 와 닿는다. 하지만 그 가운데 표면적으로는 미소를 지어야 한다. 작가는 이 모습을 코가 긴 피에로로 표현했다.


“피에로와 피노키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흔히 보이는데, 뭔가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피에로의 코를 잡아당기면 피노키오가 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건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발견했지만, 저 스스로의 모습이기도 한 것 같아요. 작업실에서 혼자 작업할 때의 저와 갤러리에 나와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저는 상당히 다르거든요. 점점 코가 길어지는 피에로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느낌도 있었고요.”


▲이번 전시에서는 코가 돋보이는 인물들이 화면에 많이 등장한다. 피에로와 피노키오를 재해석해 거짓말 하면서 사는 현대인의 단상을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피에로는 작가 그림 특유의 분위기와 맞물려 더욱 독특하게 두드러진다. 눈빛이 강렬하고 색감은 화려한 듯 어둡다. 작가의 그림은 영화나 동화의 한 장면을 포착해 보는 것 같은 흡입력이 있다. 그림 속 인물이 과도하게 웃거나 짧은 다리를 갖고 있을 때도 있고, 얼굴색은 창백하기도, 반대로 불타오르는 듯 강렬한 작품도 있다. 지금과 달리 과거엔 굉장히 사실적이고 추상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인물을 그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앨범 재킷 디자인도 하고, 휴대폰 뒤 그림을 그리는 작업까지 다양한 그림을 그리면서 현재의 작업까지 이르게 됐다.


“그림의 이미지가 동화 같다는, 동화를 모티브로 한 거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에요. 그저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지 궁금해지는 화면을 그리고 싶었어요. 영화도 개봉 전에 스틸컷이 공개되면 이건 어떤 장면이고,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궁금해지잖아요. 그런 강렬한 이미지에 끌린 것 같습니다.”


화면에 흙 바르고 드로잉 하고 색 칠하기까지 


화면의 바탕을 이루는 흙은 물감 사이사이에 은은한 노란 빛을 발한다. 처음 작가의 작품을 보고 색채가 오묘하다는 느낌이 든 게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흙을 바를 때는 항상 경건한 마음가짐이란다. 유한한 인간의 삶에서 자신의 존재를 기록하기 위한 작업이 작가에게는 그림이다.


▲회화뿐 아니라 설치 작업도 이번 전시에 소개된다.(사진=김금영 기자)

이토록 수많은 관계와 마주하다 보니 작가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자신을 마주하게 된 것도 같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가로서뿐 아니라 문형태라는 인물에 대해, 그 잠수함에 들어가 내면을 살짝 들여다본 기분이 들었다.


“잠수 타는 걸 평생 해온 인생이에요. 하지만 제가 잠수함에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꾸준히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는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외로워서 미치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한 말 같죠?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따뜻한 겉옷을 마련하러 가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전시장을 나서기 이전 작가가 써놓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책장에 꽂힌 책 한 권도 거기 놓이기까지 마음 아픈 밤과 사연이 있었다.’ 작가는 책 한 권을 위해 잠수함과 수면을 오늘도 오간다.


▲문형태 작가는 화면에 흙을 바르고 드로잉을 하고 물감으로 색을 칠하며 화면에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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