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울림의 또 다른 말이다. 공기의 파동이 우리 귀를 타고 흘러 들어오는 순간부터 울림은 소리가 된다. 귀를 타고 물이 가득한 그릇 같은 몸 속으로 파동을 전달하는 울림. 인간이 소리를 느끼는 과정은 흡사 몸과 파동이 부딪혀 감각의 종이 울리는 것과 같다.
파동을 지닌 공기(소리)를 '채집'한다는 말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날아다니는 곤충을 재빨리 낚아채듯 공중에 형체 없이 부유하는 낯선 소리들을 어떻게 낚아 올린단 말인가. 끊임없이 파동이 일어나는 도시 소리를 채집하는 작가 김서량을 만났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의 소란스런 울림을 자신이란 거름망을 통해 담아내는 작가였다.
시선 빼앗지 않고, 듣고자 하는 진심
인간이 가진 5가지 감각 중 어떤 감각이 가장 중요할까?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TV로 세상을 보는 현대인은 시각을 꼽기 쉽다. 하지만 시각예술 분야는 오랫동안 몰두해왔던 '눈으로 보는 이미지'의 세상에서 벗어나, 오감과 이성의 경계를 계속 허물어가는 중이다. 이제 세상의 거의 모든 장르와 매체를 아우르는 시각예술 영역에서, 김서량 작가는 가장 미묘한 첨단의 소리에 집중한다. 장르적으로는 이를 사운드 아트(sound art)라 부른다.
자극적인 시각 언어가 범람하는 요즘 시대에 김서량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도 아니고, 영향력 있는 어떤 것의 외침도 아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도시의 소음에 주목해왔다. 자신이 표류하듯 지나쳐온 여러 도시들의 소리를 덤덤히 담고, 아무런 양념 없이 그곳 아닌 다른 공간에 내비친다.
김서량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 달리 당시 작가의 관심사는 비디오 아트였다. 이미지와 사운드의 결합체인 비디오는 당시 가장 유행하는 매체였다. 작가는 점차 자신의 신체적 예민함을 건드리는 청각적 요소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후 떠난 독일 유학을 통해 사운드 아트에 보다 매진한다.
코펜하겐, 함부르크, 베를린, 말뫼, 에어푸르트, 부다페스트 등 유럽의 다양한 도시들을 다니며 작가는 그곳의 소리를 끊임없이 채집했다. 사진이나 영상이 아니라 소리로 담고자 했던 도시의 흔적은 무엇일까? “주로 해안 도시들을 많이 다녔어요. 서로 가까운 해안 도시인데도 방문하는 곳마다 그날의 날씨며 바람의 세기 등 소리가 말하는 풍경이 너무 달랐어요."
언뜻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작가는 이를 당연 또는 우연이라고 간과하지 않았다. 가는 곳곳마다 미묘하게 새로운 현상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스스로 "주체적 필터(거름망)"가 된다고 말했다.
도시 탐구를 시작하기 이전 그의 작업은 어딘가 폐쇄적이었다. 닫힌 공간에서의 소리 체험, 닫힌 문과 열린 문의 경계를 실험하는 사운드 설치 작업을 주로 했었다. 이런 작업 과정을 거치며 점차 작가의 귀가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바깥으로 확장하게 됐다. 이윽고 소리 채집 여행을 떠나면서 세상과 대면했다. 작가는 여러 곳을 여행하고 소리를 수집하면서, 열린 자신을 만났다. 안을 향해 닫힌 귀와 마음을 밖으로 열고 세상의 소리를 담아내며 자신을 털어냈고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나란 필터를 거친 소리 통해 거짓 공간 만들기
어찌보면 김서량의 작업은 한 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작가는 하나의 정형화된 방식을 고집하기보다 매 작업마다 가장 적합한 작업 형식을 찾아가며 매번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 중 작가가 사운드를 이용하는 데 밀접한 영향을 준 한 갈래 작업이 있다. 어떤 풍경 속에 그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소리를 설치하고 관람객에게 이곳 아닌 다른 곳(거짓 공간)을 경험케 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이 방식을 ‘거짓의 장소 만들기’라고 불렀다.
이를테면 울창한 숲 속에서 나무 아래 숨겨놓은 스피커를 통해 전혀 다른 도시의 소리가 흘러나오게 한다든가('사운드 오브 포레스트', 2015), 화이트 큐브 전시 공간에 스피커를 설치해 전혀 생경한 도시의 소리가 들리도록 한다('말뫼', 2015). 그렇게 하면 원래 그곳이 가진 공간성이 사라지고, 새로운 색(소리)이 덧입혀진 가상의 거짓 공간이 만들어진다. 작가가 의도한 소리의 침투로 그곳은 원래의 공간(숲이나 화이트 큐브)도 아니고, 소리가 채집된 공간도 아닌 제3의 공간이 된다.
작년 송은아트큐브에서 전시한 작업 '말뫼'는 작가에게 특별히 물과 바람으로 기억되는 도시다. 바람은 거친 파도를 만들고, 파도는 거친 소리의 바람을 만들어냈다. 김서량은 이렇게 도시가 품은 소리를 4개의 스피커를 통해 또 하나의 공간으로 관객에게 제시한다. 타국 어느 도시의 파동을 관객이 온전히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전시를 꾸렸다.
독일 숲에서 이뤄진 전시 '사운드 오브 포레스트'에서는 그동안 수집한 여러 도시의 소리들을 또 다른 장소인 숲에서 들려주었다. 작가는 다른 장소의 소리를 숲 속으로 은밀히 옮겨놓고 관객이 낙엽과 나뭇가지에 숨겨진 스피커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유도해 전혀 다른 맥락의 공간으로 관객들을 이동시켰다.
반면 베를린 한국문화원의 전시에서는 현재 들을 수 없는 소리의 가능성을 실현케 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전시장 창 밖은, 거대한 사무용 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지하에 전철이 지나는 곳이었다. 작가는 이 전시장의 내부 창가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창 안에선 물리적으로 들을 수 없는 소리들을 안으로 들여왔다. 평소 적막하던 창가에는 바로 아래를 지나는 지하철 통과 소리, 건너편 사무실의 업무 소리, 창밖 잔디밭에서 사람들이 거니는 소리 등이 선선히 울린다. 작가는 쓸쓸하게 고립됐던 내부에 떠들썩한 외부의 소리를 초대해 내외부가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소리 채집을 통한 도시의 탐구
김서량에게 도시는 작업의 재료를 수집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가 도시에 집중하는 이유는 수많은 개인이 만들어낸 역사적, 지리적 파동의 요람으로서 도시가 흥미롭기 때문이다. 파편적이고 무의미할 수 있는 각 도시의 소리들이 작가에겐 너무도 개별적으로 특별하게 다가왔다.
루마니아의 클루쥬 나포카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의 도시 연구가 좋은 예다. 클루쥬 나포카는 원래 헝가리 왕국 영토에 속했지만 1차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국가인 루마니아에 합병됐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클루쥬 나포카는 부다페스트처럼 화려한 중세시대 건축양식과 사회주의적 회색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도시가 됐다. 이제는 화려한 관광도시가 된 부다페스트와 클루쥬 나포카의 차가운 콘크리트 풍경을 작가는 직접 채집하고 작곡한 소리와 사진 콜라쥬를 활용해 작업했다.
그런가하면 덴마크 코펜하겐과 독일 함부르크(이 두 도시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고, 페리로 이동이 가능할만큼 가깝다)의 국경을 바다 위의 하늘을 통해 표현한 작업도 있다. 페리로 이동하며 각각 코펜하겐과 함부르크 근처 바다에서 채집한 소리와 하늘 풍경을 교차시켜 두 도시의 경계를 담았다. 두 도시가 공유하는 하늘의 경계선이 작가의 사진과 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작가가 이동하며 채집한 소리들은 결코 그 도시를 대표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김서량이 '그때' 채집한 '그곳'의 소리는, 작가란 그릇에 담아온 현상의 흔적으로서 유효하다. 유럽 도시 곳곳의 소리를 담아온 작가는 작년에 귀국하면서 한국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올 하반기 신한갤러리 역삼에서 열릴 독일 작가와의 2인전에서 서울의 소리를 모아 전시할 예정이다.
작가의 ‘귀’에서 사람들의 ‘귀’로 진화
작가는 독일에서 수 년 간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귀를 촬영했다. 각각의 귀 사진 가운데 자리한 글자들은 모두 해당 귀의 주인이 자필로 쓴 이름이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이어온 ‘May I Photograph Your Ears?(당신의 귀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작업을 통해 작가는 나라는 개인의 귀에 집중하던 태도에서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귀로 관심의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를 맞았다. 그리고 그 중 40인의 귀 이미지를 겹친 작품을 만들었다. 사진이 겹쳐질수록 귀의 형태는 더욱 또렷해지지만 이름 글씨는 불명확하게 증발한다. 소리는 모일수록 그 음량이 커지지만 의미는 흩어지고 약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뭉뚱그려진 소리의 덩어리는 그 자체로 상징성을 지닌다.
도시와 사람에 대한 관심은 작년 부산 홍티아트센터 레지던시에서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부산 다대포에 위치한 무지개공단은 염색공장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작가는 공단 전체가 내뿜는 소리, 즉 안에서 벌어지는 노동의 에너지가 밖으로 퍼져 나오는 것에 주목했다. 무지개공단 한가운데 있는 홍티아트센터는 소리가 몰리는 중심이다. 작가는 무지개공단 곳곳에서 채집한 소리(공장 기계 소리, 차 소리, 사람 소리 등)를 홍티아트센터 옥상에 6채널(6가지 다른 소리) 스피커를 설치해 들려줬다. 그로 인해 산발적이던 공단 전체의 울림이 고이면서 작가가 수집한 공단 내부의 소리와 만났다.
사운드의 힘
'사람의 오감(五感) 중 하나만 선택한다면?'이란 기자의 반(半)농담 질문에 의외로 작가는 "시(視)감각"이라고 답했다. 자신은 원초적으로 시각적 정보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심지어 눈을 감는 게 불안하고 두렵다고 했다. 이런 작가가 청각매체에 매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 관객은 시각 정보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운드 작업에 매료된 이유에 대해 그는 “소리의 힘은 굉장하다. 귀를 타고 우리 몸을 울리는 것이 바로 소리다. 청각은 물리적으로 몸을 자극하기 때문에 가장 예민하고, 가장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고 설명했다.
김서량은 소리가 지닌 물리적, 신체적 힘을 믿기에 보다 효과적으로 소리를 전시하는 방법을 계속해 모색 중이다. 이전에도 여행을 다니면서도 혼자 1인 3역(음향, 비디오, 사진)을 도맡아 해냈지만 앞으로는 사운드 전시에 맞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다양하게 실험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서량의 작업에 관해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큐레이터는 "소리는 행위나 현상을 증명한다"며 "결국 소리는 어떤 것의 재현이 아니라 어떤 사건의 흔적이거나 직접적인 지표의 역할을 수행한다. 존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흔적을 촉각적으로 남기는 것, 그것이 소리의 힘이자 김서량 사운드 아트의 핵심"이라고 언급했다.
이곳의 소리는 저곳과 함께 있을 수 없다. 사진은 피사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의 일시적 멈춤', 즉 순간성을 큰 특징으로 한다. 그에 반해 김서량의 사운드 아트는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을 담아낸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정적인 사실 증명보다도 '그때 일어났던 파장의 흔적'이란 강렬한 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세상의 파동이 두드린 노크 소리에 밖으로 나온 작가는 오늘도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며 도시의 소리를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