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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展 ⑧ 금천예술공장] 뉴미디어에서 커뮤니티아트까지, 최전방 예술공장

'해시태그(#)로 만나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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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9호 윤하나⁄ 2016.06.24 10:44:30

▲6월 16일 오픈스튜디오가 열린 저녁, 금천예술공장 마당에서 주민을 위한 야외 재즈 공연이 벌어졌다. (사진 = 윤하나 기자)


금천구 구로공단 옆, 아파트와 소규모 공장들이 혼재한 틈으로 금천예술공장이 자리했다. 지난 616일 저녁, 금천예술공장 6~7기 입주 작가들의 오픈스튜디오와 기획전시가 열려 그곳을 찾았다. 각 기관의 큐레이터, 교수, 평론가 등 알려진 미술계 인사들이 입주 작가들을 깊숙이 탐색하기 위해 방문한 한편, 금천구 주민들이 직접 전시장을 찾아 인연 있는 작가를 응원하고 새 작업을 논의하는 재미있는 상황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지역의 문화허브를 자청하면서도 동시대 미술의 고삐를 받잡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금천예술공장의 이웃주민이자 예술인 친구가 많다고 자신을 소개한 가수 하림의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개막됐다. 너른 마당엔 야외 재즈 공연이 한창이었고, 음악을 들으며 초여름 밤의 정취를 즐기는 주민들로 가득했다.

 

대개는 그해 입주 작가들의 오픈스튜디오와 기획전이 열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올해는 작년 입주 작가의 기획전과 올해 입주 작가의 오픈스튜디오가 함께 열렸다. 작년 메르스 진통을 겪으며 6기 작가들의 오픈스튜디오가 취소된 탓이다. 하지만 소개되는 작가가 두 배로 늘어난 만큼 현장에서 지켜본 오프닝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인파를 따라 공장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작년 입주 작가들의 기획전시를 우선 살펴봤다.


▲개막식 현장. 위부터 6기 입주 작가들, 7기 입주 작가들, 그리고 축하 공연 중인 가수 하림. (사진 = 윤하나 기자)

  

6(2015) 기획전: 장소와 각주

 

6기 입주 작가 13명의 그룹전시는 금천예술공장 3층에서 진행 중이다. 작년 메르스로 인해 개막 이틀 전 부득이하게 취소된 행사로, 발이 달린 글자들이 달릴 준비 자세로 손을 모은 모습에서 연상된 각주(footnote)'가 제목이 됐다. 작가들의 오픈스튜디오를 열지 못한 대신 작가들의 개별 작품에 각주를 붙인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해주 큐레이터는 6기 작가들이 저마다 다른 매체를 활용하지만, 대부분 시간이 겹쳐 있는 공간으로서의 장소성에 공통적으로 관심 가졌다고 말한다. △금천예술공장 및 인근 지역 역사에 관심 갖고 직접 리서치한 내용을 기반한 작업(권혜원, 이혜인)을 진행하거나 서울이란 도시의 숨겨진 여러 공간과 상징 및 도시적 삶에 대한 시선(연기백, 신지선, 여다함깊고 거대한 숲에 대한 회화적 해석(박광수기다림과 유예의 장소를 발견(김세진)하거나 떠도는 삶과 소외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옥정호, 김기라) 등 여러 층위에서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 결과가 포착됐다.

 

▲김기라, '이념의 무게 - 한낮의 어둠'. 싱글채널 HD영상, 34분. 2014. (사진 = 금천예술공장)

 

전시장 초입에서 만난 권혜원의 영상 기억박물관 - 구로’는 금천예술공장이 위치한 건물의 과거를 다룬다. 1957년 서울 구로공단에 지어진 이 3층 시멘트 건물은 70년대 전선공장, 90년대 인쇄공장을 거쳐 현재 예술가들이 머무는 레지던시가 됐다. 예술가로 이곳에 입주했던 작가는 같은 공간에서 과거 이 공장에서 일했던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쫓는다. 좁고 높은 작은 방에 세로로 서있는 영상은 어딘가 쓸쓸하고 기념비적이었다.

 

이로경 작가의 영상 속 두 남자는 동작을 지속적으로 일시 멈춤 하는데, 이들의 움직임은 서로 닮아가거나 충돌하는 등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서로 기대면서 무너져 내리는가 하면 허공에서 지상으로, 또는 지상에서 허공으로 움직이거나 서로를 밀어내는 등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중심 사건을 제외한 주변 서사들이 어떤 형태를 띠는지에 주목하는 듯하다.

 

신지선은 서울시의 20개 구에 지정된 꽃, 나무, 새를 차용한 사진 작업을 선보였다. 작가는 자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관습에서 나오는 해석과 오해에 관해 이야기한다. 조화, 박제된 새, 수종이 불분명한 나무의 얽히고설킨 상징들, 즉 지역 행정이 자연물에 부여하는 상징과 기계적 해석의 나열을 끄집어내고 이를 시각화했다


여다함은 각국의 권위적인 동상 이미지를 모아 즐거운 춤으로 연결한 영상작품 무뢰한을 상영했다. 전시는 75일까지.


6(2015) 입주 작가

큐레이터 김해주

권혜원, 김기라, 김동조, 김세진, 박광수, 신지선, 여다함, 연기백, 옥정호, 이로경, 이수진, 이예승, 이혜인 작가

   

▲이로경, '일시적 중단'. 단채널 영상, 2016. (사진 = 윤하나 기자)

 

7(2016) 오픈스튜디오 해시태그(#)’

 

오픈스튜디오는 예술가, 작업실,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보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많이 진행한다. 입주 작가의 작업공간을 공개하고 작가가 직접 작업을 설명하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오픈스튜디오의 주제는 바로 해시태그(#)’. 관련 정보를 분류하고 검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타인과 소통하는 매개체인 소셜네트워크(SNS)에서 활발히 사용되는 태그다. 단순 기호에서 벗어나 온라인 트렌드로 자리 잡은 해시태그는 공유와 연결을 갈망하는 사용자들의 용어이기도 하다. 각 작업실 문마다 해시태그와 함께 작가들의 작업 키워드들을 표기해 관람객과의 소통을 도왔다. 이 방식으로 7기 입주 작가 총 17명의 작업실 문이 열렸다.

 

오픈스튜디오의 전체적인 인상은 각 작업실이 소규모 전시실처럼 활용됐다는 점이다. 미디어작가들의 작업실은 대개 깔끔히 정돈된 채 몇 가지 실험물처럼 보이는 미디어 작품을 공개했다. 반면 설치작가들은 각자의 작업실을 압도할만한 크기의 설치 작업들로 방을 가득 메우거나, 회화작가가 자신의 작업 현장을 그림들 사이로 펼쳐놓기도 했다.


▲모하메드 카젬, '키스'. 2016. (사진 = 윤하나 기자)

 

눈에 띈 작업부터 살펴보자. 아랍 에미리트 교류 기관(마라야 아트센터)의 추천으로 입주한 모하메드 카젬은 서울과 그 속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길에서 자주 발견되는 껌딱지를 그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누군가 입에 넣고 씹던 껌이 바로 옆 어딘가에 다른 이의 입에서 나온 껌과 맞닿은 것을 발견한 그는 이들을 크레용으로 이어주며 키스라 이름 붙였다.

 

김연용은 동시대 작가들의 회화 작품 5점과 그들과의 대화, 장 뤽 낭시의 텍스트, 작품의 캡션을 다시 영상으로 담아내 마주보는 2채널 스크린으로 전시했다. 미디어의 재매개적 차원에서 회화 이미지를 초대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또 다른 층위로 총체적인 이미지를 발견하게 만든다. 영상을 바라볼수록 영상 속 회화 이미지보다 작가의 시선과 이를 바라보는 관객 사이의 관계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마주한 두 스크린 사이에 놓인 단 하나의 벤치에서 관객은 앞과 뒤의 영상을 의식하며 흐름을 따라가려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자신만의 관계성을 쌓아간다.

 

금천예술공장은 지역공동체 미술 거점으로도 활용된다. 대표적으로 7기 입주 작가들의 활동 중 금천미세스와 예생네트워크의 활동을 예로 들 수 있다. 금천미세스는 2011년 입주했던 임흥순 작가(2015 베니스비엔날레상 수상)가 금천 지역 주부 19명으로 구성된 이들과 영화를 찍으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과거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이들의 생활예술을 엿볼 수 있다.

 

▲예생네트워크의 오픈스튜디오 전경. 구로디지털 단지 내의 높은 빌딩 위 '행정법만을 만족시키는 싸구려 공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사진 = 윤하나 기자)


예생네트워크는 구로공단의 역사탐색 공공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예술과 소규모 생산의 준말인 이들 네트워크는 공공프로젝트의 정체성을 성찰하며 3년째 락희럭키구로공단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커뮤니티 문화에 관심을 가진 기타가와 타카요시(Kitagawa Takayoshi)는 이번 전시에서 하루를 찾자! 할머니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입주 기간 동안 금천지역의 경로당에서 할머니들과 친분을 쌓고 그들이 간직한 평생 동안의 사진을 보며 함께 노래하는 퍼포먼스로, 실제 그가 친분을 쌓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그의 퍼포먼스를 지켜보고, 마지막엔 함께 노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송민철의 전시도 눈에 띄었다. ##걸레받이 #v=4/3π #flat #2016.4.18.란 키워드를 읽고 들어선 전시장 안은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수식을 몰라서일까? 이윽고 걸레받이 선(바닥과 면한 벽에 둘러진 검은색 띠)을 발견하고 유추하던 차에 송민철 작가를 발견하고 작품의 내용을 들었다. 작가는 이 작업실에서 발견한 가장 큰 특징을 검은색 걸레받이로 보고, 작업실 내부에서 가장 큰 구의 부피를 구했다(저 수식은 구의 부피를 구하는 식이었다). 그 부피만큼 작업실에 물을 부으면 도달하는 물의 높이를 경계로 다시 걸레받이의 검은 색 원을 띄웠다. 작가의 생각을 유추할 수 있어도 재미있겠지만, 모르고서도 이 작업실 내 설치는 정밀하고 일정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송민철의 오픈스튜디오 전경. 작업실 내 가장 큰 구와 그 부피만큼의 물을 시각화했다. 물리학을 전공한 작가의 독특한 유희적 작업이다. (사진 = 윤하나 기자)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홍영인은 올해 프랑스 아트 파리 아트페어한국 특별전에 초대돼 선보인 퍼포먼스의 비공개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파리의 거리에서 춤추는 10대 여자들을 초대해 작은 궁전이라 불리는 콧대 높은 문화공간에서 춤추도록 했다. 미술품들이 판매를 위해 걸려있는 아트페어 안에서 스트리트 댄스를 추는 십대 소녀들은 작가가 초대한 일종의 도발이다.

 

오픈스튜디오를 정말 자신이 쓰는 작업실처럼 내보인 작가도 있다. 작업실 벽은 작가의 작품들로 가득했고, 그가 평소 쓰는 이젤과 재료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채 방 한가운데서 작업현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해온 검은 아크릴을 활용한 단색 드로잉처럼 그의 작업실 또한 드로잉 하듯 설치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7기 작가들의 오픈스튜디오는 6월 19일까지 열렸다.


▲박광수의 오픈스튜디오. 작가의 복잡한 단색드로잉이 작업 현장에서도 드러난다. 작품과 작업 과정 사이를 관찰하는 재미가 바로 오픈스튜디오의 묘미가 아닐까. (사진 = 윤하나 기자)

▲박광수는 대형 드로잉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사진 = 윤하나 기자)

  

7(2016) 입주 작가

김치앤칩스, 팀보이드, 송민철, 금천미세스, 민혜기, 이수진, 정혜정, 이원호, 예생네트워크, 정지현, 김연용, 홍영인, WU I-Yeh, 기타가와 타카요시(Kitakawa Takayoshi), 모하메드 카젬(Mohammed Kazem), 황수연 작가

 

금천예술공장, 도시재생과 예술가 창작지원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시 창작공간은 서울시의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된 문화예술 공간이다. 서울시내의 낡고 버려진 공간을 리모델링해 예술가들에게는 창작공간이 되고, 시민들에게는 동시대 문화예술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문화향유의 공간 역할을 한다.

 

금천예술공장은 2009년 개관한 이래 현재까지 국제 레지던시 스튜디오와 프로젝트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구로공단이 존재했던 서울 서남단 지역에 문화적 활력을 전하며, 지역과 소통하는 금천예술공장은 금천구 독산동의 대규모 인쇄 공장이던 기존 시설을 리모델링한 시각예술 전문 창작공간이다.

 

▲이예승 작가, '( )의 어떤 리스트'. 아크 형태의 스크린, 디지털 프린트, 일상 오브제, 가변설치, 500 x 500cm. 2016. (사진 = 윤하나 기자)


창작지원과 활성화를 위해 예술가들에게 24시간 사용 가능한 창작스튜디오를 지원하며 현재까지 세계 33개국 234()의 입주 예술가를 배출했다. 기획전시은 물론 예술교육(포럼), 지역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하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금천예술공장은 특히 영상전문장비가 설치된 녹음, 영상편집 작업공간 미디어랩이 유명하다. 또한 레지던시 건물 옆에 위치한 창고동 작업실은 대형 작업공간으로, 공연 및 장르 간 협업이 가능하다. 16일 오픈스튜디오 오프닝 날도 이곳에서 개막식과 공연이 열렸다.

 

레지던시는 많고 많지만, 금천예술공장의 독특한 개성은 바로 미디어아트와 커뮤니티 아트에서 발현된다. 금천예술공장은 작년까지 뉴미디어 작가들과 지역 커뮤니티 예술 작가들을 일정 비율로 모집하며 이들의 활동에 주목해왔다. 특히 '다빈치 아이디어' 공모를 매해 진행하며 실력 있는 뉴미디어 작가들을 지원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한다는 다빈치 아이디어 공모는 예술가, 엔지니어, 디자이너 등의 아이디어를 선발해 예술과 산업의 결합을 실험하는 자리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제작비 지원과 기술자문을 통한 작품 제작을 지원하며 이후 산업체 후원을 통해 사업화 가능성 타진까지의 전 과정을 지원한다고 금천예술공장은 밝혔다.

 

커뮤니티 아트의 경우도 지역연계 중심의 커뮤니티 네트워크를 진행한다. 입주 예술가와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올해 8년차를 맞이한 국제심포지엄 프로그램도 매년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이슈를 주제로 선정, 담론을 생산한다. 해외 예술가 교환 프로그램도 활발히 진행돼, 국외 주요 도시(뉴욕, 타이베이, 멜버른 등) 레지던시 간 예술가를 1:1로 교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국내 레지던시 중 금천예술공장의 특성화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지역 특성을 기반으로 동시대 예술인을 유치하며 미술계의 주목도 받고 있어 균형감이 돋보였다.


▲16일 금천예술공장의 밤은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사진 = 윤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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