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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전시] 을지로·충무로 종횡무진 디자이너들 학습보고서

구슬모아 당구장 ‘코우너스: 현장학습 Field T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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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9호 윤하나⁄ 2016.06.24 17: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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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모아 전시장의 바깥 모습. 1번 번호표를 단 화단이 보인다. (사진 = 윤하나 기자)

 

디뮤지엄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 당구장'은 디자인, 인쇄, 출판 스튜디오인 코우너스의 전시 코우너스: 현장학습 Field Trip'618~87연다.

 

디뮤지엄의 프로젝트 스페이스인 구슬모아 당구장은 2012년 개관 이래 총 26팀의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27회의 전시를 열었다. 설치, 다원예술, 미디어 아트, 사진, 건축, 패션, 가구 디자인, 애니메이션, 영화, 문학, 음악 등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드는 색다른 시도를 선보인 구슬모아 당구장이 올해는 새롭게 5팀의 크리에이터를 선정해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코우너스는 신모래, 남현범에 이어 올해 전시하는 3번째 팀이다. mmmg의 디자이너였던 조효준, 김대웅이 2012년 설립하고 작년 김대순이 합류해 현재 3인 체제로 운영 중이다. 이들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리소그래피 인쇄소와 출판사를 운영하며, 여러 형태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리소그래프(Risograph) 작업을 바탕으로 한 여러 실험과 결과를 토대로 전시 활동도 활발하게 펼쳐오고 있다.

 

▲전시의 첫번째 섹션 전시장. (사진 = 윤하나 기자)

 

인쇄 현장 학습, 현장의 고수들을 탐색하다

 

이번 전시는 리소그래프 인쇄소와 출판사를 운영하는 코우너스가 직접 을지로와 충무로 인쇄·제작 현장에서 경험한 것들을 재해석한 과정과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래서인지 한가할 거라 예상하고 방문한 평일 점심시간에도 디자인 전공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직접 현장을 누비는 디자이너나 학생들 모두 자신들이 경험한 을지로와 충무로의 인쇄소 이야기가 어떻게 작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지 직접 확인하고자 전시장을 찾은 듯했다.

 

한남동의 오래된 당구장을 리모델링한 구슬모아 당구장의 전시장에 코우너스의 작업이 설치된 방식에서 묘한 동질성이 포착됐다. 흡사 목욕탕 번호표 같은 정사각형 아크릴 숫자판이 작품 옆에 붙어 있는데. 이 번호표는 후에 전시 마지막 부분인 응접실에서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전시를 살펴보자. 전시는 크게 네 섹션으로 구분됐다. 첫 번째 섹션은 이들이 현장학습을 하며 모은 리서치 자료들로, 현장에서 발견한 특이점들을 리소그래프 인쇄물로 표현했다. 인쇄소가 몰려 있는 을지로·충무로 지대는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인쇄소 사람들의 손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인쇄소 입구를 오르내리는 계단 옆에 같은 높이의 턱을 만들어 공간을 확장하거나 좁은 인쇄소 골목에서 접었다 펼 수 있도록 경첩을 달아 모서리 간판을 만든 모습 등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 기록 사진은 코우너스의 주요 도구인 리소그래프로 인쇄되거나, 주요 선들을 남겨 리소그래프 드로잉으로 재구성했다.


▲전시의 첫 섹션에서 볼 수 있는 현장의 기록 사진. 리소그래프 방식으로 인쇄됐다. (사진 = 윤하나 기자)


리소그래프는 본래 석판인쇄를 뜻하며 물과 기름의 반발작용을 이용한 판화기법이다. 코우너스는 리소그래프 인쇄기를 활용해 실크스크린 기법과 유사하면서도 리소그래프 특유의 거친 날것의 느낌을 이끌어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섹션 사이에는 프린트된 투명비닐 커튼이 설치됐다. 커튼 위의 흰색 무늬들은 코우너스가 채집한 을지로·충무로의 밤 간판들의 빛 드로잉이라고 한다. 현장의 밤을 지나면 두 번째 섹션, 코우너스의 인쇄소가 나온다


두 번째 섹션은 현장 리서치를 통해 영감을 얻어 자신들의 인쇄소에서 쓸 수 있도록 제작한 집기들을 전시했다. △네트망으로 만든 선반장의 선반을 케이블타이로 쉽게 고정해 종이 건조대를 만들거나 좁은 인쇄소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접었다 펴며 쓸 수 있는 반원 선반(마대자루가 지지대 역할을 한다인쇄소들이 주로 끈을 감아 개조해 쓰는 종이더미 이동용 자전거에서 영감 받아 만든 종이 지지대 등이 그것이다. 인쇄골목의 고수들이 활용하는 틈새지식을 곳곳에 활용했다.

 

▲투명비닐 커튼에는 인쇄골목 일대의 불빛 간판이 흰색 프린트로 담겼다. (사진= 윤하나 기자)

 

그런가하면 조립이 가능하도록 +모양 구멍을 낸 나무판자들이 한쪽 구석에 자리했다. DIY가 가능한 이 판자들은 저마다 크기와 모양이 달라서 용도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전시장에는 창의 난간을 확장하거나, 벽의 모서리에 간판을 끼울 수 있는 등 자투리 공간 확장에 용이한 방식으로 예시들이 설치돼 있었다.

 

구슬모아 당구장의 옛 모습을 간직한 당구대 코너에서는 세 번째 섹션이 펼쳐졌다. 코우너스가 직접 공수하거나 제작 의뢰한 현장의 자투리 재료들을 작은 기념품처럼 전시한다. 쓰임새가 폭넓지 않은 재료들을 독특한 형태로 가공 의뢰하거나 색색의 아크릴을 붙여 도장 모양으로 제작하는 등 불명확한 용도의 작은 소품들이 당구대 위에 진열됐다.

 

마지막으로 전시장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별도 공간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작품들의 카탈로그를 열람할 수 있는 인쇄소의 고객 응대 장소처럼 연출됐다. 실제 을지로·충무로의 인쇄소를 방문하면 고객 응접실이 있는데, 작가들이 그곳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짐작케 한다. 방 내부에는 3개의 탁자가 있었다. 우선 인쇄소의 대표가 앉는 조그만 탁자, 그리고 고객을 응대할 때 쓰는 긴 타원형 탁자(대부분 정형화된 형태를 따르지 않고 어디서 제작됐는지 가늠할 수 없는 독특한 형태) 그리고 카탈로그를 전시하는 벽에 붙은 테이블 선반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의 인쇄소가 공통적으로 이런 형태의 응접실을 마련한 점에서 착안해 코우너스만의 응접실이 전시장에 차려진 것.


▲마지막 섹션이자 응접실에 준비된 코우너스의 카탈로그. (사진 = 윤하나 기자)

  

탁자들 위에 오른 소책자(카탈로그)에는 이번에 전시된 (번호표가 붙은) 모든 작업들이 소개됐다. 이 카탈로그는 이케아의 DIY가구 조립 매뉴얼을 연상시킨다. 마치 하나의 부품이라도 빠지면 제대로 설 수 없는 조립가구처럼 전시의 모든 요소들이 모듈화돼 코우너스 특별 인쇄소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처럼 소개됐다.

 

한편,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벽지와 포스터, 기존 공간을 활용한 독특한 임시 구조물, 입구의 작은 화단 등도 코우너스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을지로-충무로 풍경의 단상들이다. 번호표 1번을 단 작품은 전시장 밖에 설치된 계단식 화단으로, 이들이 발견한 인쇄소 골목의 또 다른 특징을 재현한 것이다.

 

 

▲기둥을 두른 벽지. (사진 = 윤하나 기자)

사실 이번 전시에서 기자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부분은 바로 벽지였다. 전시장 한가운데 기둥을 두른 벽지부터 소개한다. 설명에 따르면 인쇄소가 운영되면서 만들어내는 소음을 분석하고 이를 3가지로 패턴화한 무늬라고 한다. 종이가 재단되는 소리, 종이에 잉크가 인쇄되는 소리, 종이가 착착 쌓이는 소리로 구분되는데, 벽지를 자세히 보면 이 소리가 정확히 시각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설명을 모르고 들여다봐도 패턴이 만들어내는 일정한 리듬을 통해 인쇄소의 호흡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벽지는 한쪽 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고, 파랑, 주황, 녹색의 띠가 굵게 격자로 이어진 형태다. 이 색의 정체는 을지로3가와 충무로를 통하는 지하철 노선(2, 3, 4호선)을 나타낸 것이다. 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골목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된 이곳만의 장소성을 표현한 듯하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인쇄·제작 현장의 흥미로운 요소들을 코우너스만의 색다른 시선으로 보여줌으로써, 인쇄와 제작 과정에 대한 자연스러운 흥미를 유발한다. 또한 나아가 인쇄가 공간과 작업환경에 대한 영감, 협업의 수단 등으로 일상에서 새롭게 자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직접 작은 인쇄소를 꾸린 이들 디자이너 팀이 산업의 현장으로서의 인쇄소 골목을 답사한 현장보고서는 진지한 동시에 유쾌했다.

 

구슬모아 당구장 측은 “(이번 전시는) 현장 학습의 결과물로써 풀어낸 전시다. 이를 통해 인쇄의 과정과 환경까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특별한 기회를 선사할 것이라고 전시 의도를 밝힌 바 있다.


▲전시의 세번째 세션. 당구대 위의 소품들은 일종의 기념품이다. 옆 코너에는 지하철 노선도를 빗댄 벽지가 전시됐다. (사진 = 윤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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