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뎅의 작품 ‘키스’의 두 연인은 한 여름 밤이 떠오르는 소리를 배경으로 돌 속에 갇혀 하지 못했던 사랑의 행위에 열중한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의 영주였던 레오프릭에게 가난한 농민을 위해 나신으로 항거했던 아내 고디바 부인은 존 콜리어의 그림에서 빠져나와 말을 달린다. ‘피에타’의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의 품에서 스러져가며 마리아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어루만진다.
살아 움직이는 과거의 아이콘
장지연의 작업은 서양 미술사에서 유명하고 익숙한 작품들을 오마쥬 한다. 그의 영상 작업 안에선 평면의 그림이 입체로 표현돼는 한 편, 살아 있다가 굳어져버린 것 같이 생생하게 표현 된 르네상스 시대 혹은 로뎅의 조각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마쥬(hommage): 불어에서 온 말로 '경의의 표시' 또는 '경의의 표시로 바치는 것'이라는 뜻. 예술작품의 경우 어떤 작품이 다른 작품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일부러 모방을 하거나, 형태의 인용을 하는 것.
장지연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과 함께 당시의 예술가가 왜 그런 주제로 작업을 했는지에 대한 흥미로부터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의 조각 작품을 보면, 마치 시간의 한 순간을 붙잡아 놓은 것처럼 시간 상 앞뒤의 이야기를 유추하게 된다고 했다.
작가는 컴퓨터 그래픽 툴(마야, Maya)을 이용해 거장 조각가가 재현한 인물들을 3D로 재탄생 시키고 이야기를 첨가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냈다. 당시의 시점에서 상상할 수 있는 단편적인 이야기부터 현재의 시점으로 재해석 한 이야기들까지 포함한다.
예를 들면, '100년 전쟁' 당시 시민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칼레의 시민 대표 6명의 모습(‘노블레스 오블리쥬’, 2012)은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해 마지막 장면에서 명품의 로고가 박힌 의상을 입고 등을 돌리거나, 나신의 고디바 부인 역시 화려하게 치장된 말 위에서 명품 액세서리와 옷을 만족스러운 듯 챙겨 입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고디바 부인',2014).
서사와 감정을 전달하는 움직임
움직인다는 것은 시간성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지연의 작업에서 조각의 움직임은 두 가지 효과를 발휘한다. 그 하나는 서사가 있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앞서와 같은 이야기는 과거의 주인공이 현대의 시대 배경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냉소적인 상상을 보여준다.
또 다른 효과는 감정의 전달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뎅의 키스는 서로를 원하는 남녀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는 작품이다. 이에 행위(움직임)를 덧붙이고 다양한 감정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모두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영상들을 7채널로 설치한 작업('키싱', 2011)은 작가가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의 온전한 전달에 열중하는 듯 보이게 한다.
장지연은 “오마쥬 하는 작품의 작가(미켈란젤로나 로뎅 등)는 무슨 생각을 하며 작품을 만들었을지 상상하며 작업한다”고 했다. 그가 작업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 중의 하나는 역사적인 조각이 담고 있는 신화나 설화 혹은 교훈이 담긴 이야기며, 그것을 이해하고 만드는 작가의 심정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예술가들이 흙으로 형상을 창조했다면 작가는 가상의 세상에서 형상을 창조한다. 작가는 “수공적인 행위는 물리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작품은 컴퓨터 속 공간 안에서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여 장면마다 각각의 움직임을 만들어 수천 장을 이어 붙여 만드는 과정 끝에 탄생한다.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여행
장지연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방법이자 감상방법은 ‘시간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작업은 현대의 ‘칼레의 시민’과 ‘고디바 부인’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게끔 한다. 하지만 작가는 작업을 통해 교훈 등의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고 피력했다. 그가 가장 작업을 통해 가장 전달하고 싶은 것은 극대화 된 감정이다. 사회적인 메시지가 느껴지는 영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모든 감정의 근간인 사랑이라는 감정을 담아내려 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진행될 작업은 영상과 함께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 설치 작업에도 더 집중할 계획이다. 마치 오래된 건축이 잘 보존된 도시에 들어서면 과거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은 혼동을 순간 느끼듯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함으로서 감정과 메시지 역시 공유될 수 있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그는 조각을 공부했다. 학부 시절 흙을 만진 시간이 길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다져 온 모델링 감각은 이제 가상세계에서 구현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조각가들에게 묻곤 했다. 이제 컴퓨터가 모든 일을 다 하는 시대가 왔는데, 무엇을 할 거냐고.
수공적인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 장지연의 작업이 그에 대한 답이 된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그런 과정을 통해 구현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을 차갑고 완벽한 듯한 기계를 통해 전달한다는 시도는 충분한 흥미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