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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목욕탕에서 일탈의 리조트로, ‘행화탕 리조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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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0호 윤하나⁄ 2016.06.30 09:48:02

▲행화탕 리조트의 주 전시장. 가운데 커튼 작품은 이원우의 '했으면 하는 바람'. (사진 = 이원우)


색색의 비닐 끈을 풀어 만든 회전 커튼, 태닝 램프로 벌겋게 눈을 밝힌 스마일 조명, 제시간만 되면 부들부들 진동하는 푸른 색 정체불명의 존재

 

아현동 골목에 한시적으로 리조트가 등장했다. 오렌지 색 카펫과 흰색 목욕탕 타일이 색다른 조화를 이루고, 바람과 진동, 끄덕임으로 흥분이 멈추지 않는 이곳. 평소 형태나 의미의 왜곡을 통해 유머러스한 작업세계를 이어온 이원우 작가는 이 오래된 목욕탕에서 특유의 재치를 발휘해 유쾌한 파라다이스를 구현했다.

 

단숨에 시선을 빼앗는 작품들이 설치된 이곳은 원래 아현동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목욕탕. 70년대 지어진 목욕탕 '행화탕'이 재개발 확정으로 문을 닫았고, 오랫동안 쓰임 없이 방치되던 이 공간에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축제 및 공연기획 컴퍼니 축제행성이 행화탕을 임대하면서 복합문화예술공간이 됐다. 이들은 30대 젊은 기획자 10인을 모집해 행화탕이 재개발되기까지 앞으로 2년간 행화탕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지역 커뮤니티와 예술 프로그램으로 이 공간을 채울 예정이다. 이원우 작가의 행화탕 리조트는 박경린 큐레이터가 독립적으로 기획한 릴레이 프로젝트 인터-뷰 프로젝트'의 첫 전시다.

 

▲행화탕은 여전히 옛 목욕탕의 외관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 = 이원우)

 

대개 휴양지에서 경험하는 리조트는 독특한 건축 양식과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 음식, 레저, 스포츠, 클럽 등 삶의 유희적인 요소들이 압축된 유토피아다. 특유의 짓궂은 익살과 익숙함 낯설게하기 등으로 유쾌한 작업을 이어온 이원우는 이번 전시에서 문 닫힌 지 오래된 목욕탕에 도심 속의 작은 파라다이스를 만들었다.

 

실제로 과거의 동네 목욕탕 역할을 현재는 복합레저공간인 찜질방, 고급화된 스파 시설이 대신하고 있다. 특히 요즘 찜질방은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 도심 속 리조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고 마시며 TV를 보거나 휴식을 취하고 사우나를 즐기는가 하면 잠도 잘 수 있다. 목욕탕의 자리를 빼앗은 찜질방에 대해 작가는 리조트란 복합적인 이미지를 끌어들인다.

 

리조트 전시를 진행하면서 작가는 최후의 수단이란 뜻의 영어 ‘as a last resort'에도 주목했다. 삶의 유희를 모두 만끽할 수 있는 휴양지의 인공적인 파라다이스, 리조트는 한편으로 누군가에게 인생을 지속하게 만드는 최후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가 꾸며놓은 행화탕 리조트에는 두 가지 복합적 심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라운지 음악을 들으며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강렬하게 형광 빛을 발하는 얼굴 모양 조명 작품을 만난다. 여기 사용된 조명 중 일부는 약한 조도의 태닝 램프(UV 램프)다. 인공적으로 살갗을 태우기 위해 주로 쓰이는 이 램프는 기능과 성격이 리조트와 어울린다. 이번 전시에는 조도가 너무 세지 않은 관상용 물고기용 태닝 램프를 사용했다. 그런데 어딘가 경직되고 놀란 눈과 앙 다문 입의 얼굴은 미소 짓는 것 같은 전체적인 인상과 상반돼, 볼수록 귀여운 동시에 안쓰럽다


현관 격의 첫 번째 방을 지나 들어선 주 전시장(본래 탕이 있던 곳으로, 이전엔 반으로 나뉘어 왼쪽은 남탕, 오른쪽은 여탕으로 쓰였다고 한다)은 본격적인 리조트 파티의 시작과 끝을 보여준다.

   

▲주 전시장의 한 쪽에 설치된 수건걸이에는 작가의 타월 드로잉이 나란히 걸려있다. (사진 = 이원우)


우선 전시장 오른쪽엔 다양한 타월 드로잉들이 기다란 수건걸이에 걸려있다. 수건들은 모두 작가가 직접 염료로 드로잉한 작품이다. 관람객이 직접 몸에 두르거나, 바닥에 깔고 앉거나 누워 수다를 떨 수 있도록 비치한 것이다. 타월은 목욕탕과 리조트 모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오브제로, 감상의 대상에서 벗어나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을 보다 적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익살맞은 필치로 여유’ ‘강백호’ ‘얼룩말등의 글자가 쓰여 있는가 하면 오징어, 문어, 뱀 등의 그림이 유치하면서도 화려한 휴양지 룩을 연상하도록 그려졌다.

 

전시장의 한가운데에는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거대한 비닐끈 커튼이 회전하고 있다. 색색의 커튼이 돌아가면서 바람과 잔상을 남긴다. 무더운 날씨에도 이 방에 들어오면 왠지 선선한 바닷가 바람을 쐬는 것 같다. ‘했으면 하는 바람의 바람은 지금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인 동시에 무료한 일상에 날아올 산뜻한 여유가 되기도 한다.

 

전시장 한편에는 어딘가 무섭고도 우스꽝스러운, 정체를 도통 알 수 없는 존재가 서있다. 차가운 하늘색 인조모를 두르고 있는 이 조각은 어느 것도 닮지 않은, 명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작가가 미리 설정한 타이머에 맞춰 때때로 부르르 진동하기 때문에 더욱 수상쩍어 보인다. 하지만 이 조각은 생각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조각의 손바닥 같은 주머니엔 달콤한 웰컴 캔디(리조트에 온 걸 환영한다는 의미의 선물이자 기념품)가 가득했다. 수줍게 아무 말 없이 간혹 떨기만 하지만 두 손 가득 환영의 사탕을 들고 관람객을 반기는 이 아이의 이름은 나 지금 떨고 있니?’.

     

▲이원우, '나 지금 떨고 있니?(Am I trembling now?)'. 175 x 93 x 65cm, 폴리스티렌, 스틸, 나무, 인조모, 진동 모터, 사탕. 2016. (사진 = 이원우)


과거 인기를 끈 드라마의 유명한 대사 나 지금 떨고 있니?”는 작가가 스스로에게 항상 던지는 질문이다. 긴장의 연속인 현대사회에서 개개인이 떨쳐낼 수 없는 불안을 작가 특유의 익살스러운 방식으로 털어내고 싶어 제작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작가를 대신해 전시장 가운데서 떨고 있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작가의 불안 인형인 셈이다. 이 불안 인형이 대신 떨어주는 덕분에 작가는 물론 관람객들도 적어도 이 리조트에서만큼은 어느 정도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지 않을까.

   

행화탕은 목욕탕이 문을 닫은 이래 오래간 방치됐기 때문에 건물 내부 상태가 그다지 온전치 않다. 천장은 모두 뜯겨져 나무로 된 지붕 골조과 대들보가 노출됐고, 파이프와 깨진 타일, 헐어있는 시멘트 벽이 모두 적나라하게 속을 내보였다. 작가는 이 성격 뚜렷한 공간을 감추거나 바꾸기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활용해 부조화의 균형을 이끌어낸다.

     

전시장 너머엔 숨겨진 공간이 둘 있다. 하나는 반쯤 노출된 자그마한 보일러실. 이곳엔 과일로 만든 눈코입이 각각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작품이 걸렸다. 이 옆방엔 뒤편의 숨은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다. 작은 통로를 타고 들어가면 앞뒤로 격하게 인사하는 공룡 얼굴을 만나 놀랄 수도 있다. 작가는 대형 메트로놈에 공룡을 입혔는데, 귀엽지만 어딘가 오싹한 여운을 준다. 화려한 리조트의 뒤쪽엔 바삐 움직이는 유령 혹은 일꾼 같은 누군가가 존재하리라.

   

▲이원우, '타월 드로잉_여유(chilled-out)'. 70 x 130cm, 타월 위에 염료. 2016. (사진 = 이원우)

 

재개발로 철거되기 전까지 행화탕은 한시적으로 전시장으로 운영된다. 이원우 작가의 행화탕 리조트는 이 동네 목욕탕의 추억을 간직한 동네주민은 물론 불특정 관람객 모두에게 유쾌한 향수(鄕愁)를 전달한다. 실제로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 중엔 인근 주민들도 많은데, 대부분이 행화탕의 추억을 그리며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역사적 의미가 국한된 경우라도) 시간이 축적된 특정 장소를 기반으로 한 작업에서 많이 발견되는 폐쇄성과 우울함이 적극적으로 배제됐다.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할 무언가를 이제는 즐겁게 추억할 수 있게 만드는 작가 특유의 유희적인 접근이 돋보인다.

 

얼굴 표정이나 제스처를 가진 각각의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통해 목욕탕은 어느새 오렌지색 카펫이 깔린 연극 무대가 된다. 도심 속에 자리한 이 한시적 파라다이스를 만끽하는 일은 실제로 연극적일 수 있지만, 그 재미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다. 전시는 630일까지.

 

▲이원우, '너는 나의 불타는 빛(You are my burning light)'. 183 x 183 x 8cm. 니무 틀 위에 캔버스, 페인트 스프레이, 유색 형광등, 물고기 태닝 램프. 2016. (사진 = 이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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