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무더운 여름, 선풍기를 틀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다. 서울 삼청동 프린트베이커리에도 뜨거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6월, 선풍기들이 대거 들어서며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이 선풍기들이 만들어 내는 건 그냥 바람이 아니다. 작가들의 작업 세계가 담겼다. 선풍기 표면에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알록달록하거나, 독특한 조형물이 선풍기 위에 얹어지는 등 재탄생된, 눈길을 끄는 새로운 모양새다. 예술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난 선풍기는 시원한 바람에 작가들의 예술혼을 가득 담아 공간을 더욱 청량감 있게 만들었다.
미국 공기순환기 브랜드 보네이도의 공식 수입사인 보네이도코리아가 서울옥션의 프린트베이커리와 함께 아트 컬래버레이션 ‘리:윈드(RE-WIND)’전을 열었다. 전시는 프린트베이커리 삼청 플래그십스토어에서 7월 14일까지 열린다.
보네이도코리아는 그간 아트 컬래버레이션 전시를 꾸준히 열어 왔다. 2013년 환경의 날과 2014년 지구의 날을 맞아 진행된 ‘보네이도 쿨런닝’전, 그리고 지난해 보네이도 탄생 70주년을 기념해 국내 현대 미술 작가 22명과 협업한 ‘에코 라운드’전까지. 그리고 올해 4회째로 ‘리:윈드’전이다.
단순한 아트 컬래버레이션 전시가 아닌 이유는 전시의 취지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에코 라운드’전의 경우 ‘친환경’을 뜻하는 에코와 ‘둥글다, 아우른다’는 뜻의 라운드를 합성한 단어를 전시 타이틀로 내세웠다. 일상 공간을 친환경적으로 아우른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올해 ‘리:윈드’전은 지구 환경과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염원을 담은 바람을 다시금 세상에 일으킨다는 뜻을 담았다. 전시에 공개된 보네이도 아트 선풍기를 이후 자선 경매로 판매한 뒤 수익금은 보네이도코리아가 후원하는 제주 올레(사) 운영의 여행자 숙소에 미술 협업 프로젝트인 ‘화가의 방’ 건립 기금으로 기부할 예정이다.
서울옥션 측은 “프린트베이커리 삼청 직영점의 지하 공간을 컬래버레이션 라운지로 올해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공간 콘셉트를 바꾸고 여는 첫 전시”라며 “지구 환경을 위한 친환경적인 전시 취지에 공감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긍정적인 컬래버레이션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함께 하게 됐다. 앞으로도 이 공간을 누구 하나의 특정된 공간이 아닌, 좋은 취지 아래 다양한 전시가 열리는 곳으로 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시 취지에 공감한 또 다른 인물들이 있다. 바로 참여 작가들이다. 고영훈, 사석원, 유선태, 이왈종, 황주리, 강영길, 김택기, 배수영, 신철, 유영운, 윤혜진, 임창민, 하명은, 홍원표까지 작가 14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다른 것보다 전시 취지에 깊이 공감해 흔쾌히 응했다”고 모두 입을 모았다. 작가들이 보네이도 선풍기를 재해석한 작품과, 작가들 본연의 작업을 보여줄 작품을 함께 전시해 더욱 볼거리가 풍성하다.
고영훈-사석원-유선태 등 작가 14명이 보여주는 조화
고영훈은 ‘꽃바람’ ‘용바람’ 작업을 선보였다. 선풍기 표면에 아름다운 꽃과 그 주위를 날아다니는 나비, 그리고 강렬하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용의 역동적인 모습도 보인다.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꾸준히 돌과 깃털, 날개, 사진 같은 일상 주변의 평범한 사물을 리얼하게 그려낸 극사실적인 그림들을 선보여온 고영훈은 이번 작업에 대해 “힘들었지만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작업과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선풍기라는 특정 매체가 바탕이기에, 이 매체의 특성을 해치지 않고 작업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또 주력한 건 주제에 걸맞은 방향이다. 고영훈은 “꽃과 나비, 게와 물고기 그리고 용 등이 어우르는 모습을 그리면서 기계에 인간성을 집어넣어 서로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유선태의 선풍기 위에는 나무가 서 있다. 사과, 책, 액자, 사다리, 거울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를 재해석해 회화와 입체의 차원을 왕복해온 유선태는, 선풍기 표면에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나무를 올려 회화와 입체의 조화를 선보였다. 유선태는 ‘에코 라운드’전에도 참여한 바 있다. 그는 “보네이도코리아의 예술적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쭉 지켜봐 왔고 참여도 했다. 기업에서 좋은 취지 아래 예술과의 결합을 시도하는 걸 좋게 본다. 여기엔 작가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작업에 대해서는 “예술과 과학이 결합된 공존의 이야기를 펼쳤다. 원래부터 오브제를 사용한 작업을 많이 했는데, 기계의 성능은 잃지 않은 채 내 작업을 곁들이는 데 신경 썼다. 전시장에 와 보니 다른 작가들의 작업도 흥미롭더라. 늘 자극이 되는 전시”라고 말했다.
김택기 또한 보네이도코리아와의 전시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번이 두 번째 참여다. 작가는 평소 3D그래픽 기법의 디지털 드로잉 과정을 통해 로봇을 디자인하고, 스틸 구조물을 이용해 조각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주로 선보여 왔다. 대표작으로는 ‘로봇 태권 브이 시리즈’가 있다. 이번에 선풍기를 해체한 작업과, 스틸 구조물 안에 선풍기를 들여놓은 작업을 선보였다. 김택기는 “전시가 인간과 자연을 중심으로 한 콘셉트이기에, 단순히 선풍기를 소품이 아니라 자연의 본연 모습, 그리고 인간에 자연스럽게 접근한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또한 정의의 아이콘인 로봇 태권 브이가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해 내면에 지닌 고독 등 인간의 감성에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배수영의 선풍기에는 그림, 그리고 청량한 푸른 숲을 옮겨놓은 듯한 구조물이 달려 눈길을 끈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공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소모돼 버려지는 산업 폐기물을 소재로 사용하며, 여기에 작품으로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배수영은 “오랜 일본 유학 생활 뒤 한국 돌아와 미술 세계에 입문했을 때 거의 맨땅에 헤딩해보자는 수준이었다. 시청과 도청 등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 무너져가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다. 이번 전시 또한 취지에 공감해 참여했다. 내가 평소 해온 작업 주제와 맞닿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트 컬래버레이션 전시 참여는 이번이 처음인데, 기업과 예술 사이 이런 긍정적인 접점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가운데 지구 환경을 위해 내가 작가로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게 뿌듯했다”고 말했다.
신철은 ‘연인 - 썸타다’ ‘꽃바람 - 여행을 떠나요’ 작업을 내놓았다. 평소 향토색 짙은 농촌 풍경과 단발머리 소녀들을 빠짐없이 작업에 등장시킨 신철의 선풍기는 친숙하고 다정다감하다. 그는 “지구 온난화 등 환경 문제에 작가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작지만,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열심히 할 수 있는 기획전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 문화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전시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작가들이 이곳에 모였다. 작가들의 소리가 한 데 모여 좋은 하모니를 이룬다. 이 하모니가 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림 덧입혀지거나 조형물 설치되며 예술로 재해석된 선풍기
윤혜진은 컬래버레이션 전시 참여가 처음이다. 그는 ‘바람의 신’이란 이름의 조형물을 선풍기 위에 올려놓았다. 선풍기를 보는 이를 향해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듯한 모습이다. 유혜승은 “이번 전시를 위해 ‘바람의 신’을 처음으로 작업했다. 선풍기 프로펠러의 변형체인데, 여기에 눈, 코, 입을 달아 얼굴을 만들고 신격화한 결과물”이라며 “이 조형물이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데, 기울어진 지구가 순환하고 여기에 생명체가 살아가는 모습을 상징한다. 보네이도 선풍기 본체는 지구라 할 수 있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다”고 작업을 설명했다.
하명은은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해 입체로 표현하는 작업이 특징이다. 이번엔 보네이도 선풍기에 화려한 이미지를 입혀 놓았다. 그는 “막상 선풍기를 받아보니 마감이 완벽한 상태라 어설프게 작업해 되려 망칠까 걱정됐다. 그래서 3주 가까이 선풍기를 바라보며 같이 생활했다. 어떻게 선풍기의 원형을 망가뜨리지 않고 작업과 함께 갈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선풍기의 예쁜 스테인리스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면서 작업하기로 방향을 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연 그리고 바람 이야기가 주요 콘셉트다. 별이 잘 보이고 한가로운 곳에서 자연의 바람을 쐬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홍원표의 대표 캐릭터 ‘바라바빠’도 등장한다. 행복과 소통을 전하는 캐릭터가 이번엔 바람과 함께 즐거운 에너지를 관객에게 한껏 날려 보낸다. 홍원표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작업할 때 보네이도 선풍기 바람을 직접 쐬면서 그 기분 좋은 느낌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작업의 주요 캐릭터인 바라바빠도 이 취지에 맞아 떨어지게 행복을 담은 캐릭터였다. 콘셉트가 딱 맞았다. 예쁜 선풍기의 원형을 살리고, 여기에 보조적인 역할로 바라바빠의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원색적인 색상으로 선풍기에 역동감을 부여한 사석원, 화려한 이미지 속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민을 담은 강영길, 슈퍼맨과 원더우먼 등 대중문화 속 아이콘을 선풍기에 옮긴 유영운의 작업도 전시된다. 들꽃과 사람 그리고 집 등 일상 소재로 작업한 이왈종, 선풍기 프로펠러에 영상이 보이도록 한 임창민, 서로 꽉 껴안아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선풍기에 담은 황주리의 작업도 눈길을 끈다.
최영훈 보네이도코리아 총괄 대표는 “보네이도는 냉방기의 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줘 에너지 절감은 물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가전”이라며 “국내 유명 현대미술 작가들이 지구 환경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메시지를 냉방 효율을 높여주는 절전형 가전인 보네이도에 담아 표현한 작품들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옥션 프린트베이커리와의 컬래버레이션 과정에 대해서는 “전시에 보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측면에서 이번에 함께 전시를 열었다. 보네이도 아트 선풍기에는 작가의 친필 서명과 에디션 번호가 새겨져 소장 가치를 더한다”면서 “앞으로 일반인이 사진을 보내고 이 중 선택해 전시하는 등 대중과 호흡하는 형태의 전시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기순환기 브랜드 보네이도는 1940년대 중반 미국 보잉사 출신 기술진이 항공기 제트 엔진의 원리를 적용해 개발했다. 친환경 및 절전 가전으로 인식되며 2008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이후 사무실, 일반 업소를 비롯해 일반가정에서도 수요가 늘어나 지난해 공급 물량 11만여 대가 전량 판매됐다.
프린트베이커리는 ‘일상 속 미술 대중화 전개’를 목표로 서울옥션이 만들었다. 유명 작가 작업들을 액자, 컵 등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해 저렴한 가격에 예술 작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