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돌보는 식물만 300개가 넘는다는 작가는 요즘 말로 ‘식물 덕후’다. 한 자리에서 뿌리를 내려 몸을 고정한 채, 마냥 수동적일 것만 같은 식물은 사실 종류에 따라 성격이 다르고, 요구 사항 또한 다양하다. 외관으로 표현하는 식물의 언어를 읽을 수 있으면 그때부터 새로운 소통의 세계가 펼쳐진다.
정직한 그림
김이박은 성균관대로 편입해 순수미술을 시작하기 전에는 화훼 디자인을 공부했었다. 그는 ‘순수 미술’이라고 하면, 정말 식물처럼 꼼짝 않고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무엇인가를 만들고 깎아야만 되는 줄 알았고, 정말 그림만 그렸다.
그의 드로잉은 언뜻 보기에 매우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종이 위에 표현된 것 중 어느 곳 하나 기교랍시고 생략된 곳 없이 드러난 정직한 선과, 많아야 두 가지 색을 물 조절만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시간을 느낄 수 있다면, 깔끔하고 과감하지 않은 성격을 숨기지 않고 내보이기까지의 용기와 그것에 동반하는 무게감 또한 눈치 채게 될 것이다.
개인 정원을 가지기 힘든 도시에서 빌딩의 옥상은 작가에게 푸른색 정원으로 보였나 보다. 푸른색으로 칠해진 빌딩 옥상의 군집에 빨간 색 고무 다라이(대야) 꽃이 폈다. 식물이 그리운 도시의 사람들은 콘크리트 빌딩의 옥상 위에 흙을 넣은 고무 대야나 스티로폼 상자를 놓고 텃밭을 가꾼다. 그는 “외국에서 스티로폼 박스나 고무 다라이에 텃밭을 가꾸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 집엔 분명 한국 사람이 산다는 것”이라며, 한국인의 독특한 문화가 돼버린 습성(?)도 곁다리로 전해준다.
“식물은 조용해서 좋아요”
김이박은 학교 안에서는 알 수 없었던 작가라는 직업, 특히 평면 작업을 하는 작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학교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알게 됐다. 드로잉의 형식을 하고 있는 작품만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현실의 미술계에선 한계가 있었다.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식물과 함께할 수 있는 플로리스트 일을 했다. 작가들은 전시를 열 때마다 많은 꽃과 화분을 받는다. 준비 없이 선물로 받은 생명들은 무관심으로 시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김이박이 화훼를 공부했던 것을 알고 있는 주변의 동료들은 작업에 관한 이야기보다 아프거나 죽어가는 식물에 대해 묻곤 했다. 그는 그런 식물들을 모두 다 거둬 ‘식물 요양소’를 만들었다.
작가는 식물이 “조용해서 좋다”고 했다. 인간과 인간 혹은 동물과의 교감이 너무 격하거나 피곤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식물의 평균 수명이 다른 것만큼 시간의 개념도 다르게 적용될 것이다. 때로 느껴지는 교류에서의 피로감은 그런 시간의 속도 차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다른 사람이 맡긴 식물은 잘 고쳐주지만, 내가 기르던 식물은 밖에 심어버려요. 그러면 아픈 애들은 알아서 도태되죠. 하지만, 동물하고 이별했을 때만큼 상처받지는 않아요”라고 전한다.
모험의 시작
그가 현재 진행하는 작업의 형태는 설치뿐 아니라 퍼포먼스도 포함한다. 드로잉에서도 보이듯 그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작품 세계가 평면을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 우연히 찾아온 '리얼DMZ프로젝트‘ 참여작가 제의는 작품 형식 변화의 계기가 됨과 동시에 작가 개인에게 모험의 시작이기도 했다.
아트선재센터의 주관으로 매년 개최되는 ‘리얼DMZ프로젝트’의 2015년 전시는 DMZ(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인 강원도 철원의 동송읍 내를 배경으로 주민들과의 교류가 확대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김이박은 전시에 참여한 작업이 “사람과 마주치지 않았기에 가능했었다”고 한다.
작가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당시 공공미술에 대한 반감이 있었기에, 프로젝트 참여에 어떤 기대나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의 고향은 공공예술로 유명세를 탄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의 직격탄을 맞은 부산의 감천마을이다. 그의 친척은 거의 쫓겨나다시피 마을을 나와야 했다.
이사하는 정원
어찌됐든 그는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리서치를 위해 동송읍을 드나들 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중년 여성의 날선 불평을 들었다. 내용인즉,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마땅치 않은 곳에 신발의 흙을 털고 다닌 모양이었다. 그녀는 투덜대며 흙을 쓸어 모아 늘 두던 자리에 모아놨고, 작가가 그 자리에서 발견한 것은 비옥한 흙무덤과 무성하게 자란 잡초였다. 민간인 통제선을 드나드는 군인의 군화 밑이 흙과 씨앗을 옮긴 까닭이었다. 인간이 만든 경계를 식물은 인간보다 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이다.
김이박은 그날 이후, 동송읍 내 가게의 현관 앞에 있는 발판 밑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신발에서 떨어진 흙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고맙다고 하는 주민도 있었지만, 작업의 내용을 설명해도 이해 못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주민도 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는 읍내 모텔에서 밤을 보내고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시는 분들과 함께 움직였다.
발판 밑의 흙먼지를 한 번 모으면 5~10kg 가량 됐다. 그것을 우체국 택배로 서울의 작업실로 보내기를 3개월. 2개월간 싹을 틔워 기르니 읍내의 꽃가게에 있던 꽃부터 비무장지대의 이름 모를 잡초까지 자라났다. 그것을 다시 화단 채 동송읍의 카페 앞에서 1개월을 전시하고, 아트선재센터로 다시 가져와 전시했다. 작가는 “그 화단이 작품인 듯 아닌 듯 했으면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전시장 안에 들어가지 않고 미술관의 입구 옆 외벽에다가 화단을 꾸렸다. 재미있는 것은 옆에다가 (조그맣긴 했지만) 작업 설명을 써놓았음에도 전시장에 있지 않아서인지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이더란다. 그래도 그대로 뒀다. 너무하다 싶을 때만 한 번씩 치우고. 당시의 잡초 씨앗은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이 작업의 이름은 ‘이사하는 정원’이다.
두물머리 영감님
인간이 식물의 입장이 돼 보는 것은 다른 인간에게 꽤 이상한 행동들을 유발하나보다. 그가 식물에 관심을 보일수록 사람들은 격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첫 번째 작업에 대해 사람들이 의심을 가지는 수준이었다면, 두 번째 프로젝트에 대해선 대놓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경기 문화재단 주관의 ‘노마딕경기아트페스타’ 중 ‘실·신(실학+신학)프로젝트’의 하나로 진행된 퍼포먼스였다.
경기도 양평,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의 두물머리 마을은 1974년 팔당댐이 생기며 마을이 수장됐다. 이 마을에는 400년 동안 마을을 지켜주던 도당 할아버지-할머니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마을이 물에 잠길 때 할머니 나무만 수장됐다.
김이박은 혼자 남은 할아버지 나무를 위로하려 ‘공무도하가’가 적힌 근조화환을 앞에 세워두고 하얀 국화꽃을 한 송이씩 뽑아 꽃무덤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나타난 주민 영감이 “왜 근조화환을 여기다 두고 뭐 하는 짓이냐”며 호통을 치기에, “혼자 남은 할아버지 도당 나무 위로해 드리려 한다”고 설명했더니 “할머니 느티나무를 누가 팔아먹었는지 아냐”며 더욱 화를 내더란다. 알고 보니 수장된 할머니 나무를 그나마 누군가 잘라다가 팔아먹었다는 것.
작가가 팔아먹은 것도 아니건만, 그날은 영감의 울분 섞인 육두문자만 실컷 들었다. 다음 날 새벽 아무도 없을 때 못 다한 퍼포먼스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지역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던 것이 후회가 된다”고 전했다.
그 후 진행된 분단 중앙공원에서의 퍼포먼스는 무계획적인 신도시 개발로 일어났던 빈민 항거운동 ‘광주 대단지 사건’을 추모하며 위로하고, 동시에 뿌리가 뽑히고 억지로 심어져 살아남은 식물들에게 격려의 헌화를 하는 것이었다.
식물에서 모든 것으로
김이박 작업의 변화 과정은 한 소년이 좌충우돌 세상을 경험하는 한 편의 모험담처럼 흥미롭다. 또한 그의 작업세계가 집중하는 대상이, 처음의 식물에서 식물의 생존력과 특성을 가진 인간으로 영역이 넓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공공 프로젝트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작가였다. ‘스스로 퍼포먼스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작품 영역의 확대가 이뤄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그는 “예전에는 평면의 화면에서 벗어나는 것이 꽤 고민이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주변의 모든 것이 다 작업할 수 있는 요소로 보인다”고 대답한다.
덧붙여,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간호사가 돌본 식물은 건강하게 자라고, 아픈 환자가 돌본 식물은 이상하게도 시들어간다”는 작가의 말은 그가 집중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가 가진 힘, 더 나아가 그 힘에 의한 생명체간의 교류와 교감임을 짐작케 한다.
김이박은 타인의 식물을 치료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의뢰자-식물-작가"의 정서적 유대와 의뢰자의 환경이 식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찾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픈 식물을 치료할 뿐 아니라 식물과 의뢰자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두루 살핌으로써 식물과 관계를 맺는 각 요소들의 상호관계에 주목하는 작업에 흥미를 가지고 그것을 표현해나갑니다. 상호관계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식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치료사의 역할과, 의뢰자와 식물의 상황을 인지하고 조사하는 연구자의 역할이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드로잉과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여러 방법으로 만들어내는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