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Avant-Garde), 즉 전위미술은 20세기 초,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운동이었다. 기성 예술의 질서를 부정하고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념 체계를 세우고자 했던 한 시대의 특정한 경향을 지칭했던 용어는, 현재로 가까워질수록 기성 예술에 반항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예술을 총칭하게 됐다.
그 이유는 예술에 아방가르드라는 개념이 끼어들게 된 순간부터 예술은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는 여가 생활이 아닌, 사회 환경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 됐으며, 많은 예술가들이 무너뜨리고자 했던 기존의 질서 역시 사회적 변화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번 ‘2016부산비엔날레’는 아방가르드 미술, 그중에서도 서양 중심의 세계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한‧중‧일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주목한다. 각기 다른 정치‧사회적 배경에서 탄생한 아방가르드 미술이 현재에 이르러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펼쳐낼 예정이다. 비엔날레 개최 역사상 전에 없던 동아시아 배경의 현대 미술사를 펼쳐내는 시도가 이번 부산 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시각으로 바라본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
7월 2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2016부산비엔날레를 설명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임동락 집행위원장과 총 전시 지휘를 맡은 윤재갑 전시감독, 그리고 한‧중‧일의 큐레이터 김찬동, 구어 샤오엔, 사와라기 노이, 우에다 요조의 참여로 전시 구성과 전시 공간 설명, 그리고 각국의 현대 아방가르드 미술의 역사가 짧게 소개됐다.
부산시립미술관과 고려제강 수영공장에서 9월 3일~11월 31일 개최되는 이번 비엔날레에는 23개국 230명(팀)이 330점 가량의 작품을 선보인다. 임동락 집행위원장은 “(비엔날레의 전신인) 부산 청년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 탄생시킨 부산국제아트페스티발이 출범한 이후, 10회째를 맞았다”며, “미술사의 서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시각으로 바라본 최초의 시도다. 부산 비엔날레의 새로운 전환점이자 미술사적으로도 의미 깊은 행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비엔날레는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주제 아래 각기 다른 세 특징을 가진 프로젝트로 나눠 개최된다. 윤재갑 감독은 “전시와 특별 전시 그리고 부대 행사로 나뉘던 기존의 비엔날레 전시 구성에서 벗어나, 어느 하나만 주요 전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프로젝트가 가진 특성에 고루 주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다르거나 같거나 어쨌든 ‘아방가르드’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로젝트 1은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하나의/다른, 아방가르드, 중국-일본-한국)’이라는 주제로 각자 다른 정치‧사회적 배경에서 탄생했지만, 아방가르드라는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각국의 예술을 소개한다.
윤감독은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냉전 시스템이 지속되고 있을 때, 동아시아에서는 자생적이고 독자적인 아방가르드 움직임이 있었다”며, 서양 중심의 현대 미술사에서 소외돼 있던 아시아의 현대 미술사를 조망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전위미술 - 1976~1995
큐레이터 구어 샤오옌이 소개하는 중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은 역사가 그리 길진 않지만, 사회 변혁의 속도만큼 빠르게 발전했다. 천안문사태가 일어난 1976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중국 아방가르드는, 2차 천안문사태가 일어난 1989년 전후에 활동했던 작가들까지 포함하는 1세대, 그 후 1996년 원명원 사태(반체제 작가들이 모여 작업하던 원명원을 국가가 강제 해산시킨 사건)까지 활동한 2세대 작가들로 나뉜다.
중국 아방가르드 운동의 출발점을 해석되는, 문화대혁명이후 탄생한 민간 사진그룹 ‘사월영회’와, 본격적으로 저항적 성격을 가진 ‘성성학회’와 ‘무명화회’가 소개된다. 80년대는 특히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변혁적인 시기였는데, 일원화된 미술계에 반발해 작가 개인의 정체성과 다양성에 주목한 85미술운동(85신조)은 젊은 작가들이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면서 전국적으로 약 87개의 운동 및 집단을 태동시켰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이 중 다섯 개 운동 및 단체 ‘초현실주의’ ‘샤먼다다’ ‘이성회화’ ‘생명의 흐름’ ‘못’을 비롯해 1989년 이후 ‘망류(무작정 도시로 유입되는 사람)’ 작가(일종의 방랑 작가)의 작업들이 선보인다.
구어 샤오엔은 “2000년대 이후 중국 사회는 자본주의에 편입되며 혼란스러운 시기이기에 1995년 이전의 작가까지 소개한다”고 밝혔다. 장 샤오강의 초창기 작품과 사월영회가 정부의 탄압을 피해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의 전위미술 - 핵, 올림픽, 박람회, 버블경제
큐레이터 사와라기 노이와 우에다 우조가 소개하는 일본의 아방가르드는 ‘그라운드 제로’라 불리는 히로시마 피폭 이후, 패전의 지점부터 시작한다. 일본은 1920년대에 이미 유럽으로부터 다다이즘 등의 영향을 받고 있었고, 1930년대에는 초현실주의도 유입되며 전위미술이 피크를 이루기도 했었다. 1939년 군부 주도의 통치 이후, 미술은 급격히 쇠퇴했고 1945년 패전을 맞기까지 전쟁화가 난립했다.
사와라기 노이는 “아방가르드 운동이 일어난 여러 시기를 모두 소개하기에는 그 범위가 너무 넓어 역사적 경위와는 별개로 패전 이후, 미국의 통치 아래 겉으로만 그럴 듯해 보이는 고도 경제성장에 위화감을 표현하는 움직임의 측면에서 조망한다”고 밝혔다. 그가 제시하는 아방가르드 운동의 결절점이 되는 큰 사건들은 ‘히로시마 피폭’, 1964년 ‘도쿄올림픽’, 1970년 ‘일본만국박람회’, 1980년대의 ‘버블 경제’ 등이다.
보여주기 식의 국제적인 행사와 도시 건물을 새로 짓고 부수는 과정을 바라보며, 작가들이 보여준 반발을 이번 전시는 선보인다. 노이는 “아방가르드는 이런 사건들의 전후에 발견되는 양상을 그린다. 베이징 올림픽과 서울 올림픽을 개최한 중국과 한국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공통점을 찾아 비교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더불어 그는 “일본은 원자폭탄 공격을 받은 핵 피해국임에도 불구하고 54기에 달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핵에너지 추진국이 됐다. 2011년의 핵연료 누출사고는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였는지 모른다”며 “거대한 자연재해와 핵 재해는 진보와 발전이 허구였음을 보여준다. 그 사건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채로 2020년 또 다른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 현재 아방가르드 미술의 큰 화두”라고 밝힌다.
‘구타이 미술협회’의 타나카 아츠고, ‘네오다다’ ‘반예술’ 집단의 시노하라 우시오, 아카세와 겐페이, 쿠도 테츠미 등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한국에 ‘단색화’로 알려진 ‘모노하’ 역시 학생운동에서 비롯한 아방가르드 미술에 속하지만 이번 전시에선 제외됐다.
한국의 전위미술 - 군부독재시대 1960~1980
한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선보이는 김찬동 큐레이터는 군부독재정권 시절인 1960~1980년대의 한국 미술을 소개한다. 이 시기는 단색화와 민중미술이 그 독자적인 영역으로 피크를 이룬 시기지만, 뒤에 가려져 있던 설치, 행위, 미디어 예술에 초점을 둘 예정이다.
1968년 정체된 사회제도에 반발해 일어난 유럽의 68학생운동은 그 여파가 한국까지 미쳤다. 한국으로 들어와 제도권에 편승된 앵포르멜, 그것에서 비롯한 단색화 및 주류 장르인 민중미술과 같이하길 거부하며, 주변에서 활동했던 해프닝 및 개념미술 작가들이 존재했다. 김 큐레이터는 “군부통치 시절인 당시에는 약간의 실험성만 띄어도 불온하다고 의심받았다”며 “각박한 환경에서 피워낸 그들의 작업 활동은 당시의 정치적, 혹은 미술계의 구조적 측면 탓에 홀대되고, 가치가 충분히 평가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탈추상’을 목표로 오브제를 이용한 실험적 작품을 선보였던 1967년의 ‘청년작가 연립전’에 나온 작품들을 비롯해 김구림이 속했던 ‘제4집단’, 하종현이 회장이었던 ‘아방가르드협회’ 등의 작품이 나온다.
당시 실행됐던 파격적인 퍼포먼스들은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기록을 위한 재연 퍼포먼스가 실행되기도 한다. 21일에는 대안공간 루프에서 정강자, 정찬승, 강국진의 퍼포먼스 ‘투명 풍선과 누드’가 재연됐고, 23일에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제4집단’의 ‘기성문화 장례 행렬’의 재연 퍼포먼스가 있었다.
폐허에서 피어나는, 세계에서 온 ‘악의 꽃’
프로젝트 1이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에 집중했다면 프로젝트 2는 9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화를 배경으로 한다. 윤 감독은 “이때부터 세계적으로 ‘글로벌 비엔날레 시스템’을 따르는 150~200개의 비엔날레가 만들어졌다”며 “기성 미술관의 권위에 반하고 현재 당면한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세계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고 전했다. 23개국 56명 작가(팀)의 작품이 선보이는 이 프로젝트에는 남미와 유럽에서 일어나는 다른 사회적 배경(식민지 같은)에서 비롯한 아방가르드 작품도 선보인다.
프로젝트 2가 열리는 고려제강 수영공장은 1963년 지어진 3000평가량의 폐공장이다. 이 공간은 고려제강의 전액부담으로 재건축돼 전시장으로 탈바꿈한다. 위에서 보면 사각형 안에 사각형이 있는 형태다. 제일 바깥 사각형이 전시장이 되고, 중간 사각형이 서점, 아트숍 및 휴식시설이 된다. 가운데 중정에는 무대가 설치되는데, 다양한 행사와 공연이 이뤄지는 한편, 학자와 작가들이 참여해 점점 더 영역이 확대되는 문화에 대한 공론장을 펼치는 학술 세미나가 전시기간 내내 진행된다. 그것이 세 번째 프로젝트다.
윤 감독은“고려제강의 전시공간은 완벽한 화이트 큐브가 아닌, 폐허 같은 공간에 작품이 ‘악의 꽃’처럼 피어나는 자유로운 공간이 될 것”이라며, “장르를 초월해 혼혈하는 현재 작가들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과 동시에 그와 대비되는 세계화 이전 한‧중‧일 미술사에서 잊혀진 작가들의 몸부림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