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 벽이 주는 시원하고 매끄러운 감각을 떠올려보자. 차가운 타일 바닥에 손과 발이 닿는 상쾌함이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그런데 이렇게 건물 안팎으로 널리 쓰이는 타일은 과연 건축재일까, 도자일까?
두께가 얇고 견고한 타일은 건축물의 마감과 장식을 담당했다. 기원전 수천 년부터 점토를 평평하게 성형해 구운 타일이 건축용으로 활용됐고, 19세기부터는 건축에만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예술품으로써 각광받아왔다.
흙으로 만든 타일이란 연결고리로 건축과 조형의 세계를 탐색하는 전시가 경남 김해에서 열린다. 세계최초 건축-도자 전문미술관인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두 번째 기획전 ‘포스트-타일’을 8월 9일 개최했다. 한국, 미국, 이란 등 3개국 작가 9명이 참여해 저마다 다른 작업 방식으로 ‘타일’을 재해석했다.
주 전시관인 돔하우스의 중앙 홀에는 네이튼 클레이븐의 작품이 자리했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다양한 모양의 세라믹 조각들이 벽과 바닥의 구멍을 메웠다. 어쩌면 구멍을 더 잘게 쪼갰다고 설명하는 게 맞을 것이다. 수 천개의 조각들로 매번 다른 형태, 다른 장소를 가득 채운다. 작가는 타일에 다공성을 부여하고, 작은 유닛들을 유기적이고 자유롭게 조합함으로써 타일의 조형적 의미를 확장시켰다. 이번 전시에는 중앙홀 한가운데에 ‘옹이(Node)', 홀의 벽면 구멍을 채운 '링(Ring)' 그리고 뒤편 복도를 따라 ’베일(Veil)'을 설치했다.
갤러리 1관에는 모함메드 도미리와 김혜경이 사진과 미디어를 이용해 중동과 아시아의 유구한 타일의 역사를 재해석한다. 실제로 타일은 이슬람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모함메드는 이란의 찬란했던 타일문화를 건축 사진으로 남겼다. 완벽한 대칭과 아름다운 색상을 뽐내는 이슬람 타일 양식을 촬영한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실제 타일 위에 전사한 작품을 공개했다. 김혜경은 동양의 고미술을 사랑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한국의 타일 문화를 기와와 전돌로 해석했다. 기와 지붕 모양의 설치물을 바닥에 놓고 그 위에 영상을 비춰 박제된 전통에 숨을 불어넣는다.
갤러리 2관 입구에 들어서면 몰리 해치의 회화적인 도자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몰리는 미술사에 관심 있는 작가로, 특히 박물관의 주류가 아닌 소장품들을 리서치하고 이를 직접 만든 세라믹 접시 위에 손수 그려낸다. 이번 전시에는 뉴욕 쿠퍼미술관의 텍스타일 패턴, 런던 빅토리아와 알버트 박물관의 프라고나르의 ‘그네타기’ 등에 영감 받은 작업을 선보인다. 몰리는 “친근한 것을 재창조하는 일에 관심 있다”며 “모티프가 된 원본이나 세라믹에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했다.
한편, 수잔 베이너는 타일 위에 풍성한 자연의 형태를 옮겼다. 무성하고 복잡하게 자란 식물의 모티프를 흙으로 타일화하며, 자연과 인간문명이 만난 현대적인 생태계를 암시한다. 특히 ‘합성 줄기’와 ‘합성 현실’은 사람이 만든 인공물과 자연적 생명체를 합성한 듯한 독특한 풍경을 아이러니하게 표현했다.
그 옆으로 슬립캐스팅* 기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한 한국 작가 4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김희영 작가는 소모품인 일회용 용기를 창백한 흰색 세라믹으로 캐스팅하고 이를 유럽의 장식타일이나 벽지 패턴처럼 설치했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소모품을 반영구 재료인 세라믹으로 치환하고 이를 반복적인 패턴으로 설치해 오늘날의 소비문화를 꼬집는다. 작품 ‘풍경’에 관해 김희영은 “하늘에서 바라본 일회용품에 뒤덮인 세상처럼, 오늘날 소모적으로 돌아가는 정신의 풍경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슬립캐스팅 : 몰드(틀) 모양대로 고형 물체를 성형하기 위해 액체 재료를 주입하는 공정.
이은주 작가는 세라믹에 빛과 소리, 움직임을 덧입혔다. 일반적인 평면 타일이 아니라 반원 모양의 원통형 조각을 슬립 캐스팅하고 이를 직조하듯 다양한 방식으로 설치했다. 각 유닛에는 LED 조명이 삽입해 음악 재생이나 리모컨 조작으로 빛을 움직인다. 유닛들은 하얀 백자토로 얇게 만들어져 조명을 만나면서 한지와 같은 따뜻한 빛을 내비춘다.
이경민 작가는 규칙이나 조건을 상정해놓고 결과를 도출시키는 방식으로 모듈페인팅을 만들었다. 고정된 표면 위에 슬립캐스팅된 세라믹 실린더(원통)를 설치하고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움직임과 조형미가 담긴 타일 작품을 출품했다. 작가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의 4개월 레지던시 기간 동안 해당 작품들을 제작하며 어려운 공정을 해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박성욱 작가는 15, 16세기에 마지막으로 전해진 분청사기 기법인 덤벙기법을 활용한 작품을 공개했다. 작은 도자 편에 덤벙기법으로 단순하지만 아련한 색감을 입히고, 이를 반복·나열시켜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는 유약을 바른 면과 바르지 않은 면 등 2가지 색을 사용한 ‘달과 탑 풍경’ 작업과 작은 탑들의 군집 설치를 선보인다. 전시는 12월 2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