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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남미] 8700km 날아 대서양 동·서 바다에 발담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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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7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8.22 09:24:35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4일차 (케이프타운 → 요하네스버그 → 브라질 상파울루)

케이프타운 시내의 아침 풍경

오늘은 또다시 긴 여행길에 오르는 날이다. 다시 요하네스버그로 두 시간 1200km, 거기서 남대서양을 건너 상파울루까지 10시간, 8700km의 긴 비행이 기다린다. 남미 브라질은 서울의 대척점(antipode)이어서 어느 루트를 선택하건 비행시간만 최소 27시간이 걸리는 머나먼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바람도 없이 하늘이 맑아 테이블 마운틴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불과 하루 사이에 참 아쉽다. 케이프타운 아침의 거리는 출근 인파로 분주하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선남선녀들이 중앙역 통근열차에서 내려 바쁜 걸음으로 일터로 향한다. 남아공을 VISTA(베트남,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아르헨티나의 약자) 국가로 지목해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밝은 미래로 이끌 재목으로 선정한 안목을 엿보게 한다.

중앙역 앞 대로에는 남아공이 참전한 세계 각국 전쟁터에서 사라진 영혼들을 위로하는 추모비가 서 있다. 당시 영연방의 일원으로 참전한 한국전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조형물도 함께 서 있다. 도심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20분이 채 안 걸려 공항에 닿는다. 도시 동남부 케이프 플랫츠(Cape Flats)에는 가난한 흑인들의 누추한 집들이 이어지고 철도 혹은 고속도로로 분리된 건너편에는 미국 도시 교외의 중산층 거주 지역과 흡사한 풍요로운 주택가 풍경이 펼쳐져 대조를 이룬다. 짧은 2박 3일 동안의 케이프타운 일정이었지만 아프리카의 멋진 모습과 어두운 모습, 불행했던 과거와 밝은 미래를 조금씩이나마 모두 맛본 것 같다.

요하네스버그행 남아공항공 여객기는 정시에 이륙한다. 아프리카 대륙 서남단 희망봉에는 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해안 절벽을 때리는 것이 내려다보인다. 희망봉의 이전 이름이 ‘폭풍의 곶’이었음을 입증해 주는 거친 파도다. 그리고는 광활한 아프리카 대초원이다. 상파울루행 항공기는 다행히 듬성듬성 빈자리가 있다. 홍콩-남아공 초장거리 구간도 옆 좌석이 비었는데 이번에도 운이 좋다.

▲리우 도시 전경. 가운데 빵 지 아쑤까르가 보인다. 높이 396m의 화강암 바위산으로 우리나라 인수봉을 닮았다. 사진 = 김현주

남미 대륙에 발을 딛다

항공기는 정서 방향으로 날아간다. 인도양 상공이 그랬듯 남대서양도 섬 하나 없는 망망대해다. 북반구가 육반구(陸半球)라면 남반구는 수반구(水半球)라는 지리 교과서 말이 정확하게 맞다. 요하네스버그 이륙 후 9시간 30분, 브라질 현지 시각 밤 11시 45분에 상파울루 과룰류스(Guaruhlos) 공항에 도착함으로써 드디어 남미 대륙에 발을 디뎠다. 거대한 도시가 다가선다. 남아공도 그랬지만 적도 너머 남반구에도 인류가 이렇게 찬란한 문명을 건설해 놓았다. 인구 1억 9000만 명, 면적 세계 5위(러시아 > 캐나다 > 미국 > 중국 > 브라질 순), 그리고 1인당 소득 7737 달러의 나라다.

브라질의 역사는 1500년 포르투갈인 가브랄(Pedro Alvares Gabral)이 브라질을 발견하고 식민화하면서 시작된다. 바돌로뮤 디아즈와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과 동방항로를 개척한 바로 그 시기였다. 같은 이베리아 반도의 에스파냐가 신대륙 발견과 레콩키스타(Reconquista, 700년 넘게 반도를 지배한 이슬람 세력을 축출한 사건)를 성취한 바로 그 시기이니 돌이켜보면 이베리아 반도에 서광이 비췄던 때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이처럼 거대한 문명을 건설했으니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어떠한 형태로든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것은 분명하다.


5일차 (상파울루 → 리우데자네이루)

거대한 찌에떼 버스터미널

한참을 기다려 오전 3시 찌에떼(Tiete) 버스터미널행 공항버스에 오른다. 30분 후 도착한 찌에떼 버스터미널은 거대하다. 브라질 전역은 물론이고 우루과이,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등 국제 장거리 버스 노선도 여기서 출발한다. 연말연시를 맞아 버스표 사정이 쉽지 않지만 다행히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표가 있어서 상파울로-리우 왕복표를 모두 끊어 놓으니 마음 든든하다.

▲상파울루로 떠나기 전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테이블 마운틴. 제주와 함께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됐다.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자면 이유를 절로 알 것 같다. 사진 = 김현주

물가 비싼 상파울루

버스에 타기 전 요기를 위해 바게트와 커피 한 잔을 주문하니 무려 R13(한화 9000원)이다.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곳 중 하나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1인당 소득이 8000불이 안 되는 이 나라에서 물가가 이렇게 비싸니 서민들의 삶은 얼마나 각박한 것일까? 고속 경제성장과 인플레의 그늘이 짙다. 상파울루에서 리우까지 429km 고속버스 요금이 5만 원 또는 6만 5000원인 것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거리가 비슷한 서울-부산 고속버스 요금은 3만 5000원, 그것도 우등고속 기준이다.

리우데자네이루 略史

리우데자네이루는 남위 23.5도 남회귀선에 근접한 열대 사바나 기후로서 연중 온화하다. 2014년 FIFA 월드컵 개최지(브라질은 1950년에 이어 두 번째 월드컵을 개최했다)이자 2016년 남미 최초의 하계 올림픽이 열린 곳이 됐다. Rio de Janeiro(‘1월의 강’이라는 뜻)라는 이름은 1502년 1월 1일 포르투갈 원정대가 발을 디딤으로써 유럽인들이 최초로 상륙한 날에서 유래한다.

17세기 후반까지 사탕수수 재배 지역에 불과했으나 이후 금, 다이아몬드, 철광이 발견되면서 브라질 동북쪽 사우바도르(Salvador)에 있던 수도가 옮겨올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또한 1808년에는 나폴레옹의 포르투갈 침공으로 리스본 왕실 전체가 옮겨 오기도 했다. 그러나 1955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쿠비첵(Kubitschek)이 선거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1960년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무리하게 수도를 지리적 중심에 가까운 브라질리아(Brasilia)로 옮겼다. 그에 따라 리우는 수도로서의 생명은 끝났으나 여전히 브라질 경제, 교역, 문화의 중심지로 남아 있다.

새벽 6시 정각에 떠난 버스는 곧 상파울루 외곽을 지난다. 주로 경공업으로 보이는 많은 공장들이 산재해 있는 모습은 경제성장기 우리나라 모습을 닮았다. 포장 안 된 마을 안 길, 누추한 집들 또한 영락없이 한국 1970~80년대 모습이다. 비탈진 언덕마다 어김없이 파벨라(Favela, 빈민촌)가 기어 올라간 모습을 보는 사이 버스는 브라질 대평원을 달린다. 광활한 온대 초원에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드디어 리우 외곽이다. 6시간 걸려 낮 12시 조금 넘은 시각에 버스가 도착한 리우 호도비아리아(Rodoviaria) 버스 터미널은 혼돈의 극치다. 이집트나 인도 같기도 하고 멕시코시티 외곽 같기도 하다. 택시를 타고 시내 중심부에 있는 호텔에 무사히 도착해 반가운 샤워를 마친 후 도시 탐방에 나선다.

▲리우데자네이루 도심 풍경. 17세기 후반까지 사탕수수 재배 지역에 불과했으나 이후 금, 다이아몬드, 철광이 발견되면서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사진 = 김현주

조나 술과 이파네마 해변

도심에는 한때 화려했을 식민지 시대 건축물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어서 리스본 옛 시가지 같기도 하다. 가장 먼저 아르코스 데 라파(Arcos de Lapa)가 눈에 들어온다. 시내로 물을 끌어 들이기 위한 아치형 수도교(水道橋)로서 1750년 건설한 것인데도 온전히 남아 깔끔한 아치를 그리고 있다. 시네란디아(Cinelandia) 메트로역 앞에는 간디 동상이 서 있고, 그 앞 공원은 마하트마 간디 광장(Praca do Mahatma Gandhi)이다. 요하네스버그 시내 중심에도 간디 광장이 있는 것을 보면 남반구에서도 간디는 독립과 해방의 상징인가 보다.

그곳에서 조나 술(Zona Sul, 남부 구역)행 메트로에 오른다. 조나 술은 이파네마(Ipanema), 코파카바나(Copacabana), 플라멩구(Flamengo), 보타포구(Botafogo) 등 이름만 들어도 맘 설레는 해변이 속해 리우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다.

메트로 종점인 이파네마 역에 내려 해변을 찾아 걷는다. 연중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세계적인 휴양지답게 상점과 호텔, 음식점이 즐비하다. 리우의 매력인 3S(Sand, Sun, Sea)가 모두 여기 있다. 보사노바 명곡 ‘이파네마의 여인’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남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몰려오고 서편으로는 레블롱(Leblon) 해변 너머 거대한 바위산이 기묘한 모습을 보이며 서 있다. 이틀 전에는 남대서양 동쪽 해안 남아공 캠프스 베이(Camps Bay)에서, 오늘은 같은 바다 서쪽 해안 브라질 이파네마 해변에서 대서양 바닷물에 발을 적시는 나 혼자만의 세리모니를 거행한다.

거리에서 아무 시내버스나 잡아타고 코파카바나(Copacabana) 해변을 따라 북상한다. 아틀란티카(Atlantica) 대로를 따라 늘어선 상점가 너머 한두 블록 바깥으로는 야자수 너머 코파카바나 해변이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코파카바나 해변과 병행하는 아틀란티카 대로는 태국 파타야 해변 분위기를 풍기지만 범위가 훨씬 넓다. 무엇보다도 인종 백화점이라는 점이 브라질 리우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더해 준다.

빵 지 아쑤까르

버스는 터널을 통과해 시내 중심으로 향한다. 20세기 초 이 터널 건설로 시내에서 조나 술 해변 접근이 쉬워졌다고 한다. 보타포구(Botafogo) 해변을 지나면서 언뜻 언뜻 빵 지 아쑤까르(Pao de Acucar)가 보인다. 높이 396m의 화강암 바위산으로 우리나라 인수봉을 닮았다. 영어로는 슈거로프 산(Sugarloaf Mountain)이라고 불리는 빵 지 아쑤까르는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설탕을 쌓아놓았던 모습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버스는 라고 도 마샤도(Lago do Machado) 메트로역을 지나 코르코바두행 등산 열차(tram) 출발역인 꼬즈메 벨류(Cozme Velho)까지 바로 간다. 시간관념이 불규칙한 라틴 문화답게 출발 시각이 제멋대로인 등산 열차를 한참 기다려 정상으로 향한다.

▲이파네마 해변에 도착했다. 연중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세계적인 휴양지답게 상점과 호텔, 음식점이 즐비하다. 레블롱(Leblon) 해변 너머 거대한 바위산이 기묘한 모습을 보인다. 사진 = 김현주

치외법권 빈민촌 파벨라

아열대숲으로 가득한 티주카 국립공원(Tijuca National Park)을 오르는 사이 오른쪽으로 거대한 파벨라(Favela)가 계속 따라 올라온다. 파벨라는 브라질 대도시에서는 언덕진 곳이라면 어디에든 형성된 빈민촌으로서 마약 거래단이 파벨라 통제권을 접수하면서 일반인 금단 지역처럼 돼버렸다. 심지어 경찰도 진입을 꺼릴 정도라고 한다. 

리우 인구의 15%가 치외법권 지역인 파벨라에 산다고 한다. 브릭스(BRIC’s) 국가로 잘나가는 브라질이지만 브릭스 국가들이 다 그렇듯 빈부격차가 여기서는 더 심각해 보인다. 천혜의 기후 조건에도 불구하고 리우에는 이상하게도 컨버터블(오픈탑)이나 고급 승용차가 드문데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부의 상징인 고급 승용차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조나 술 지역에서도 자동차로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코르코바도 예수상

등산 열차는 출발 20분 후 드디어 해발 710m, 코르코바도(Corcovado) 정상에 도착한다. 코르코바도 정상에는 1931년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완성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상이 있다. 예수상(Cristo Redentor, Christ the Redeemer)은 높이 30m. 좌우로 벌린 두 팔의 길이 28m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상을 온전히 담으려고 누워서 사진을 찍는다.

정상에서 보는 리우의 풍경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리우 중심부와 그 옆 마라카낭(Maracanan) 축구 경기장, 과나바라 베이(Guanabara Bay)의 항구와 긴 다리, 그리고 아까 지나온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 해변의 유려한 곡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짙푸른 대서양에 박힌 섬들과 멀리 대형 선박까지 어우러진 절경을 보며 왜 리우가 세계 3대 미항인지 분명히 깨닫는다. 환상적인 스펙터클을 기억 속 깊은 곳에 담고 하산 길을 재촉한다.

▲코르코바도 정상에는 1931년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완성한 예수 그리스도 상이 있다. 사진 = 김현주

축제의 나라

시네란디아(Cinelandia) 메트로역에서 내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수많은 노천카페들이 밤을 밝힌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혹은 선 채로 파티를 시작한다. 파티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가득하다. 시차 때문에 새벽 3시 반에 깨어났는데 여행기를 정리하는 이 시각까지 파티가 계속되는 듯 호텔 창문 너머로 음악 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열정의 나라 브라질하고도 리우 한복판에 내가 와 있는 것을 확인해 준다.

리우 카니발은 매년 2~3월에 열리니 아직은 시즌이 아니다. 카니발하면 정열의 삼바 춤과 퍼레이드, 무희의 화려한 의상을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삼바 축제는 흑인 노예들의 아픈 역사에서 시작됐다.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사탕수수 생산지로 가꾸기 위해 아프리카 식민지(앙골라, 모잠비크)를 중심으로 노예들을 데려왔다. 그들은 고향에서 즐겼던 노래와 춤으로 노동의 고통을 위안 받고 향수를 달랬으니 그것이 바로 삼바인 것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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