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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커버작가 공모 ② 치달] "돌고도는 세상 패턴 그려요"

복잡 속에서 발견되는 인생사 패턴을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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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8호 김금영 기자⁄ 2016.08.25 16:47:15

▲'화투(花鬪): 꽃들의 전쟁' 작업 옆에서 포즈를 취한 치달 작가.

(CNB저널 = 김금영 기자)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의 경쟁 양상이 치열했다. 각 당 사이 신경전도 불꽃이 튀었고, 네거티브 전략도 난무했다.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웃는 광경이 펼쳐진 곳이 있었다. 치달 작가의 ‘시리얼 프로젝트’를 보러 방문한 각 당의 관계자들은 한바탕 웃고는 시리얼 세트를 사가기도 했다.


당시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의 캐릭터를 담은 시리얼이 도하프로젝트 안에 위치한 작은 폐목욕탕 및 카페에 전시됐다. 시리얼에는 각 후보가 내세운 대표 전략 콘텐츠도 적혔다. 한 예로 안철수의 시리얼에는 ‘진심’이 적혀 눈길을 끌었다. 이 작업은 치달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작업에 대한 영감의 첫 시작은 에어비앤비의 이야기였다. 에어비앤비는 2008년 미국 대선 후보 오바마와 존 매케인을 대상으로 박스를 디자인해 시리얼을 만들어 화제가 됐다.


▲2012년 선보인 '시리얼 프로젝트'. 당시 대선 유력 후보였던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의 캐릭터를 담은 시리얼로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에어비앤비가 유명하지만, 당시는 미국에서 신생 기업으로 유명하지는 않았죠. 에어비앤비는 관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오바마 오스’ ‘캡틴 매케인’ 시리얼을 만들어 팔았고, 밥값이 없을 땐 안 팔린 시리얼을 먹으면서 버텨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저는 이런 버티기 전략이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접목되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어요. 유명하지 않은 신생 작가들은 하루하루를 버티기에 급급하죠. 예술인을 위한 환경이 제대로 조성돼 있지 않은 현실에서 어떻게 잘 버텨야 하는지가 고민이에요. 그래서 미국의 대선이 아닌 한국의 대선으로 이야기를 옮겨 시리얼 프로젝트를 선보였어요. 이번엔 이곳에서 이야기를 같이 해보자고요.”


실제 전시가 이뤄진 곳에서 배가 고플 때에는 시리얼을 먹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그야말로 하루 먹고 하루 버티기로, 일명 ‘만들고 팔고 먹고 작업합니다’가 콘셉트였다. 예술가들의 버티기를 재현한 것. 이 목적 아래 작업 방식은 각 후보들이 주로 했던 행동이나 말에서 비롯된, 각각의 특성을 잡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페이퍼 돌' 작업. 2014년 선거 시기에 이뤄진 이 작업에서는 고승덕, 박원순, 정몽준 후보가 주인공이었다.

이와 또 비슷한 작업이 있다. 2014년에는 페이퍼 돌 작업을 진행했다. 총선 시기에 이뤄진 이 작업에서는 고승덕, 박원순, 정몽준 후보가 주인공이었다. 어릴 적 갖고 놀던 종이 인형에 고승덕, 박원순, 정몽준 후보가 등장했다. 여기에서도 각 후보들만의 대표 특성이 드러났다. 고승덕 후보의 종이 인형에는 “아임 쏘리”라는 문구와 손을 번쩍 든 제스쳐가 등장했고, 평소 백팩 복장으로 눈길을 끈 박원순 후보 작업에는 백팩이 잇아이템으로 등장했다. 타요 버스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정몽준 후보 작업에는 유명했던 밥 퍼주는 사진을 연상케 하는 의상이 등장했다. 이 작업 또한 각 당 관계자들의 호기심을 끌었다고.


정치색? 세상 풍자? 이슈 메이커?
세상 속 다양한 이야기 중 특정 패턴 포착


앞선 시리얼 작업부터 페이퍼 돌 작업까지. 정치색을 드러내려 한 걸까? 세상을 풍자하고 싶었던 걸까? 이슈 메이커가 되고 싶었던 걸까? 작가는 고개를 저었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이야기’다. 즉 세상 속 다양한 이야기, 그리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패턴화해 보여주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는 것.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패턴은 나름의 뜻이 있다.


“저는 항상 세상을 패턴화 시키는 작업에 관심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패턴이라 하면 시각적으로 반복되는 무늬를 흔히들 떠올려요. 그런데 제게 있어 패턴은 세상을 이루는 구조 중 하나예요. 우리의 세계는 언젠가 있었던 과거의 시간에서 다시 퍼 올린 것으로, 계속해서 삶이 반복되고 있어요. 지금 눈앞에 펼쳐진 꽃과 나무, 구름과 비는 수십만 년 전에도 존재했죠. 이처럼 세계와 역사, 자연은 복잡하고 광활한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순하고 간결한 패턴이 있어요. 현재의 삶을 패턴화해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해볼 수도 있죠.”


작가의 눈에는 선거 때 늘 반복되는 경쟁 과열 양상과 거기서 비롯되는 패러디들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세상 속 수많은 패턴 중 하나로 보였다. 그래서 세상의 이야기 중 일부를 작업으로 옮긴 것이다. 풍자가 주요 목적은 아니지만 사회의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 데 주저하진 않는다.



▲2014년 불거진 세월호 참사는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모금 운동을 위해 포스터와 스티커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다.

특히 2014년 불거진 세월호 참사는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슬픈 상황 속에서도 서로 잘잘못을 가리며 분쟁이 일어나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그저 단순하게 모양만 예쁘게 패턴화 시키는 것이 아닌, 함께 공감하며 화합할 수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포스터와 스티커를 만들어서 모금 활동을 벌인 뒤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작가는 혼자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며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많은 세상 이야기를 살펴보려 했고, 그중 민감한 사항이 포함될 때도 있었죠. 그런데 저는 ‘네가 잘못된 거야’ ‘네가 이상해’가 아니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현재 세상엔 혐오 코드가 너무 만연해요. 이 부분에 있어 저는 예술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리얼 작업 때도 그렇게 겉으로는 경쟁 양상이 과열한 것처럼 보여도 작품을 보고는 함께 웃어주는 관계자들이 많았어요. 정치 상황이 예술로 승화돼서 모두가 웃어넘기는 코드가 될 수 있었던 거죠. 이렇게 예술로 세상이 하나로 화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작가는 작업으로 세상에 이야기하는 사람
다음이 궁금해지는 작가


▲'화투(花鬪): 꽃들의 전쟁' 시리즈. (왼쪽부터) 비광, 모란, 창포.

최근에는 ‘화투(花鬪): 꽃들의 전쟁’ 작업에 몰두했다. 자연계와 인간사가 맞물리며 피워낸 패턴에 집중한 작업이다. 여기서 꽃은 자연계, 전쟁은 인간사를 뜻한다. 실제로 작가는 화투를 칠 줄 모른다. 꽃에 대한 전시를 준비하던 찰나에 화려한 화투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고, 48장으로 구성된 화투가 1년 열두 달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을 알았다. 각 달에 피는 꽃과 식물과 더불어 그 달의 대표적인 행사와 전설 등이 어우러진 모습이 인상 깊었단다.


“화투에서 자연계와 인간사의 패턴을 발견했어요. 화투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많아요. 일본에서 유래된 서민 게임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특정 장소에 상관없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반복되는 이야기가 발견돼요. 1월의 송학과 2월의 매화 등 열두 달 각각의 자연 상징은, 세시풍속인 동시에 정치 문화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꽃의 패턴이 전쟁을 벌이죠. 여기서 약육강식 사회의 이면을 봤어요. 열두 달 화려한 꽃들의 패턴에서 아름다움과 동시에 야릇한 피비린내를 느꼈죠. 인생 또한 그러해요.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죠.”


또 최근 관심이 가는 건 ‘도시의 빛’ 이야기다. 도시 속 수많은 간판들이 나열된 패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 화려한 빛 때문에 오히려 별빛이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젠 도시의 네온사인이 달빛과 별빛을 대신하는 모양새다. 그런가 하면 또 많이 보이는 것이 교회의 십자가 불빛이다. 진짜 자연의 빛을 가리고 인공의 가짜 빛이 더욱 앞서는 상황은 진실을 가리고 거짓이 진실처럼 포장되는 세상의 일면도 느끼게 한다. 이 이야기도 앞으로 기회가 되면 풀어내보고 싶단다.


▲'화투(花鬪): 꽃들의 전쟁' 시리즈. (왼쪽부터) 공산, 오동, 송학.

작가가 그간 작업해 온 작업들을 보면 한 작가가 아닌 여러 명이 작업한 것 같이 형태가 다양하다. 처음엔 작가의 '화투' 작업을 먼저 접하고, 그의 작업이 화투 이미지로 가득할 줄 알았는데, 화수분같이 다양한 형태가 쏟아져 나와 놀라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그만의 색깔이 없다고, 통일성이 없어 보인다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다양성이 바로 작가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세상 이야기는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이 다양하다. 그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오히려 획일화된 화면보다는 그때그때의 이야기에 맞게 색다른 변화를 시도해서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다.


“저는 지금은 ‘난 이런 스타일이야’ 식으로 확실히 정의 내리지는 못해요. 하지만 방식이 그럴 뿐, 세상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패턴을 보여준다는 목적은 같아요. 지금은 디지털 드로잉 작업에 주력하고 있지만 이 방식만 고집할 생각도 없고요. 판화 작업에도 관심이 있고, 물건을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그림책 작업에도 흥미가 있고요. 그 가운데 항상 꾸준히 해오는 게 있어요. 한 작업이 끝나고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다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하지?’ 하고 생각해요. 작가는 세상에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니까요. 제 작업을 모두가 좋아하길 바라진 않아요. 다만 더 많은 사람들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만은 확고합니다.”


치달이라는 예명은 미국 쪽에서 내려오는 전래동화 중 치즈로 만들어진 달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애니메이션 ‘월래스와 그로밋’에도 치즈로 구성된 달나라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친근하게 접하고 좋아한다. 치달이 접근하고 싶은 방식 또한 이렇다. 특정 정치색이 묻어나거나 민감하다고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이야기들을 나름의 패턴화를 거쳐 전래동화를 듣듯이 재미있게, 또 공감이 가게 보여주고 싶은 것. 그래서 치달이라 예명을 정했다. 종잡을 수 없어 다음이 궁금해지는 작가. 바로 치달은 그런 작가였다. 추후엔 그녀가 어떤 작업으로 세상의 어떤 이야기를 또 들려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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