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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작가 - 김춘수] "삼라만상 리듬이 화면에 물결칠 때"

더페이지갤러리 ‘몸의 미학’전 속 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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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9호 김금영 기자⁄ 2016.09.02 09:38:17

▲더페이지갤러리에서 개인전 '몸의 미학'을 선보이는 김춘수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전시장에 푸른 빛깔이 펼쳐졌다. 키를 훌쩍 넘어, 아예 큰 벽을 꽉 채우는 화면에 푸른 빛깔이 가득하다. 혹자는 이 빛깔을 보고 바다의 파도를 떠올리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푸르른 하늘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바다로, 하늘로 볼 수도 있죠. 그런데 이 푸른 빛깔에는 다른 이야기도 들어 있답니다.”


포스트 단색화 그룹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김춘수 작가의 개인전 ‘몸의 미학 - 울트라마린(The Aesthetics of Body - Ultramarine)’이 더페이지갤러리 전시 공간에 펼쳐졌다. 수많은 푸른 빛깔 중 진한 보랏빛 청색을 띤 울트라마린을 주된 색상으로 작업을 펼쳐온 김춘수의 2015~16년 근작 ‘울트라-마린’과, 작가가 1990년대 초반 작업한 ‘수상한 혀’ 시리즈를 총망라한 자리다.


▲김춘수, '울트라-마린 1535-1538'. 캔버스에 오일, 333.3 x 248.5cm. 2015.

이번 개인전을 통해 김춘수의 작업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앞서 다른 수많은 전시에서도 그의 작업이 소개된 바 있다. 특히 단색화를 주제로 한 전시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단색조 화면과 반복적이고 수행적인 행위를 동반하는 단색화는 국내를 넘어 세계 미술시장을 휩쓸고 있다. 김춘수는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등 단색화 1세대를 잇는, 포스트 단색화 작가 그룹에 항상 이름을 올리곤 한다.


“단색화 작가로 불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어요. 우리가 세계 미술에 명함을 내밀고 이름을 알린, 아직까지는 최초의 분야이기에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비슷한 경향의 작가들이 묶여서 그룹이 지어지곤 하는데, 근거와 이유도 타당해요. 다만 미술사적으로 보다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단색화 작가라고 해서 모두 작업이 똑같지는 않잖아요? 그 차이를 세밀하게 바라보고 특징을 짚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통해 김춘수 작업의 특징을 같이 살펴보려 한다. 그의 작업에서는 울트라마린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울트라마린 색상은 25년 동안 작가의 분신과도 같이 그의 화면에 항상 존재해 왔다. 작가는 특별히 푸른색을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푸른색으로 나타내려 한 메시지가 있는 것일까. 두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다’이다. 오히려 작가에게 색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거창한 메시지를 목적으로 그린 것도 아니다. 몸으로 화면과 부대끼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 그 자체가 작가에게 가장 중요하다.


다 똑같은 푸른색?
NO! 그 속에 존재하는 각각의 리듬


▲김춘수, '수상한 혀 9431'. 캔버스에 아크릴릭, 53 x 31cm. 1993.

“왜 울트라마린 색상을 사용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처음 이 색을 접했을 때는 어떤 특별한 의미 없이 마음에 확 꽂혔죠. 그래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울트라마린이 평범한 색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죠. ‘울트라’ 자체에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난 ‘극단적인’ ‘과격한’ ‘사이코적인’ 등의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냥 마린색이 아닌 그야말로 극한의 의미를 지닌 색이죠. 그래서 현실을 넘어선 극한의 상황, 또는 이상향을 표현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림을 그릴 때의 태도, 더 나아가서는 그림을 그릴 때 생기는 몸의 리듬, 더 나아가서는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리듬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이해를 돕기 위해 동굴 벽화를 예로 들었다. 과거 물감도 없고 그림을 그리는 붓 등 제대로 된 도구도 없던 시절 그려진 그림은 굉장히 투박하다.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도 않다. 그런데 긴 세월을 지나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동이 있다. 그 감동은 “그림 속에 담긴 역동적인 리듬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작가의 이야기. 즉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사람의 거친 몸짓, 들숨과 날숨 그리고 쿵쾅대는 심장박동으로 조금씩 미묘하게 오르내리는 팔과 손의 동작까지, 그 모든 몸짓에 존재하는 리듬을 같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느낀다는 것.


▲김춘수, '수상한 혀 9353'. 캔버스에 아크릴릭, 53 x 31cm. 1993.

이 리듬은 비단 인간에게만 존재하진 않는다. 사람들이 작가의 푸른 화면을 보고 가장 많이 떠올리는 파도 또한 올랐다 내리는 리듬이 있고, 구름 또한 푸른 하늘에서 넘실대며 리듬을 보여준다. 숲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리듬을 만들기도 한다. 결국 모든 삼라만상에 단순하지만 분명한 리듬이 존재한다. 꼭 울트라마린 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더라도 이 이야기는 똑같이 이어진다. 작가에게 색이 특별히 중요하지 않은 이유다.


“저는 붓이 아닌 손과 온몸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요. 삼라만상 속 존재하는 한 인간으로서 제가 지닌 리듬을 표현하기 위해서죠. 작업이 쉽지는 않아요. 어깨도 아프고, 대형 작업을 할 때는 온몸이 망가지기 일쑤죠. 하지만 이 과정이 제 작업에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과학 기술이 포착할 수 없는 인간의 몸짓
그것이 바로 현대성에 관한 이야기


▲김춘수, '울트라-마린 1533-1534'. 캔버스에 오일, 162 x 112cm. 2015.

리듬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작가로서 지닌 현대미술에 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과학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이젠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까지 등장한 시대다. 첨단 과학을 토대로 현대성이 이야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작가는 이런 때일수록 인간에 집중하는 태도에서 현대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 그래서 인공지능은 도저히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인간의 몸짓과 교감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이 리듬을 느끼려고 화면을 보다보면 작품 사이에 미묘하게 다른 점들을 포착할 수 있다. ‘바다를 그린 것이냐’ ‘하늘을 그린 것이냐’와 비등하게 작가가 또 많이 듣는 말이 ‘김춘수의 작품은 모두 똑같다’이다. 언뜻 보면 그저 푸른색이 가득 찬 화면일 수 있다. 그런데 푸른색으로 꽉 차 보이는 가운데 존재하는 약간의 흰색 여백, 그리고 전시 공간의 연출에 따라 형성되는 리듬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화면 속 이 각각의 차별화된 리듬감을 찾고 느껴보는 게 김춘수 작품 감상의 묘미다.


▲김춘수, '울트라-마린 1641'. 캔버스에 오일, 280 x 400cm. 2016.

김춘수는 그림을 그릴 때  ‘그림이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각 분야에는 꾸준히 답을 찾으려는 질문이 존재해 왔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이 ‘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작가를 두드렸다. 그리고 결국 이 이야기는 작가가 가장 관심을 갖는, 현대성을 찾아가는 인간 이야기와 연결된다.


“철학은 무엇이고, 인문학은 무엇이고, 그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결국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일치해요. 만약 하나의 답을 찾으면, 그 답을 토대로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이 이어지니까요. 결국 모든 것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저는 작가로서 그림을 그리면서 답을 찾아가보려 해요.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요. 인간은 삶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 계속 노력해 왔지만, 아직도 명쾌한 답이 주어지지 않았죠.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입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가죠. 저는 ‘그림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묵묵히 제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싶습니다.”


미술평론가 김용대는 “김춘수의 푸른 캔버스는 단순한 표면, 지지대, 물간 이외의 것은 보이지 않는 모노톤의 푸른색으로만 이뤄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온 시간들이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그림을 통해 세상의 리듬을 포착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는 김춘수의 전시는 더페이지갤러리에서 9월 1일~10월 22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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