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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무거운 ‘건축신문’이 무가지인 이유는?

정림건축문화재단, 건축의 공공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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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9호 윤하나⁄ 2016.09.05 11:25:21

▲건축신문 18호 표지. 간결하고 상쾌한 초록-검정의 2도 인쇄 디자인이 건축신문의 얼굴이다. (디자인 = studio fnt)

‘건축신문’을 아시나요?

 

2012년 4월 창간 이래 '계간 건축신문'은 서울을 포함한 전국 곳곳의 무료 배포처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배포처들은 대개 독립서점, 갤러리, 각종 문화공간 등으로 적극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무가지이기에 맘 편히 집어들어 후루룩 읽어버릴 수 있을 것 같지만, 건축신문이 지닌 담론의 무게를 만만히 보다간 큰코 다친다. 비록 한 계절 동안 한 부를 모두 읽어냈다고 고백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 간직하며 다음 호를 기다리게 만드는 건축신문의 매력을 파헤치기 위해 신문을 발행하는 정림건축문화재단을 찾았다. 

 

▲정림건축문화재단 1층의 도서관 기능을 하는 '라운드어바웃'. (사진 = 김용관)

 

건축신문, 건축과 사회와의 만남

새로운 건축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실험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를 만나 건축신문에 대해 묻자 그는 위아래 펜촉 크기가 다른, 건축신문의 초록색과 같은 색의 마커를 쥔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건축신문은 팸플릿과 저널리즘이 복합된 매체다. 'SPACE(공간)' 잡지의 전직 편집장이었던 그는 자신이 경험한 일련의 건축 저널리즘에서 벗어난,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신문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회와 동떨어진 건축 프로젝트를 소개하기보다 건축과 사회의 만남을 이끌며 그 접점을 넓혀가기 위해" 정림건축문화재단은 2011년 재단 설립 후 5년여간 건축신문 발행 및 여러 활동들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런데, 건축신문에는 건축업계 사람들은 물론 건축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아 손에 쥐지 않곤 베길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숨어있다. 바로 디자인이다. 건축신문의 아이덴티티 초록 색상 코드 2bb673와 검정색이 어우러진 묘한 매력의 2도 인쇄물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건축신문만의 시그니처 디자인이 됐다. 고백하건대 기자가 처음 건축신문을 접하고 남몰래 흠모하며 수집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 디자인 때문이었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이 제작하는 대부분의 출력물 디자인은 디자인 스튜디오 FNT가 맡고 있다. 여름의 녹음처럼 상큼한 이 초록은 정림건축문화재단의 상징색이기도 하다. "건축은 녹색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은연 중에 '써보자. 건축에 대한 다른 생각을 녹색으로 이어보자'고 생각했죠. '뉴 셸터스' 전시의 포스터가 핑크색인 것과 같아요. 난민과 핑크는 안 어울리지만 그래서 그 간극을 바라볼 수 있죠."

 

건축신문이 처음부터 무가지로 발행된 이유에 대해 박성태 상임이사는 "어떻게 정보를 전달할 것인지, 도달의 방식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콘텐츠를 무겁게, 혹은 가볍게 다룰지, 4도 인쇄 혹은 5도 인쇄로 할지 등 방법적인 고민 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무가지의 2도 인쇄 그리고 신문인쇄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정보가 아무리 고급스럽고 가치있어도 넓게 퍼져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고, 즉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배포될 수 있는 무료 신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건축신문은 앉은 자리에서 가볍게 읽어내리기엔 어딘가 버겁다. 무가지 형식을 취하고 소위 문화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배포되고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과연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저희도 (독자가 건축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를 바라진 않아요. 어렵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그래도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미술 작가의 글이나 작품 사진, 전시 비평, 건축가 인터뷰 등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읽을거리가 숨어 있어요. 자기한테 어려운 이야기라면 굳이 읽으려 노력하기보다 먼저 읽히는 것부터 읽어내려갈 수 있겠죠." 어렵다는 일부의 반응에도 그는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다루는 게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건축신문은 무가지니까, 즉 상품이 아니니까, 상품 아닌 글을 실는 매체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설명이다.

 

"처음엔 ‘어떻게 읽으라는 거냐’는 말을 좀 들었어요. ‘어렵다’, '(다) 읽기 힘들다'고 말이죠. 요즘엔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질책보단 칭찬을 많이 받아요." 하지만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애정에서 비롯됐다는 사실도 그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전시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의 포스터. (디자인 = studio fnt)

 

공공선의 컨텐츠 만드는 정보의 매개자

최근에 발행된 건축신문 17, 18호의 주제는 각각 ‘우리 안팎의 난민’과 ‘소수자들의 광장’이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지난달 막을 내린 전시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이하 뉴 셸터스)’의 전시 기획이 바로 떠오르는 주제들이다. 뉴 셸터스는 정림건축문화재단이 기획·주관한 전시다. 한가지 주제를 건축신문과 전시 그리고 출판이나 행사로 이어지게 만드는 작업 방식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슈의 수명을 늘리는 작업"이다. 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룰 뿐 아니라 보다 여러 사람이 다양한 시간에 접할 수 있도록 재단 내부에서 이슈가 순환되게 하는 이유다.

 

“건축은 공공성을 갖고 있어요. 개인 공간을 짓든, 상업 공간을 짓든 건축이 지향하는 건 공공성, 그리고 공공선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슬로건을 외치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이 가진 여러 면모를 드러내는 것. 그게 재단이 하는 일의 큰 줄기죠.”

 

실제로 건축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정림건축문화재단이 하는 일은 광범위하다. 앞서 말한 전시 기획은 물론, 다양한 예술계 프로젝트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포럼 시리즈’, 미취학 어린이, 청소년, 성인, 교사를 대상으로 건축을 통한 창의성과 사회인식 교육 프로그램 ‘건축학교’, 각종 소규모 행사가 열리는 재단의 라이브러리 공간 ‘라운드어바웃’, 1인 공동체 주거를 연구하는 프로젝트 ‘통의동집’ 등이 대표적이다.

 

▲라운드어바웃에서 진행된 프로젝트원. (사진 = 정림건축문화재단)

 

건축학교, 통의동집 그리고...

건축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적인 미술 교육과 달리 공동 작업을 기본으로 한다. 건축학교의 교육 과정에선 건축과 마을이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할 공간이라는 걸 경험으로 배운다.

 

“건축학교에서 6~8명이 한 모둠을 이뤄 공동작업을 해요. 그럼 잘하는 아이, 열심히 하는 아이, 목소리 큰 아이 등 다 있잖아요. 항상 잘 되진 않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어떤 공간 또는 마을을 만들면서 자기 욕심대로 할 수 없고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방법을 경험해요. 자기 생각을 다른 이와 논의하면서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죠. 그랬을 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되면 결국 그 경험이 축적되면서 더 좋은 마을이 만들어지겠죠. 어린이나 어른에게 모두 유효해요.”

 

건축이 재산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터전이란 메시지는 정림건축문화재단과 서울소셜스탠다드가 운영하는 통의동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통의동 골목에 위치한 재단 건물 2, 3층의 셰어하우스로, 도시 속 1인 주거 공동체다. 전체의 절반을 나눠 반은 개인 공간, 또다른 반은 공동 공간으로 사용한다. 이 절반의 공간은 재단 건물의 1층에서도 나타난다. 절반을 사무공간으로 활용하는 한편, 서가를 사이에 두고 나머지 절반을 라운드테이블로 활용하며 논의의 장을 펼쳤다.

 

건축신문의 담론 생성에서부터 통의동집에서의 실천과 실험까지, 정림건축문화재단은 단지 생존 공간으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의 이슈로서 건축을 바라본다. 우연히 어딘가에 배포된 건축신문을 발견한다면, 겁먹지 말고 우선 집어보길 권한다. 여전한 늦더위 속에서 시원한 초록색 신문이 주는 사려 깊은 건축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라운드어바웃의 원탁. (사진 = 이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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