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덜트*를 위한 해커톤*이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동에서 지난달 열렸다. 미술관 속 첨단공방, 무한상상실 아트팹랩은 미술관 속 해커톤 ‘아트팹랩 챌린지 - 키덜트랜드(이하 키덜트랜드)’를 개최했다.
*키덜트: 키드와 어덜트의 합성어로 아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가진 어른이라는 뜻.
*해커톤(hackathon): 해커와 마라톤의 합성어. 주로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 프로젝트 매니저 등 전문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메이킹 워크숍.
키덜트랜드는 예술가와 엔지니어 및 디자이너들의 협업을 도모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문분야가 다른 여러 사람이 팀을 꾸리고 함께 결정한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특별한 과정이다. 이번 키덜트랜드 행사에는 ‘키덜트를 콘셉트로 하는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주제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참여했다. 처음 열린 미술관 속 해커톤 워크숍, 그간의 기록을 살펴보자.
아이디어 기획과 팀 결성 / 8월 20일
공모를 통해 선발된 참여자들이 8월 20일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현장의 모습은 차분한 가운데 설렘이 가득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개인(팀)으로 참여해 팀을 결성하게 된다. 이날 워크숍에 참여한 개인 12명과 프로젝트 6팀은 각자 기획한 아이디어를 발표 후 관심 있는 아이디어나 개인(팀)과 접촉해 아이디어를 조율한다. 최종적으로 함께 할 하나의 아이디어를 정하고 나면, 이후 2주간 아트팹랩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이날 참여자들의 아이디어를 듣고 기술적인 도움을 주는 멘토 4명(양원빈, 이동훈, 이준혁, 황주선)과 외부초청된 전문가집단 MOT도 함께했다.
갓 20살이 된 대학생들부터 미디어 아티스트, 디자이너, 엔지니어까지 각양각색의 참여자들은 이날 키덜트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풍선 같은 옷을 입고 범퍼 카처럼 놀 수 있는 옷을 구상하거나, 레이저를 활용한 림보 게임, 말을 하면 비눗방울 영상이 응답하는 공간 등 주제에 부합하는 감성적이고 유쾌한 아이디어들이 주류를 이뤘다.
이날 종일 발표와 토의를 거쳐 써클활동, 달범 X 써큘러스(Dalbum X Circulus), 스튜디오 XYE X LAIKA, 달걀미술관, 버전.96(Ver.96), 베리형, 더 림보(The Limbo), 뽈록, 어른유치원 총 9팀이 꾸려졌다.
중간점검, 3팀을 만나다 / 8월 31일
결과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이 날, 아트팹랩에는 여러 팀들이 바삐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레이저 프린터와 3D 프린터가 바삐 돌아가고, 전시 공간을 꾸미거나 LED를 전선에 연결하는 참여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써클활동
국민대 금속공예학부 졸업 동기인 이들은 졸업 후 을지로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간단한 기판과 전기부속을 사용해 표정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어린이들에겐 난이도가 조금 높다. 기판 위에 표정을 만들 센서, LED, 배터리 등을 부착하고 결과적으로 작동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피지컬 컴퓨팅을 잘 모르는 성인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장난감 키트다. 현재까지 써클활동이 만든 표정은 화남, 기쁨, 부끄러움, 슬픔 총 4가지.
“이 행사를 통해 50만 원이란 지원금을 이용해 아이디어와 기술을 손보며 교육용 키트로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아트팹랩을 이용한 적이 많다. 원래 기계들은 예약제로 운영되지만 이번 2주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스튜디오 XYE X LAIKA
작년 6월부터 활동하고 있는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 XYE. ‘놀자’라는 콘셉트로 다양한 놀이 자를 만든다. 어른들도 때때로 집을 꾸미거나 작은 물건을 만들 때 쓰는 자를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만들자고 ‘놀자’가 됐다. 여기에 키네틱아트와 퍼포먼스를 하는 김철민 작가(LAIKA)가 합류했다. 서로의 아이디어에 끌려 함께 협업하게 된 이들은 놀자 키덜트 제품과 인간 자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팔을 벌려 길이나 각도를 재는 귀여운 발상을 통해 키덜트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대부분 이런 해커톤 행사에는 개발자, 디자이너, 아티스트들이 고르게 참여한다. 하지만 우리 스튜디오 XYE X LAIKA는 아날로그 디자이너와 아날로그 아티스트의 만남이다. LED 사용은 김철민 작가의 아이디어,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기술을 활용했다. 앞으로 모션과 키덜트 일상 속 이야기를 발견해 시리즈 작업을 계속 할 예정이다. 김철민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아티스트적 영감을 받아 시너지 효과를 경험했다. 퍼포먼스를 통해 신선한 프레젠테이션도 생각해보게 됐다.”
달걀미술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기존 전시공간의 높은 문턱을 깨달은 달걀미술관 팀. 새로운 전시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출발해 대안적 전시 공간 플랫폼을 기획했다. 달걀미술관의 첫 형태는 웹아트로, 인터넷에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이었다. 두 번째는 미니어처 달걀모양의 미술관이었고, 세 번째 이번에는 ‘키덜트’라는 주제를 접목했다. “모든 어른은 키덜트”라는 생각과 달걀 형태의 전시 공간을 결합한 것. 어린 시절 각종 장난감을 뽑던 캡슐 자판기 몸통에 달걀모양 머리가 올라왔다. 캡슐 안에는 각기 다른 작가의 작품이 들어 있는데, 이번엔 김선우, 정상수 작가의 작품이 캡슐 안에 전시된다. 달걀미술관 통 속 2인전을 기획했다. 전시 주제는 ‘은하수 속 히치하이킹’.
결과발표! 최우수, 우수상은 누구? / 9월 3일
2주간의 워크숍을 거쳐 9월 3일 대망의 결과가 발표됐다. 완성품과 발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우수상에는 달걀미술관이, 우수상에는 스튜디오 XYE가 선정됐다. 선정된 팀에겐 각각 200만 원, 1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됐다.
최우수상을 받은 달걀미술관은 “창의성이 높고 새로운 미술관이란 개념의 제시가 독특하고 재미있다"고 평가받은 한편, "다큐멘터리 같은 요소를 넣어 이슈를 만들어 실제화시킬 노력이 필요하다. 완성도도 더 높여야 한다"는 개선점을 남겼다. 우수상을 받은 스튜디오 XYE는 “아티스트와 협업이 가장 잘 됐고, 행사 주제를 가장 잘 나타낸 팀이다. 다만 제품 디자인적인 성격을 많이 벗어나지 못했고, 기술적 요소가 빈약하다"는 심사평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