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전 소유자의 연체 관리비 안 낸다고 단전?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주상복합건물이나 상가와 관련된 분쟁에 대한 상담을 종종 받습니다. 상가 입주민과 상가관리단의 관리비 분쟁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새로 상가를 매수해서 입주했는데, 전 소유자가 연체한 관리비를 새로운 소유자에게 부과하고, 이 관리비를 납부하지 않으면 전기를 끊거나 수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게 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상가 소유자와 관리사무소, 입주자 대표회의 간에 큰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소유자끼리 얼굴을 붉히는 일도 종종 벌어집니다.
집합건물과 관리비
이런 문제들은 일단 한 건물을 한 사람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소유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일종의 공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용 비용과 개인 비용이 관리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나라의 제도는 한 동의 건물 중 구조상 구분된 여러 개의 부분이 각각 독립한 건물로서 사용될 수 있을 때에는 그 각 부분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건물 형태를 집합건물이라고 하는데, 아파트, 오피스텔, 주상복합건물, 상가건물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는 대부분의 건물이 이 집합건물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 집합건물과 관련된 내용은 기본적으로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집합건물법)에 의해 규정됩니다.
이 집합건물에 속하는 각 상가, 아파트 등의 개별 소유자를 구분소유자라고 합니다. 집합건물은 기본적으로 전유부분(專有部分)과 공용부분(共用部分), 건물의 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유부분은 개인이 직접 사용하고 소유하는 부분이고 공용부분은 전유부분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라고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그래서 소유자는 내가 직접 사용한 부분에 대한 관리비와, 모두가 공동으로 사용한 부분에 대한 관리비를 함께 부담합니다.
공동생활을 하려면 누군가는 건물을 관리하고 관리비를 소유자에게 부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일을 누가 할 것인지가 애매합니다. 그래서 우리 법에는 “건물에 대해서 구분 소유 관계가 성립되면 구분소유자 전원을 구성원으로 해서 건물과 그 대지 및 부속시설의 관리에 관한 사업의 시행을 목적으로 하는 관리단이 설립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집합건물법 제23조). 즉 모든 소유자가 ‘관리단’의 구성원이 되어 공동으로 건물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물이 대형화되면 소유자 전원이 건물을 관리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우리 집합건물법에는 관리인을 선임하거나 관리위원회에서 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개 입주자 대표회의, OO상가 관리단, OO건물 관리위원회 등 다양한 명칭으로 관리주체가 구성됩니다.
미납된 공용부분 관리비는 내는 것이 합리적
A 사장님은 부동산 경매에서 K 주상복합 아파트의 3층에 위치한 상가 301호를 낙찰받아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A 사장님은 새로 ‘샤브샤브’ 가게를 열기 위해 인테리어를 하고, 광고를 하는 등 개업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그런데 K 주상복합 아파트 관리사무소 명의로 “전 소유자가 연체한 1년 치의 관리비와 연체료를 납부하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A 사장님은 관리사무소에 가서 따졌습니다. A 사장님은 ‘경매로 구입한 상가’에서 왜 전 소유자의 관리비를 새로운 소유자가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관리사무소는 “상가 관리 규약에 새로운 소유자가 전 소유자가 연체한 관리비를 부담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며 A 사장님이 연체 관리비를 납부하지 않으면 전기를 끊어 영업을 못하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집합건물법 제18조에서는 “공유자가 공용부분에 관해 다른 공유자에 대해서 가지는 채권은 그 특별 승계인에 대해서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전 소유자가 연체한 공용부분에 대한 관리비를 새로운 소유자가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집합건물의 공용부분은 전체 공유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공동으로 유지·관리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소유자가 전 소유자에게서 미납된 공용부분 관리비를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관리 규약에 “새로운 소유자가 체납관리비 전부를 부담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 대법원은 “관리규약으로 전 입주자의 체납 관리비를 양수인에게 승계시키도록 하는 것은 … 입주자들의 자치규범인 관리 규약 제정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고 … 특별 승계인이 그 관리 규약을 명시적, 묵시적으로 승인하지 않는 이상 그 효력이 없다”며 관리 규약이 어떻게 정하든 관계없이 체납 관리비 중 전유부분에 대한 것은 새로운 소유자가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습니다(대법원 2001.09.20. 선고 2001다8677 전원 합의체 판결).
▲건물이 대형화되면 관리인, 입주자 대표회의 등 따로 다양한 관리 주체가 구성되어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럼 구체적으로 전유부분의 관리비와 공용부분의 관리비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요? 우리 대법원은 “공용부분 관리비에는 집합건물의 공용부분 그 자체의 직접적인 유지·관리를 위해 지출되는 비용뿐 아니라, 전유부분을 포함한 집합건물 전체의 유지·관리를 위해 지출되는 비용 가운데에도 입주자 전체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집합건물을 통일적으로 유지·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어 이를 일률적으로 지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의 비용이 있으니, 그것이 입주자 각자의 개별적인 이익을 위해 현실적·구체적으로 귀속되는 부분에 사용되는 비용으로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두 이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전유부분의 관리비인지 공용부분의 관리비인지 애매한 것들은 공용부분의 관리비라고 판단해도 무방합니다.
단전·단수 조치 적법하다고 증명하기 쉽지 않아
예를 들어 관리비 중 일반관리비, 장부기장료, 위탁수수료, 화재보험료, 청소비, 수선유지비 등은 공용부분의 관리비이고(대법원 2006.6.29. 선고 2004다3598,3604 판결), 중앙 집중식 난방방식에 의한 세대별 난방비, 일괄계약에 의한 유선방송료는 전용부분 관리비입니다(의정부지방법원 2007.07.25. 선고 2006가단74938 판결). 그런데 새로운 소유자가 부담해야 하는 공용부분의 관리비에 연체료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연체료는 전 소유자가 관리비를 연체했기 때문에 받는 일종의 ‘페널티’이므로 새로운 소유자가 이를 대신 내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상가 관리사무소에서 연체 관리비 미납으로 단수나 단전 조치를 한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전 소유자의 전유부분 관리비 미납을 이유로 단수나 단전 조치를 한 경우에는 관리사무소의 불법행위가 되어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나아가 업무방해죄 등 형사책임을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 소유자의 공용부분 관리비 미납을 이유로 단수·단전 조치를 한 경우는 정황에 따라 달리 판단됩니다. 우리 대법원은 “그 조치가 관리 규약을 따른 것이었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와 같은 조치를 하게 된 동기와 목적, 수단과 방법, 조치에 이르게 된 경위, 그로 인해 입주자가 입게 된 피해의 정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서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어 위법성이 결여된 행위로 볼 수 있는 경우”라고 ‘위법하지 않다’라는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와 관련된 자문이 오는 경우에는, 일단 단전·단수 조치는 하지 말라는 답을 주고 있습니다. 단전·단수 조치가 적법하다는 점은 사실상 관리주체가 증명해야 하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아파트, 오피스텔, 주상복합건물 등에 새로 입주한 소유자는 전 소유자가 연체한 관리비 중 공용부분에 대한 것은 부담해야 합니다. 다만, 전 소유자가 납부하지 않은 관리비의 연체료는 공용부분·전유부분 모두 납부할 의무가 없습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