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최근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의 이혼 소송 소식이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브란젤리나 부부로 불리며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해 온 이들의 이혼 사유가 무엇인지 관심이 쏠린 가운데,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선 문제가 있었다. 브란젤리나 부부는 직접 낳은 자식을 비롯해 입양한 자식들까지 대가족을 꾸리며 남다른 아이들 사랑을 보여 왔다. 그런데 브래드 피트가 아들 매덕스를 폭행했다는 혐의가 제기된 것. 현지에서는 매덕스에 대한 폭행 흔적이 없다는 점과 주위 관계자의 증언에 따라 폭행혐의 조사를 중단했다. 하지만 그 전까지 브래드 피트에게는 전 세계로부터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만큼 중대 사안이었다.
아동학대는 현 시대에 대표적으로 대두되는 문제들 중 하나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는 “맞으면서 큰다”는 게 육아의 대표 논리였지만, 아이들의 인권이 중요시되는 요즘은 신고 대상이다.
씁쓸한 사실은 보건복지부 통계에서 드러난다. 아동학대의 약 82%가 남도 아닌, 가장 가까운 친부모에 의해 발생된다는 것. 구타뿐 아니라 성적학대와 정서학대까지 그 양상도 다양하다.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초등학생 여자아이는 과거엔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였지만, 이젠 그 소식이 심심치 않게 뉴스에 들려온다는 게 더욱 섬뜩해진 현실을 느끼게 한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자란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된 다음에도 이를 똑같이 되풀이하거나 분노 조절 장애, 또는 인격 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학대를 당하던 아이가 부모를 죽인 사건도 여러 차례 보도됐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보호 심리로 또 다른 인격의 자신을 만들어 그곳으로 도피하며 다중인격이 돼, 학대의 기억 자체를 잊어버리는 사례도 많다. 이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도 등장했다.
김수로 프로듀서는 김수로 프로젝트 3탄으로 ‘블랙메리포핀스’를 선보인 바 있다.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올려진 이 작품은 올해 10월 14일 대학로 TOM 1관에서 또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그라첸 박사의 대저택 화재 사건에 얽힌 네 남매의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살인 사건을 다룬다.
첫 시작은 미스터리 추리극 같지만 네 남매가 잊어버린 기억 속 학대의 흔적이 나오는 순간 관객은 냉혹한 현실에 점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학대당하는 아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버티지만, 그것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고통에서 도망치지 않고 맞서며 극복하려는 의지를 극은 전해준다.
‘블랙메리포핀스’와 ‘인터뷰’의 연결고리
올해 5월 첫선을 보인 뮤지컬 ‘인터뷰’는 ‘블랙메리포핀스’의 닮은꼴 작품으로 거론된다. 뉴욕 브로드웨이, 도쿄 진출이 확정된 이 작품은 본격 해외 진출 이전 수현재씨어터에서 11월 27일까지 국내 관객들을 만난다. 추정화가 작·연출, 허수현이 작곡, 김병진이 안무를 맡았으며, 배우 이건명, 민영기, 이선근, 임병근, 김수용, 김경수, 조상웅, 이용규, 고은성, 문진아, 한서윤, 김주연, 전예지가 무대에 오른다.
일단 크게 보면 두 작품 모두 창작뮤지컬이고, 국내에 이어 일본 진출을 확정했다. 그리고 추리극 형태를 가진다. ‘블랙메리포핀스’처럼 이 작품에도 살인사건이 있고, 이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뭔가 비밀을 감춘 것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베스트셀러 ‘인형의 죽음’을 쓴 추리소설 작가 유진킴에게 어느 날 추리소설 작가 지망생이라며 싱클레어가 찾아온다. 유진킴의 ‘인형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싱클레어는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안의 이야기를 꺼낸다. 조안은 의문의 사고로 죽은 18세 소녀로, 싱클레어는 ‘인형의 죽음’이 조안의 죽음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 아니냐며 점점 돌변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온순하고 마냥 밝아 보였던 싱클레어에게서 조금씩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하는 건 유진킴이 내민 과제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보조 작가를 뽑으려는 유진킴은 전날 밤 자살을 기도한 연쇄살인범이 쓴 유서를 내밀며, 이를 바탕으로 싱클레어에게 글을 만들어보라고 한다. 유서를 읽은 싱클레어는 사랑이 고팠던 어린 아이의 이야기를 꺼낸다.
아이는 늘 어머니의 사랑을 원했지만, 어머니는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외로웠던 소년은 친구를 사귄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속삭인다. “엄마 따위 필요없어.” 그리고 그날 밤 소년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행복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순간 칼을 꺼내 어머니의 가슴에 내리꽂는다. 그리고 애타게 친구를 찾지만 처음부터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아이 안에 자리한 괴물, 즉 또 다른 자신이었다는 이야기.
이야기를 끝낸 싱클레어는 “식상하죠?”라며 웃으며 넘기지만, 이 이야기는 극 전체를 관통하는 일종의 잔혹 동화다. 그리고 싱클레어가 조안과 연관이 있었던 사이고, 어렸을 때 끊임없이 학대를 당해왔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이 잔혹 동화에는 더욱 빨간 핏물이 퍼지고, 동화가 아닌 현실로 점점 다가온다.
잔혹 동화가 현실로 다가올 때 갖는 파급력
‘블랙메리포핀스’에 이어 ‘인터뷰’도 김수로 프로듀서가 제작했다. 김 프로듀서는 “올해 초 언더스테이지에서 좋은 작품을 올릴 수 있는 큐레이터 역할을 맡았을 때 추정화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때 이 작품을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회적 공통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는 바로 아동학대다. 김 프로듀서는 “최근 런던에서도 아동학대가 크게 문제된 적이 있다.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대두되고 고민되는 문제다. 하지만 피부로 와 닿기는 쉽지 않다”며 “뉴스로 아동학대 소식을 보면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또 금방 잊히기도 한다. 이 불편하지만 외면하거나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들을 무대에 올려 ‘앞으로 그러면 안 되겠다’는 인식을 형성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 프로듀서는 ‘인터뷰’를 일본에 도쿄 무대에 올리고, 웨스트엔드에도 올리기 위해 꾸준히 접촉 중이다. 그는 “그간 많은 작품을 올렸는데, 유독 ‘인터뷰’는 외국 쪽에서 콜이 많이 들어온다. 그만큼 이 이야기를 전 세계가 공감하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같은 프로듀서가 올린 작품이라 그런지 ‘인터뷰’는 ‘블랙메리포핀스’와 닮았다. ‘블랙메리포핀스’의 성공으로 이미 안정성을 보장받은 비슷한 소재에, 관객들이 선호하는 추리를 가미한 비슷한 구성까지, 식상함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그 부분은 아쉽다.
하지만 극이 전반적으로 담고 있는 아동학대 이야기는 관객들이 다시금 되새기며 마음에 새겨야 할 부분이다. 실제 일어난 아동 성폭력을 소재로 재구성된 영화 '도가니'는 사회복지사업 관련 '도가니법'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예술문화가 가진 힘이다. 불편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오히려 피하지 않고 그 문제를 똑바로 두 눈에 새기는 자리를 ‘인터뷰’는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