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색의 오브제가 하늘색 벽의 전시장에 부유하듯 놓여있다. 일부는 벽에, 또 다른 일부는 반사광이 심한 바닥 위에 자리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렇게 매끈하게 디자인된 오브제들은 자세히 볼수록 그 의미와 용도를 짐작하기가 힘들다. 흡사 우주인의 놀이터, 또는 흩어진 프라모델의 부속들처럼 보이는 이 전시의 정체는 무엇일까?
잭슨홍의 개인전 ‘오토파일럿(Autopilot)'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렸다. 한국 현대미술을 견인하는 40대 작가들의 연속 기획전인 ’페리지 아티스트‘의 10번째 전시다.
전시 제목이자 전체 설치작품의 이름이기도 한 ‘오토파일럿’은 선박, 항공기, 로켓 등의 자동조종(자율주행) 장치를 말한다. 인간의 이동 편의성을 위해 개발된 스마트 기술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감정 없이 고정된 값에 의해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스마트하지 않은 기술이기도 하다. 잭슨홍은 이 무신경하고 공허한 시스템을 바라보며 틀에 박힌 시스템 속에서 작동된 움직임의 허무함과 무의미함에 주목했다.
작가의 초기작은 디자인적인 기능과 문법을 순수미술에 접목하며 서로의 경계를 자연스레 모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작년 '시청각'에서의 전시부터 기존의 디자인적 접근법에서 변화를 꾀한 그는 이번 전시의 의도에 관해 “어떤 의도나 의미도 부여하지 않은 것이 의도”라고 말했다.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기보다 3차원 공간에 자연스럽게 덩어리를 그려 넣듯 작업했다”는 설명이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설치 드로잉처럼 작업한 듯, 맥락을 부여받지 않은 부품들의 정밀한 배치로 이뤄졌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본체로 조립되기 이전의 모습인지 아니면 본체에서 분리된 이후의 상태인지, 또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인지조차 가늠하기 쉽지 않다. 다만 작품의 크기나 작품의 디테일, 배치에 디자인적 관습이나, 작가가 지녀온 관습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노력했음이 드러난다.
그는 이 같은 디스플레이에 대해 “이케아 같은 가구점의 디스플레이처럼 보이는 한편, 정신병자가 만든 물건처럼 하나도 작동하지 않는 사물로 봐도 무방하다”며, 각 오브제들을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는 ‘게으른 부품’들”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가 마치 관습처럼 자동으로 작동하는 자율주행의 게으름과 그에 대항하는 파괴적인 일탈로도 보이는 대목이다.
“(이번 전시는) 마치 여객기 사고가 났을 때 파편이 튀는 것처럼, 그런 파편이 튄 모습처럼 볼 수 있어요. 공장의 어셈블리 라인에서 발견되는 부품 조각들로 보일 수도 있고요.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보여지길 바랍니다."
이번 전시는 특정한 서사나 구조를 드러내기보다 그가 현재를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를 반영한다. 그는 극도로 발전한 자율주행이란 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게으르고 공허한 관습으로 이끌 수 있음을 암시하며 전시를 통해 완결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상황들을 제시한다. 대상을 특정한 관점의 틀에 고정시키지 않고 다소 모호하나마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자신의 태도와 행동 방식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대해 그는 “전시 자체가 완결된 형태로서 존재하기보다 향후 변화된 모습과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조합될 것”이라고 설명해 앞으로의 작업에 기대감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