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에게는 이것이 최대의 고민이었다. 이 작품이 쓰인 1600년대엔 엄연한 계급 사회가 존재했고, 이에 따라 배가 고파 굶어죽는 사람도 있었다.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과, 어머니가 숙적과 결혼하는 상황 등 급격하게 마음이 무너지는 상황을 맞았지만, 이 바탕에 깔려 있는 시대적 상황을 바라보자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정말 일차원적으로 다가가는 여지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 기술이 빠른 발전을 이루면서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먹고 살 궁리를 넘어서, 삶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됐다. 몸은 건강한데,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토론 프로그램도 많이 생겼고, 인터넷의 댓글 창은 일분일초마다 의견이 쏟아지는 대중 토론의 장이 됐다. 너무 생각이 많아서 정신병을 호소하는 시대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가장 많이 들린다.
창작극 ‘함익’엔 현대판 햄릿이 등장한다. 이름도 비슷하다. 함익. 그런데 여성이다. 남성적인 복수극으로 알려진 햄릿 뒤에 숨어 있는 섬세한 여성성에 주목해보겠다는 의도다. 함익은 2016년 서울에 산다. 재벌 2세이자 대학교수로, 다른 재벌가의 자식과 결혼을 앞뒀다. 먹고 살 궁리나 굶어 죽을 걱정은 애초에 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늘 그의 표정은 굳어 있다. 그리고 내면이 자아분열하면서 생긴 자신의 분신과 대화하며 고통스러워한다. 늘 생각이 넘친다. 생각하는 걸 잊으려고 약을 먹기도 한다.
함익이 처한 상황은 고전 속 햄릿과 비슷하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내연녀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다. 이것은 망상일 수도, 사실일 수도 있다. 함익은 그래서 늘 고독하고, 복수심에 불타오르며 내면이 썩어 들어간다. 그리고 괴로울수록 연극 ‘햄릿’에 집착한다. ‘햄릿’을 공연하겠다는 학생들에게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하냐”며 독설을 퍼붓는다.
그러던 도중 자신의 수업에 열정을 보이는 학생 연우를 만나면서 함익의 얼굴에 조금씩 표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연우는 ‘햄릿’을 자신의 생각대로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하는데, 특히 “죽느냐, 사느냐는 문제도 아니다”라는 한 마디가 함익의 가슴을 관통한다. 연우가 내놓은 해석은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즉,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사는 것인가”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 함익은 남부럽지 않은 배경 속 모두가 우러러보이는 자리에 있지만, 정작 자신의 의지나 마음은 없이 몸만 움직이는 기계처럼 서 있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함익은 극 초반엔 햄릿에 자신의 상황을 투여하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런데 연우를 만나고, 그가 바꿔가는 햄릿의 새로운 해석에 흥미를 보이고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이 시점부터 함익은 자신이 햄릿이길 거부하고, 줄리엣을 꿈꾸는 변화를 보인다. 누구보다 햄릿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그였지만, 실상은 가장 햄릿에게서 벗어나고 싶기도 한 숨겨져 있던 욕구가 폭발하는 것.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사는 것인가”
연우 앞에서는 무뚝뚝한 표정을 이어가지만, 혼자 있을 때 자신의 분신과 이야기하면서는 들뜬 모습을 보인다. 재벌 2세와 평범한 대학생의 만남.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런데 함익은 이 상황에 오히려 살아 있다고 느낀다. 복수를 위해 감정을 버려야 했던 햄릿에서, 사랑을 위해 온 마음을 바쳤던 줄리엣이 돼 간다.
그런데 이건 꼭 연우와 함익이 남자와 여자라서 생긴 상황이 아니다. 함익은 늘 관계에 목말라 했다. 물론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진심 없는 사람들. 아버지는 자신이 다른 재벌가와의 결혼으로 얼른 치워버리고 싶은 눈엣가시이고, 학생들은 정신 나간 교수라고 손가락질한다. “사랑한다”며 다가온 약혼자는 자신의 재산을 노린다. 이 가운데 오로지 순수하게 연우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햄릿’을 현 시대에서 막장드라마라고 해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독자적인 해석을 내놓으며 햄릿의 새로운 심리를 찾아가는 연우에게서 남다른 동질감을 느낀다. 구원자와도 마찬가지였을 터.
하지만 이 관계가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함익은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연우와 친한 것 같은 여자 아이의 역할을 교체해 버리고, 대본 변경도 자기 마음대로다. 그 와중 연우에게 “너만 잘하면 된다”며 붙잡는다. 자신이 재벌가라는 울타리 속에서 받았던 강압을 학생들에게 똑같이 가한다. 관계를 잘 맺을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는 함익의 모습은 애처롭다.
무미건조한, 죽어 있었던 함익의 삶은 한동안 살아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또 다시 죽어간다. 이는 몸만 움직이고 정신은 병들어 ‘좀비’라고 일컬어지는 현대인의 가슴에도 와 닿는다. ‘함익’엔 담긴 이야기가 많다. 고전 ‘햄릿’을 바탕으로 김광보 예술감독이 이끄는 서울시극단의 현대적 재해석을 거쳤다. 여기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요소까지 들어가 관객들은 보는 내내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관계에 목마른 현대인, 정신이 황폐한 현대인, 그리고 현 시대에서 진정한 삶과 죽음은 어떤 것인지 등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적어도 “또 햄릿이야?” 하는 식의 지루함과 식상함은 피해간다.
극의 끝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명확한 결론을 내려주진 않는다. “당신은 진짜 살아 있는가, 어떻게 살아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은 접어두고, 이제 진짜 당신의 삶을 위한 생각을 해보라고 권한다.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0월 1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