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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전시] 이제는 창고-사무실-옥상도 전시공간

김웅현 ‘20세기 엑스포 소년’ - 노상호 '더 그레이트 챕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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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4호 윤하나⁄ 2016.10.07 17:04:23

▲웨스트웨어하우스에서 열린 '헬보바인 포니'에 전시된 유니콘 작업. 김웅현 작가는 이 유니콘 안에 팔을 넣고 리틀 포니를 끄집어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사진 = 김웅현 작가)

 

지난 몇 년간 미술계의 괄목할만한 움직임으로 신생공간을 꼽을 수 있다. 신생공간은 젊은 작가들이 주도적으로 설립하고 운영하는 전시 공간을 말한다. 미술관, 갤러리 등 기존의 공간에서 전시할 기회가 많지 않던 청년세대 작가들이 주도적으로 마련한 대안으로, 지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불과 3년이 지난 현재, 그 많던 신생공간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줄어든 문화 지원금을 비롯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신생공간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전시 기금을 지원받은 작가조차 전시 공간을 찾기 어려워진 상황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 달간 을지로, 불광동 일대에서 기획이 돋보이는 전시가 잇따라 열렸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한시적인 전시 공간에서 짧은 기간 전시하며, SNS를 창구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홍보한다. 신생공간의 맥락을 유지하되, 서울의 다양한 장소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해 독특한 기획을 선보인 두 작가의 개인전을 소개한다. 작가 김웅현, 노상호의 개인전은 모두 김동희, 권순우가 운영하는 한시적 전시 공간에서 열렸다.

 

▲같은 시기에 진행된 세 전시의 포스터. 김웅현 작가는 일련의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단절'을 말한다. (디자인 = 살몬)


##유니콘 #대전 엑스포 #금 모으기 운동

김웅현 ‘20세기 엑스포 소년

@ 아시바 비전, 을지로3302-1 3

 

지난해 열린 젊은 미술인들 주도의 아트페어 굿-2015’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김웅현 작가의 소 해체 작업을 기억할 것이다. 이때 김웅현은 실리콘과 우모(牛毛카펫으로 직접 만든 소를 즉석에서 해체하고 살점을 1만 원에 파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1998년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독자적인 이야기 속 소는 게임 디아블로 2’에 등장하는 괴물 소 캐릭터 헬보바인과 유사하다. 그는 자기 세대가 향유하는 인터넷 이미지와 역사적 사건에서 유사한 연결고리를 찾아 미스터리한 서사를 이끌어낸다.

 

김웅현은 최근 전시 3개를 잇달아 다른 공간에서 열었다. 마치 게릴라처럼 진행된 일련의 전시들은 각각 북한 유니콘 서식지해프닝(2012)과 대전 엑스포(1993) 그리고 금 모으기 운동(1997)이란 사건을 주제로 한다. 그중 첫 전시 헬보바인과 포니가 과거 창고로 쓰였던 불광동의 웨스트웨어하우스에서 열렸다. 2012년 북한이 동명왕의 기린굴 위치를 확인했다는 발표가 영국 언론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일각수 기린마가 유니콘으로, 기린굴이 유니콘 서식지로 번역됐고, 이렇게 와전된 소식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이 웃지 못할 해프닝에서 영감을 받았다. 결국 북한의 허풍으로 치부되며 조롱거리로 전락한 이 사건을 그는 인터넷의 브로니(brony)*' 문화와 연결지어 작업했다. 생경한 장소에서 열린 이 전시는 SNS를 통한 홍보로 단 5일 간의 전시 기간 동안 600여 관람객이 방문했다.

 

*브로니(brony) : 어린이 애니메이션 마이리틀포니를 광적으로 소비하는 마니아를 일컫는다. 인터넷에서는 북한의 유니콘 해프닝에 뒤이어 김정은을 유니콘 그림에 합성하거나, 그를 브로니 문화에 대입하는 등의 놀이가 성행했었다.


▲전시 공간 아시바 비전의 모습. 마치 병원-연구소-사무실처럼 보이는 공간이 작가의 서사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진 = 김웅현 작가)

 

두 번째 전시 ‘20세기 엑스포 소년시바 비전이란 콘택트렌즈 회사가 떠난 사무실을 그대로 활용한다. 전시공간의 이름은 사무실 내에 남은 시바 비전의 흔적들 앞에 ‘A’를 붙여 만든 아시바 비전이다. 전시는 일본 만화 ‘20세기 소년과 대전 엑스포의 연관성을 작가가 인터넷으로 모집한 불특정 연구원들과 함께 탐구한 결과를 주제로 한다.

 

지난 925일 하루만 진행된 행사이자 마지막 전시였던 쇼미더미니는 을지로의 바 신도시옥상에서 열렸다. 작가는 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의 금 모으기 운동과 관련해, 영타를 빠르게 입력해 금을 모을 수 있는 웹 게임을 만들었다. 영어로 ‘Show me the money'를 빨리 입력해 금을 모아 나라를 살리는 게임이지만, 이날 우승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전 엑스포의 마스코트 꿈돌이가 아시바 비전 한 쪽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사진 = 김웅현 작가)

 

작가는 인터넷과 뉴스를 통해 발견한 이미지와 상징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만든다. 그가 엮어내는 미스터리한 서사와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특징적인 장소와 만나 신박한’(인터넷에서 쓰이는 '신기한, 독특한' 뜻의 표현) 경험을 이끌어낸다. 현재까지 진행 중인 전시 ‘20세기 엑스포 소년은 아시바 비전에서 109일까지 열린다.


▲노상호, '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 하는 마을이 있었다'. 2014. (사진 = 김익현)


매일 그린 1000여 그림이 창고형 매장에?

노상호 더 그레이트 챕북

@ 웨스트웨어하우스, 서울시 은평구 통일로 684(서울혁신파크 내 5)

 

매일 한 장의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 한 편을 짓는 작가, 노상호. 밴드 혁오의 앨범 표지를 그린 작가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그림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만드는 이야기는 주변 친구들의 경험담이나 자신의 이야기, 혹은 인터넷에서 접한 사연들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의 그림은 수많은 인터넷 짤방이미지 속에서 도상을 선택하고, 그 위에 먹지로 트레이싱한 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장면을 그리면서 완성된다. 그림과 이야기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더라도 같은 날 만들어져, 서로를 보완하고 설명해주는 한 쌍이 된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나날이 쉬지 않고 만들어 낸 그림과 이야기를 원본 삼아 여러 매체로 옮겨 다양한 에디션을 만들었다. 이제까지 축적한 1000여 장의 그림들을 옷걸이에 걸어 특수 제작된 레일 가구에 가득 걸어 전시하는가 하면, 원본 이미지를 스캔해 포스터나 대형 현수막으로 제작하거나, 수채나 아크릴로 매체를 달리해 그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제대로 선보인 적 없던, 작품과 한 쌍인 이야기를 함께 전달하기 위한 웹 사이트thegreatchapbook.com을 열었다. 홈페이지는 셀 수 없이 많은 그림 조각들로 가득한데, 각 이미지를 누르면 해당 그림과 짝지어진 이야기가 떠오른다. 마치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동화처럼 자유로운 클릭으로 작가의 매 하루의 작업들을 넘나들 수 있다.


▲노상호 작가의 그림이 옷걸이에 걸려 전시 중이다. (사진 = 임승택)

 

혹자는 옷걸이 1000여 개에 걸린 압도적인 양의 그림 디스플레이로 그의 전시가 마치 대형 아울렛 매장 같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이는 그동안 단편적인 방식으로 소비되던 노상호 작가의 작품을 메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려 한 의도가 성공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외떨어진 창고라는 장소성과, 매장 디스플레이를 차용해 그림을 설치하고 웹사이트를 통해 어디서든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등 전시장 안팎의 기획이 눈에 띈다. 전시는 1015일까지.

▲노상호 작가의 '더 그레이트 챕북'전 포스터. (디자인 = 물질과 비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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