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가을. 참 묘한 계절이다. 햇살은 그 어떤 계절보다 강렬하고 따사롭다. 따뜻한 가을 햇살 아래 벼들은 노랗게 빛을 발하고, 새파란 하늘은 청량감을 선사한다. 울긋불긋 단풍은 여기에 화려함까지 더한다. 하지만 ‘가을 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모든 생명이 찬란한 빛을 발하고 저물어가는 가을은 쓸쓸함도 선사한다. 따뜻함과 쓸쓸함, 그 상반이 공존하는 묘한 계절이다.
이 묘한 느낌이 김두례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졌다. 한국의 전통 오방색인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으로 표현된 화면은 힘이 넘치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가운데 슬픔과 애잔함, 쓸쓸함이 함께 있다.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돌아보는 느낌이다.
김두례 작가가 삶을 살아가면서 느낀 다양한 감정들을 담은 신작들로 돌아왔다. 과거 누드와 인물을 그리다 약 20년 동안 화면에서 인물을 지워 버렸던 작가는 지난해 후반부터 인물을 다시 화면에 들여놓기 시작했다. 이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전시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거나, 서재에 앉아서 혼자 독서를 하고 있는 등 평범한 일상이 발견된다. 작가는 화면에 그린 자신의 모습만큼이나 가을을 닮았다. 한 가지로만 설명할 수 없는, 상반된 매력이 흘러넘쳤다. 그는 그 다양한 모습을 ‘변화에의 욕망’으로 설명했다.
“최근 단양 죽림원에 갔었는데, ‘사람, 변하지 않는 길’이라는 글을 봤어요. 그런데 저는 그 글을 보고 오히려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죠. 인생사도 기쁨, 슬픔, 분노, 희망, 처절함 등 다양한데, 어떻게 한 가지 길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 인생의 변화를 그림에서 느꼈어요. 늘 그림을 머릿속으로 구상하기보다는, 그때그때마다 제 머릿속을 채우는 강렬한 느낌에 따라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어느 날 보니 제 그림이 변해 있더라고요. 작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픈 욕망이 있지만, 그만큼 변화하며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도 강해요. 양면성이 있죠.”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변화를 겪었다. 예전 작가의 그림 속 인물들은 화면 안에서 뛰쳐나가려는 경향이 있었다. 굉장히 동적이었다. 그런데 지난해와 올해 들어 다시 등장한 사람들은 고요하고 평온해진, 정적인 모습이다. 이런 변화 또한 작가의 삶과 맞닿은 결과다.
‘김영태 화백의 딸’에서 ‘작가 김두례’로
작가는 과거 미술계에 입문 당시 ‘김두례 작가’라고 불리기보다는 ‘김영태 화백의 딸’로 더 많이 불렸다. 구상화의 대가로 꼽히는 김 화백은 김두례 작가에게 아버지인 동시에 넘고 싶은 산이었다. 작가는 “학교에 가면 사람들이 ‘김영태 교수님 딸이다’ 수군수군 하다가 제가 나타나면 입을 다물곤 했어요. 저는 그게 싫었어요. 제 그림을 보지 않고, 아버지 이름만 보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 같았거든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버지와의 비교가 싫어서 아버지가 그리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그걸 파기 시작했죠. 그래서 누드,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처음 개인전 다섯 번 할 동안에는 무조건 누드만 그리겠다고 오기를 부렸어요. 누구누구의 딸에서 벗어나, 김두례만의 그림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초창기 그린 인물들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듯한 모양새를 지닌 건 이런 작가의 마음이 반영돼서가 아닐까. 한없이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벗어나고 싶었던 아버지의 틀. 그런데 속박으로만 느껴졌던 그 틀이 이제는 공감으로 바뀌었다.
“올해 아버지 연세가 아흔인데 지금도 눈만 뜨면 바로 그림을 그리세요. 그 열정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죠. 그림을 빼놓고는 존재할 수 없는 삶이에요. 저는 그런 아버지의 그림을 보고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저 또한 작가의 길을 걸으면서 예술가인 아버지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죠.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누구보다 의지가 되는 좋은 아버지이자, 선배입니다.”
서로 그림을 보고 조언을 해주기도 하는 상대인 아버지로부터 인터뷰 도중 전화가 오기도 했다. 꼭 하루에 한 시간은 통화를 한다고. 작가는 말로는 “귀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아버지와의 통화가 즐거운 모양새였다.
이런 이야기만 들으면 작가는 온실 속 화초처럼 좋은 배경과 환경에서 고생 없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작가의 그림 인생이 늘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IMF 시절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미국에서 하던 공부를 접고, 빈털터리가 된 채 한국에 돌아왔다. 그때 아버지가 남아 있던 차 한 대를 가지고 왔는데,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빼고는 그림 그릴 수 있는 도구들로 빼곡했다.
“아버지가 한 평만 있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그림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 그리라고 했어요. 솔직히 1999년까지는 허세로 그림을 그린 적도 있어요. 여류 화가 타이틀에 취하기도 했죠. 그런데 2001년부터는 온 마음을 다해서 죽어라 그림을 그렸어요. 절실한 마음이었죠.”
즉흥적인 붓 터치에 가장 중요한 건 자유와 진심
그저 멋에 취한 게 아닌, 마음을 담기 시작한 작가의 그림은 억지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버지와는 다른, 김두례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현재 작가에겐 ‘한국 추상표현주의 대표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절제된 색채와 단순한 화면 구성은 그림을 보는 순간 ‘김두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작가에게는 이젠 이런 거창한 수식어와 복잡한 이론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진심과 자유다. 작가의 평소 삶 스타일이 그렇다. “연애도, 결혼도, 이혼도 해보라”고 기자에게 권하는 등 매우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갖추었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또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만끽해야죠. 틀에 얽매이지 말고요. 사람들이 나이 쉰이 넘으면 늙는 것을 슬퍼하고, 젊어지고 싶어서 보톡스를 맞거나 하는데, 그건 젊어진 것처럼 보일 뿐이지, 절대 젊어진 것은 아니에요. 자연스러움을 추구해야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죠. 그런 마음으로 저는 붓을 들어요. 느낌 가는대로 자유롭게 붓을 터치하죠.”
전통 오방색과 한국 추상표현주의도 이론적으로 다가가면 어렵지만, 작가의 삶 자체에서 다가가면 결코 낯설지 않다. 옛날 어려운 시절 어머니가 딸을 다섯 명 키우고 시집보낼 때 색동저고리 조각 하나하나를 바느질해서 이불을 만들어줬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행복한 기억이다. 그 색동저고리의 알록달록한 빛깔이 작가의 마음에 깊이 남았고, 현 작업에서 오방색 빛깔을 지니고 탄생했다. 진심을 전하기 위해 거창하거나 복잡한 색, 구성으로 치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점점 색과 화면 구성이 간결해졌고, 현재에 이르렀다.
“‘제 그림은 이런 이론을 반영했습니다’ 또는 ‘이런 의미가 담겼습니다’ 하고 설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어렵지 않게, 그저 보고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거든요. 그리고 여기에 행복도 들어 있으면 해요. 몇 년 전 한 여성보호센터에 간 적이 있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얼굴은 천사 같은데 이빨이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었고, 화장을 무섭게 한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미소가 없는 게 안타까웠어요. 보호소 복도가 꼭 교도소처럼 삭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작품 이미지를 프린트한 것을 액자로 기증했어요. 그냥 그림을 지나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수없이 지나가는 사람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제 그림을 보고 마음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진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이제는 누구의 딸이 아닌, 어엿한 김두례 작가라는 이름을 미술계에 새긴 그는 요즘도 그림을 그리느라 일주일에 2~3일은 날을 샌다고 한다. 그래도 행복하다. 작가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건강함과 선천적인 긍정 에너지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웃었다.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다채로운 감정을 뿜어내는 그의 화면. 따뜻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가을 햇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작가의 붓놀림이 앞으로는 또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궁금해졌다. 전시는 롯데갤러리 잠실점(11월 6일까지)과 에비뉴엘 본점 각층(11월 21일까지)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