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일부.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된 마지막 '문장'지 4월호에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가 발표됐다. 시에서 백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고 이야기한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가운데 사랑과 슬픔 양쪽의 극단이 공존한다.
김재남 작가는 이 텍스트를 바탕으로 이미지화 한 작업을 갤러리오의 개인전에서 11월 2일까지 선보인다. 작가는 백석이 시에서 바라다 봤을 것으로 짐작되는 흰 벽(스크린)을 표현한 '검은 나무'의 영상을 보여준다. 흰 캔버스에 백석의 시가 쓰이고, 그 텍스트는 목탄으로 표현된 검은색 바다로 변한다. 이 과정이 영상 작업에 담겼다. 그리고 이 과정 후의 목판 페인팅을 함께 보여준다.
작가는 경계 지점에 선 인물이다. 그는 이전 작업에서 육지에서 바라다 보는 섬과 섬에서 바라다 보는 육지 또한 섬이라는 '두 개의 섬' 프로젝트를 영상과 드로잉, 설치, 사진으로 보여준 바 있다. 이 작업에서도 이미지가 가지는 극단적 경계의 양극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작가는 양쪽의 극단을 화해시키고 연합하는 매개자, 더 나아가서는 소통의 역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