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줘요, 슈퍼맨~”
어렵고 힘든 순간이 닥칠 때면 눈 깜짝할 새 모든 걸 해결해주는 영웅이 한 번쯤 간절해지곤 한다. 엄청난 능력으로 누구와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영웅. 만화, 영화를 통해 주로 만나던 판타지 속 영웅은 현실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현실에서 필요한 영웅은 모두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영웅이 아니라 하루를 함께 이겨내며 조금씩 나은 내일을 만드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오늘날 영웅의 의미를 다양하게 모색하는 전시가 최근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렸다.
‘페스티벌284: 영웅본색’은 평범한 사람들의 영웅적 삶을 주제로 오늘날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에 관한 이야기를 전시, 공연, 영화,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으로 엮어 관객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융복합예술 페스티벌이다. 작가 12명(팀)의 작품이 각각의 공간에서 영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투영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거대한 좌대 위로 작가 권오상의 사진 조각들이 보인다. 각각 다른 높이 위에 오른 인물 조각들은 모두 입체 조각 위에 수백 장의 사진을 부착해 만들었다. 한 인물을 다각도로 촬영한 평면사진들이 모여 입체적인 사람을 이루지만, 어딘가 어색하게만 보인다. 평범한 사람부터 김혜자, 박찬호 등 유명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좌대에 올라 영웅처럼 보이지만, 영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파편적일 뿐이다.
성유삼은 전쟁에 승리할 때마다 기념으로 세우던 신전 기둥과 승리의 여신 니케의 조각상을 색색의 스펀지로 만들었다. 원래는 단단한 돌로 조각해 승리를 축하하는 조각들이지만, 성유삼의 스펀지 조각들은 조금만 만져도 부들부들 좌우로 흔들린다. 그 옆에는 동그랗게 원형으로 만든 주사위가 놓인 도박판이 있다. 아무리 숫자판을 돌려도 원형 주사위는 승자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작가 장지우는 스스로 ‘지우맨’으로 변신해 악당을 물리치고 약자를 돕는 영웅이 되면서 영웅의 판타지를 실현한다. 전시장에 꾸며진 평범한 자취생 청년의 방의 책장을 밀면 영웅으로 변신하기 위한 장치가 갖춰진 비밀기지로 통한다. 비밀기지에는 작가가 ‘지우맨 수트’를 입고 영웅으로 변신해 싸우는 영상 ‘지우맨 에피소드’가 상영되고 있다. 특촬물(특수촬영물)이라 불리는 ‘슈퍼 히어로’ 장르의 전략적 기법을 그대로 모방한 이 작품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평범한 젊은이가 영웅이 돼 악을 물리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영웅에 대한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영화, 연극, 무용 등의 이벤트가 일정에 따라 진행된다. 전시장에는 친절한 도슨트 요원이 매 전시실마다 배치돼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지나친 해설은 관람객의 자유로운 해석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 먼저 작품을 관람한 뒤 질문하는 것이 좋다. 전시는 12월 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