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복지 칼럼] 식품에 대한 기우(杞憂)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CNB저널 =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기우(杞憂)라는 말은 옛날 중국의 기(杞)나라 사람들이 하늘이 무너질까봐 침식을 잃고 근심 걱정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쓸데없는 걱정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식품에 대한 기우가 유난히 많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여러 가지 식품 괴담이 난무하여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8년도에 일어난 광우병 대란이다. 광우병에 걸린 소를 본적도 없고 전염된 사람도 없는 나라에서 광우병 괴담에 놀란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반대시위를 벌여 거의 6개월 동안 나라가 마비되는 웃지못할 홍역을 치렀다.
그런데 요즘 그보다 더한 식량대란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바로 유전자변형작물(GMO)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GMO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에 의해 유전자변형작물의 상용화가 시작될 때 국내 과학계보다 먼저 일부 시민단체들이 유럽의 그린피스 같은 반GMO 운동단체들이 제공한 자료들을 가지고 GMO의 위험성을 적극 홍보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생명공학 신품종들이 세계적으로 재배 이용되고 안전관리 체계가 확립되어 그 안전성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나 한번 잘못 입력된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미 세계 곡물시장에서 거래되는 콩과 옥수수의 70% 이상이 생명공학 신품종이다. 콩과 옥수수의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과 한국에서는 이들을 이용하여 식용유, 간장, 물엿을 만들고 있다. 우리 음식에서 식용유, 간장, 물엿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별로 없기 때문에 모든 음식에 GMO가 사용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들 식품 원료들은 최종 제품에 외래 유전자나 단백질이 남지 않으므로 GMO가 아닌 기존의 식품 재료와 구분이 되지 않아 표시가 면제되어 있다. 만약 현재의 GMO 표시 제도를 확대하여 GMO를 사용한 모든 식품에 표시를 의무화하면 우리가 먹는 모든 식품의 포장에 GMO 표시가 붙게 된다. 국민이 불안해하는 GMO 표시가 모든 식품에 붙게 되면 먹을 게 없다는 국민의 아우성으로 나라 전체가 겉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과 우리나라가 꼭 같이 GMO 표시제를 확대하지 않고 있는 이유이다.
안전하지 않다면 금지해야지 표시는 왜 하나?
GMO 표시제 확대 주장에 대해 ‘안전하지 않다면서 표시는 왜?’라는 칼럼이 인상적이었다. 진실로 안전하지 않다면 사용을 금지해야지 표시를 하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표시를 하라고 하는 것은 먹어도 괜찮다는 전제에서 하는 것이다. GMO가 각종 질병의 원인이고 괴물에 가까운 물건이라면 표시하여 유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GMO단체들이 시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표시제 확대를 주장하고 있으나 그 근거가 되는 안전성 문제 제기는 세계 과학계와 각국 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이다. 일부 유기농 업체와 반GMO 단체들이 전국을 돌며 상영하고 있는 ‘GMO룰렛’이라는 영화는 세계 과학계가 이미 잘못된 연구 논문이라고 폐기한 내용들과 괴담 수준의 헛소문을 모아 만든 거짓 선전물이다. 이런 선전물에 노출되어 매일 먹는 음식에 불안감과 공포심을 갖게 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병들게 된다.
보다 못한 노벨상 수상자 1백여 명이 이런 거짓 정보를 만들어 내는 그린피스를 비롯한 반GMO 단체들의 무책임하고 반과학적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계식량상(World Food Prize)을 받은 덴마크인 핀스트럽 앤더슨 박사는 이들의 반인륜적 행위를 처벌할 국제적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은 마음 놓고 음식을 즐길 권리가 있기 때문에 식품에 대한 기우를 조장하는 행동은 철저히 배격되어야 한다.
(정리 = 최영태 기자)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