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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人 - 이창원 작가] "이 화려한 겉의 속이 광고 전단지라면?"

갤러리퍼플서 '기여화광(氣如火光)' 작업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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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8호 김금영 기자⁄ 2016.11.03 11:32:16

▲이창원, '기여화광(氣如火光) - 부분'. 광고 전단, 회전 진열대, 조명, 목재, 가변설치. 2016.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재이사상(災異思想)’. 조선시대 때는 하늘의 범상치 않은 변화를 사사로이 여기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풍경 자체로 받아들이거나,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분석하기보다는, 하늘이 인간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여겼다. 세상의 모든 것엔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마음이 반영되고 읽힌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하늘의 변화를 통해 민심을 읽었고, 임금에게 잘못이 없는지 다시 되돌아봤다. 요즘 하늘은 어떠한가?


특히 중종실록에 기여화광(氣如火光)이라고 기록됐던 현상이 있었다. 하늘에 붉은 기운이 만연했는데, 영국의 어느 과학자는 이를 조선의 하늘에 나타났던 오로라로 해석했다. 현 시대에서도 하늘의 변화를 과학 기술로 파악한다.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 즉 사회가 세계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눈앞의 현상을 파악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이창원 작가의 작업에도 하늘이 등장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암흑과도 같이 까만 공간이 펼쳐진다. 이 공간을 산의 형상이 둘러싸고, 이 산 위 공간에는 다채롭게 변하는 하늘이 펼쳐진다. 빨갛기도, 노랗기도, 푸르기도 한 빛이 끊임없이 변한다. 오로라를 보는 듯 몽환적인 풍경이다.


▲이창원, '기여화광(氣如火光) - 부분'. 광고 전단, 회전진열대, 조명, 목재, 가변설치. 2016.

그런데 이 아름답게만 보이는 빛에 가까이 다가가면 뜻밖의 모습을 마주한다. 산 모양의 설치물 뒤에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광고 전단지들이 둥그런 판 위에 붙은 채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여기에 빛을 쏘이고, 색을 입은 아름다운 반사광이 처음 전시장에서 마주한 묘한 풍경을 만들어낸 것. 우아하고 고상하게 보였던 빛 뒤에 숨은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평소 어떤 현상의 근원에 궁금증을 갖고 작업을 펼쳐 왔다. 지금 구현된 세계의 모습은 인간사와 연결되고, 또 반영된 결과라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이 조선시대의 재이사상과 비슷한 점이 있었고, 신작 ‘기여화광’을 선보이게 됐다.


▲이창원, '기여화광(氣如火光) - 디테일'. 광고 전단, 회전 진열대, 조명, 목재, 가변설치. 2016.

작가가 전시장에 만들어낸 하늘 풍경은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이 투여된 결과물이다. 사람들의 끊임없는 욕망은 현 시대에 만연한 물질주의, 상업주의를 만들어 냈다. 특히 광고 전단지는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고, 관심 있어 하며,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들을 담은, 현 시대 상업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매체다. 이 욕망은 아름답게 포장된 채 사람들 주위를 감싸고 있다.


“사람들의 욕망은 어느 시대든 항상 존재해 왔어요. 몇 년 전 한적한 남양주 덕소 쪽 음식점을 간 적이 있어요. 그 한가로운 곳에 쉬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 몇 억, 몇 천만 원 단위의 돈 이야기도 들렸고, 땅과 집 투자 이야기, 자녀 교육 이야기 등 현실 이야기가 들렸어요. 쉬러 온 순간조차 욕망은 사람들을 감싸고 있었죠. 그게 큰 관심사니까요. 저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자 예술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그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사광 이용해 현상의 근원에 접근하는 시도


▲이창원, '기여화광(氣如火光)'. 광고 전단, 회전 진열대, 조명, 목재, 가변설치. 2016.

욕망의 겉모습은 아름답다. 그리고 사람들은 욕망의 현상에만 현혹되지, 실체나 근원은 잘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 할 때가 많다. 그 뒤에 숨은 실체를 드러내는 데 작가는 집중한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은 아니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실체를 보고 허탈함을 느낄지, 웃어넘기고 말지, 곰곰이 생각해 볼지는 온전히 실체를 마주한 사람의 몫이다. 작가는 스스로 세계를 판단하고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뿐이다.


작가의 초창기 작업부터 이런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커피 가루가 선반 위에 있는 걸 발견한다. 그런데 멀리서 전체적으로 크게 바라보면 그 커피 가루가 어떤 형상을 띠고 있다. 눈앞의 현상에만 몰두하면 현상의 실체를 놓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이 작업은 ‘남산의 하루’다.


커피 가루가 모여서 만든 건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이다. 민족의 정기를 되살린다는 취지로 세워진 동상들의 제작자 중 친일파 논란이 있는 작가가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 동상은 전날 추앙받던 것과 달리 바로 철거될 위기에 처한다. 제아무리 단단하고 영속적으로 보였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의미가 바로 바뀔 수 있다. 조선시대 하늘로 민심을 읽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과학 기술로 판단하듯이. 작가는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반사광을 사용했다. 커피 가루의 반사광이 그림자를 만들어내 큰 형상을 이뤘다. 반사광은 작가의 작업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존재다.


▲이창원, '기여화광(氣如火光)'. 광고 전단, 회전 진열대, 조명, 목재, 가변설치. 2016.

“물체 등에서 반사되는 반사광(reflected light)은 항상 그 근원을 지시합니다. 빛을 받아 그림자가 생겨요. 그리고 사람들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여러 그림자 중에서도 자신의 그림자를 본능적으로 알아보죠. 이 반사광을 활용해 현상의 근원을 드러내는 작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느꼈어요.”


또 다른 작업인 ‘평행세계’의 경우 그냥 보면 고양이, 소, 물고기 등 귀여운 동물들 형상의 그림자가 벽에 보인다. 마치 동물들의 낙원 같다. 하지만 이 작업 가까이 다가서면 각종 뉴스 기사에서 동물 부분을 오리고, 이 부분에 빛을 쏘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각 동물들에는 사연이 있다. 원전을 탈출한 동물,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 광우병 파동에 죽임 당한 소 등 인간사와 연결돼 불행해진 동물들의 기사로 펼친 작업이다.


‘기여화광’은 반사광 작업의 극대화다. 그간 정지돼 있었던 반사광의 그림자가 이번엔 움직이고, 끊임없이 변한다. 이 작업을 위해 광고 전단지에서 적당한 색을 추려내고, 돌림판에 설치된 모터의 속도, 그리고 빛이 쏘이는 각도 등을 꾸준한 실험을 거쳐서 이번 전시에 구현했다. 산의 형상은 서울 관악산, 인왕산부터 남양주까지의 산을 사진으로 찍은 뒤 실루엣을 구현해 설치했다. 광고 전단지부터 산 형상까지 모두 현실에서 따온 재료들이다. 광고 전단지와 신문 기사를 모으는 건 습관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늘 관찰하고 집중한다.


▲이창원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들은 아주 예전부터 시대를 반영하고 바라보는 작업에 집중해 왔다고 생각해요. 세계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을 땐 이를 바탕으로 한 이미지들이 탄생했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알려진 뒤엔 이 이미지에 변화가 생겼죠. 예술가 또한 현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현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도 같다고 느껴요. 동굴 속 사슬에 묶인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동굴 안쪽 벽만 봤어요. 그들이 볼 수 있는 건 뒤편에서 타는 장작의 빛으로 나타난 자신들의 그림자였죠. 그래서 이들은 그냥 눈이 보이는 그림자만 보고 그게 실체라고 믿었어요. 그림자를 나타나게 하는 근원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현상만 보고 진실이라 믿어버린 거죠. 요즘 특히 어지러운 세상이에요. 현상만 보고, 뒤에 작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잘 보지 못하는, 가려진 시대죠. 현상에만 빠지는 게 아니라, 근원에도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전시는 갤러리퍼플에서 12월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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