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 하얀 나비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1960~70년대. 살기 어려웠던 시절 노동 환경은 열악했다. 그래도 자신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속 젊은이들은 청춘을 불태우며 미싱을 돌렸다. 그로부터 몇 십 년이 흐른 2016년. 이 노래가 다시 불린다고 노순택 작가는 말한다. 받침 한 자가 바뀐 “미신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로. 꽃은 다채로운 색을 뽐낼 수 없다. 한 가지 색으로 통일해야 한다. 미싱을 열심히 돌렸던 청춘의 고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나라가 뒤흔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뒤에 숨어 있던 비선실세의 실체에 관한 의혹과 증거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이들은 문화계에도 손을 뻗쳤다. 10월 이른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국일보는 "정치 검열을 위한 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담은 문건이 존재한다"며, 청와대가 문화예술계에서 검열해야 할 9473명의 명단을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로 내려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 블랙리스트에 적힌 단체 및 인물은 정부의 각종 지원에서 배제 대상이 되거나 제약을 받았다는 발언이 나오면서 파문이 일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블랙리스트에는 지난해 5월 1일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문화인 594명, 2014년 6월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754명,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6517명,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1608명 등의 이름이 올랐다.
그리고 최근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보도가 한겨레에서 나왔다. 여기에 청와대와 정부의 답변은 한결같다. “아니다”라고. 그런데 아니 땐 굴뚝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이리 풀풀 날까.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증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블랙리스트의 시대,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토론회가 서울문화재단 주관으로 열렸다.
시국선언과 블랙리스트가 놀랍다고?
노순택이 '노숙택'이 된 사연
지난주 광화문 광장이 가득 찼다. 시국선언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파문에 분노한 문화예술인도 함께 했다. 문화연대, 한국작가회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음악인까지 역대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여기에 노순택 사진작가도 포함됐다. 그는 요즘 노순택이 아닌 ‘노숙택’으로 불린다. 광화문에 텐트를 치고 자리를 지키는 그는 시국선언의 현장을 매일 카메라에 담는다. 지금 돌아가는 현실을 분명하게 보고, 기록하면서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유명 미술가가 과거에 그랬습니다. 사회가 썩어야 예술이 잘 된다고, 그런데 이미 한국 사회는 썩을 대로 썩었다고. 사회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정체됐을 때 그 돌파구 역할을 문화예술이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국정농단의 핵심 영역에 문화예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예술가들이 각자의 표현 방법으로 발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닐까요?” (노순택 작가)
노순택이라는 이름으로 토론회가 참석한 그는 이어 점심도 챙겨 먹지 않은 채 바로 광화문광장에 가서 바로 자리를 지키며 '노숙택'으로 돌아갔다.
이번 시국선언과 더불어 불거진 블랙리스트 파문에 예술인들은 분노하면서도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작가회의에 속한 한창훈 소설가는 “요새 블랙리스트다 뭐다 난리인데 솔직히 별로 새롭지도 않다. 한국작가회의는 74년에 설립된 진보문학 단체인데, 설립 순간부터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늘 감시당하고 억압 받아 왔다. 작가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블랙리스트를) 조악하게 만드는 것도 문제’라고 할 정도”라며 비꼬았다.
“데모가 지겹다”고도 했다. 한창훈 소설가는 지난 토요일 집회에 참석했다. 젊은 시절 그는 나중엔 좋은 세상이 될 것을 꿈꾸고 데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몸이 삐걱대는 50대의 나이에도 광화문에서 칼바람을 쐬며 데모에 참여하는 중이다. 그의 지겹다는 말은 데모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한탄이었다.
김미도 연극평론가도 이에 덧붙였다. 그는 “연극계는 이미 검열 사태로 힘든 시간을 오래 보내오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심의위원회에서 심의에 참여할 당시 검열의 만행을 직접 봤다. 심사위원을 재소집해서 결과를 바꿀 것을 강요받기도 하고, 포기 각서를 받으려 하는 등 기막힌 일들이 있었다”며 “하지만 연극인들은 더욱 뭉쳤고, ‘검열각하’ 릴레이 공연을 펼쳐 왔다. 1년 넘게 지속적으로 투쟁해 왔음을 자랑스럽게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이 ‘자기 검열’ 끝에 문제제기를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신현식 앙상블 시나위 대표는 “지금 현재 우리 자화상을 보면 이것저것에 얽혀 있다. 사제지간, 생계 문제 등 많은 부분들이 옳은 목소리를 내는 데 발목을 붙잡는다. 국악인 또한 자기 검열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현재의 사태는 갑자기 터진 것이 아니라, 곪을 대로 곪아 왔던 썩은 것들이 들춰내지고 터져 나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