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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블랙리스트 ④] "지원금 갖고 장난질 마라, 손모가지 날아가붕게"

"그게 너희들 적금이니?" 울분 토하는 예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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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9호 김금영 기자⁄ 2016.11.11 09:44:24

▲정당하고 공정한 사회를 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문화 예술인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부당한 사례들을 몸소 겪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예술인들이 그간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신현식 앙상블 시나위 대표가 언급한 ‘자기 검열’이 자리한다. 문화 예술은 특정 대중화된 분야를 빼고는 여전히 ‘배고픈 길’이라는 의식이 팽배하고, 또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많다. 한창훈 소설가는 “작가들이라 하면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골방, 커피, 술, 담배다. 많은 작가들이 그따위로 사는 걸 좋아한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김미도 연극평론가와 연상호 감독, 노순택 작가 또한 “정부의 지원금 없이는 창작 활동을 하기 힘든 예술가들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연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지원을 받지 못한 적이 있다. 공공연히 문화계에서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떠돌기에 나 또한 리스트에 올랐구나 생각했다”며 “그런데 나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믿고 따라오는 스태프들이 내가 사회에 몇 마디 했다는 이유로 먹고 살지 못하게 된 건 아닌가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생존에 직결될 때 목소리를 내는 데 멈칫하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노순택 작가는 “블랙리스트를 한국어로 바꾸면 ‘돈 주면 안 되는 애들’”이라고 꼬집었다.


“돈이 없으면 작품 발표 자체가 어려운 예술가가 많아요. 그래서 지원이 절실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이 시대는 그 예술가들은 ‘돈만 아는 저질’로 여겨 돈줄을 조이거나 푸는 방식으로 조련하려 합니다. 이것은 예술을 통제하면 권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죠. 일찍이 히틀러도 자신이 불온하다고 하는 그림들을 모았고,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벌였던 것처럼요. 검열 중 가장 무서운 게 자기 검열인데, 가장 이에 취약한 예술인의 생계를 조이며 ‘우리에게 밉보인 딴따라들 어떻게 되는지 봤지?’라며 겁을 주려는 거죠. 그런데 이게 문화예술에서 끝일까요? 다음은 어디일까요?” (노순택 작가)


김미도 연극평론가는 실제 사례를 들기도 했다. 김 평론가는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내는 ‘연극 평론’ 잡지의 편집인이다. 이 잡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을 받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광고를 먼저 주겠다고 했단다. 창작산실 공연 광고였다. 창작산실은 박근형 연출 지원을 배제한 문제가 불거진 곳이다.


“이 광고로 협회 내 내분이 일어났어요. 솔직히 열악한 재정 상태에서 80만 원 광고비는 매우 큽니다. 하지만 문화예술인으로서 부당한 일이 벌어진 곳에 대한 광고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죠. 이게 바로 자기 검열의 갈등이에요. 결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게 전화해 광고를 도로 가져가라고 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어요. 이번엔 신념을 지켰지만, 혹여나 추후 지원금이 끊이지는 않을지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힘든 예술인을 돈 갖고 농락하는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김미도 연극평론가)


▲'검열의 가위에 맞서는 연극의 주먹'을 이야기하는 '검열각하' 릴레이 공연이 꾸준히 열렸다. 연극 '고래 햄릿'의 한 장면.(사진=권리장전 기획팀)

그래서 이들은 직접 기금을 모으는 일도 이어왔다. ‘검열각하’ 릴레이 공연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5000만 원에 가까운 기금을 모았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래서 공정한 과정 속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이에 대해 한창훈 소설가는 “그 지원금이 당신들 적금이냐”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그는 “2010년 한국작가회의에 공문이 날아왔다. 1년에 3000만 원 정도 지원받았었는데, 광우병 관련 집회에 참석하면 지원금을 빼앗고, 책임 묻는 걸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라는 공문이 왔다. 안 받고 말겠다 싶었다. 유치했다”며 “그런데 웃긴다. 그 지원금이 자기들 것인가? 그간 자신들이 열심히 적금을 부어서 만든 것인가? 그 지원금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졌고, 내가 낸 세금도 있을 것이다. 왜 그게 자기 것인양 위에서 마음대로 쓰나? 올바른 창작 활동을 위해 정당하게 돌려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노숙을 하고 있다는 노순택 작가에게 김밥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찾아가 응원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 노순택 작가는 “김밥 응원도 고맙지만, 정말 예술인들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 달라. 문화 예술인이 마음껏 자유를 펼칠 수 있는 광장, 즉 광장이 광장다울 수 있도록 도와 달라.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참여를 독려해 달라”고 답했다.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예술인들은 한결같이 진실과 공정을 원한다고 답했다. 잘못된 것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공정하게 모든 절차가 이뤄지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짧고 단순해 보이는 이 단어의 실행이 굉장히 어려운 사회다. 그래서 목소리를 더 내겠다고 이들은 다짐한다.


투덜대면서도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한창훈 소설가는 “골방에 있던 작가들을 이 나라가 나오게 만들었다. 작가들은 삶의 가치, 시대에 대한 촉을 가졌다. 이 시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투덜거리면서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더 많은 예술인의 발걸음이 여기에 함께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러려고, 이렇게 비탄한 현실을 마주하려고 예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화예술의 다양한 꽃이 활짝 필 수 있도록 진실이 밝혀지고, 이에 따른 책임을 지며, 공정한 사회가 열리기를 많은 사람들이 따가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눈이 뜨이고, 들리지 않는 귀가 열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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