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많은 사례가 논의된 가운데, 이를 한국에 바로 적용하기엔 어렵다는 이야기 또한 나왔다. 런던과 미국의 경우엔 도시 재생 과정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돼 왔다. 급격한 발전을 이뤄온 한국과는 다른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질적으로 좋은 건물주를 만나기를 기대해야 하는 게 현재 국내 예술가들의 상황이다. 박지은 박사는 “좋은 건물주에만 기대야 하는 한국의 상황이 놀랍다. 레인보우큐브와 공간 사일삼은 좋은 사례들임에도 불구하고, 공적 지원을 전혀 지원받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예술에 있어서 사회적인 합의가 중요하다. 프랑스에서도 그게 기본이다. 예술가를 어떻게 보고, 정의하는 게 근간이 된다. 하루아침에 얻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공간 사일삼의 김꽃 작가는 “지원 신청을 왜 안 해봤겠는가. 여러 단체에 지원을 요청해봤지만, 늘 돌아오는 대답은 이미 지원 공간이 꽉 차 있다는 것이었다. 내부관계자 또한 같은 소리를 했다. 우리나라의 예술인 지원 제도는 이미 가득 찼고, 또한 바닥이 나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간 운영비 또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공간 사일삼은 자체적으로 운영비 긴축 형태를 통해 많은 운영비가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또한 입장료를 모아서 전시를 열고, 이 과정이 계속 순환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전시 규모가 마치 좀비 형태와 같이 겨우겨우 이뤄진다”며 “또한 개인적으로 건물주와 원활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식으로 공간을 꾸려왔다”고 상황을 짚었다.
레인보우큐브 또한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다. 레인보우큐브 공동 작업실은 2017년 2월을 끝으로 잠시 쉬어가는 기간을 가질 예정이다. 건물주의 사정으로 작업실 공간을 임시로 비어줘야 하기 때문.
이미 1년 전부터 이야기를 해 왔던 상황으로, 약 6개월에서 1년 동안 공백의 시기가 생긴다. 이 기간 동안 단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공간을 모색했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작업실의 보증금과 월세로는 비슷한 규모의 공간을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김성근 대표는 “건물주와의 원만한 관계로 공간을 이어왔지만, 언젠가는 또 새로운 이유로 작업실의 지속 유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시기가 올 것이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엔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런던 Acme도, 시카고의 엑스포도, 프랑스의 아틀리에 제도도 모두 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뒤 이뤄진 결과였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 및지역계획학 교수는 “지금 국내에선 단기적인 발전을 보는 경향이 많다. 그런데 사회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장기적인 결과를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를 들어 온통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이뤄진 공간 A와, 프랜차이즈 30%, 예술인 공방 및 창작 공간 40%, 아담한 음식점 30%로 이뤄진 공간 B가 있다고 치자. 사람들은 당연히 B에 더 많이 몰릴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에 굳이 발품을 팔면서 갈 필요가 없다. 더 다양한 것을 접하고, 경험하고 싶어 한다”고 짚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익은 A상권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예술인 공간에서 쇼핑을 하기보다는 편한 프랜차이즈 및 지역 내 작은 음식점에서 구매 행위를 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 그래서 공간 B 또한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점점 장악하고, 공간 A처럼 변해간다. 이것이 반복돼 현재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만들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김 교수는 예술인 창작 공간 공급자와 수요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한다며 보스턴을 예로 들었다. 보스턴은 시(市) 산하의 재개발청을 통해 예술인 공간 지원사업을 운영한다. 보스턴시가 민간 개발업체에 인센티브를 줘 이들이 개발 혹은 보유한 건물에 작업 공간을 조성하고, 예술인들이 적정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사용하게 한다.
김 교수는 “시설을 만드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자금을 가진 민간 개발업체의 관심을 끌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인 창작 공간 개발 의지가 있는 민간 개발업체에 용적률 인상이나 토지용도변환 등 도시계획 관련 인센티브 혹은 건설비용 일부 보조(금융지원) 등을 고려하는 형태로, 민간 개발업체가 인센티브에 관심을 갖고, 작업 공간 구성에 자발적으로 뛰어들게 만드는 환경 조성이 국가 제도의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무작정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흥미를 끌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바바라 코에넨은 이를 위해 예술가들 또한 집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가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발업자일수도, 수집가일수도 있다. 이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어필하고, 공조자로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며 “예술인은 사회에 환원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옹호자를 찾아 이야기를 전달하고, 작품이 무엇이고, 사연이 무엇인지 등 지역사회를 설득시켜야 한다. 왜 예술인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이 이야기를 듣게 하라”고 조언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술인은 ‘힘들게 버티기’에 직면해 있다. 김꽃 작가는 수차례 이뤄지는 이 이야기가 지겹다고도 했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 이야기는 이미 한참 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원해야 하는지, 젠트리피케이션 초기 단계부터 디테일한 부분을 고민하지 않고 시간만 흘러갔기에 현재와 같은 결과가 초래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기엔 현실에 맞는 고민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제도가 필요하다. 당장 제도 하나가 어떻게 바뀌냐에 따라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한 작가들이 많다. 솔직히 지역과 예술이 함께 발전하는 건 무리라고 본다. 지금 상황을 보면 상생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함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제도적인 차원에서 이야기가 이뤄지고 정리될 필요가 있다.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온 작가들을 위해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