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에코(echo)가 빵빵하게 들어갔다” “소리가 웅장하게 들린다” 스피커 광고 문구 중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유국일 작가의 스피커는 다르다. “소리를 과장과 축소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이것이 그의 스피커 철학이다.
유국일 작가가 13년 만의 개인전으로 돌아왔다. 이번 전시에서 유국일은 메탈 스피커 신작을 선보인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소리까지가 바로 전시의 완성이다. 사람들은 일단은 당장 눈에 보이는 스피커의 외관을 쫓지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저절로 눈을 감게 된다. 눈을 감으면 더욱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전시다.
“저는 플랫(flat)한 본연의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주력해요. 소리는 원음 자체가 가장 아름다워요. 과장되거나 축소되면 오히려 소리의 매력이 반감되죠. 저는 그 원음을 고스란히 담아 이동시켜 주는 작업을 합니다. 보통 스피커는 내부의 진동으로 스피커 통이 울리면서 왜곡된 소리가 합쳐져요. 결국 우리는 왜곡된 소리를 듣게 되는 거죠. 여러 실험 결과 진동은 무게에 반비례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저는 스피커를 만들 때 무거운 메탈을 사용합니다. 많게는 무게가 300kg에 달하는 스피커도 만들어요. 진동을 최소화 해 맑고 깨끗한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지요.”
그간의 경력을 살펴보면 심상치 않다. 그는 정확한 스피커 음질을 위한 기술특허 8개, 디자인 특허 32개, 국제특허 1개를 보유하고 있다. 오디오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2013년부터 아이리버와 현재까지 꾸준히 협업하며 아스텔앤컨(Astell & Kern) 시스템을 개발했다. 음의 손실 없이 고품질의 음원을 재생하는 시스템이다.
요즘도 녹음 및 음 튜닝 작업이 그의 하루 일과를 채운다. 본격 작업 전날엔 굶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온 몸이 음 하나에도 예민해질 수 있는, 더욱 잘 들을 수 있는 상태를 만든다. 한 번 튜닝 작업에 들어가면 보통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이때 몸무게 4~5kg이 빠지는 건 일상이란다. 소리를 좋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대로 전달하는 작업이 이토록 고되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다 보면 유 작가가 유독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음악 전공했어요?” “전자공학 전공했어요?” 둘 다 아니다. 유 작가는 금속조형디자인을 전공했고,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렇기에 메탈 스피커를 만들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스피커는 메탈 소재로 가공이 어렵지만, 금속공예를 전공했기에 친숙한 소재였다. 특히 즐겨 쓰는 소재는 두랄루민이다. 가볍고 단단해 비행기를 만들 때도 쓰이는 소재다.
진동 최소화한 메탈 소재 스피커에 디자인도 입혀
‘왜곡 없이 소리 전달하기’가 작업관
이 소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피커의 디자인적 감각도 인정받았다.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레드닷, IF, 그리고 CES에서의 수상 경력만 해도 14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무겁고 거대한 그의 스피커의 외관을 보고 “외장 껍데기”라는 식으로 취급한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의 스피커 디자인 또한 소리를 위해 설계된 것이다. 스피커의 높낮이를 조절하기 위해 사면(斜面) 구조와 경사면을 이용해 디자인한 스피커 등 하나의 스피커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실험 과정을 거친다.
“화려한 외관에만 치중해 스피커를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다만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무게가 늘어났고, 이 바람을 담아 스피커를 디자인했죠. 단순히 ‘멋있게 보여야지’ 논리로 어떻게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 스피커를 만들겠어요. 스피커엔 소리에 대한 제 바람도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죠.”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스피커는 크게 ‘혜성’ ‘큐브’ ‘셀레네의 말’ 시리즈로 구분된다. 우주의 별을 모티브로 한 혜성 시리즈 스피커는 동경(憧憬)의 의미를 가졌다. 작가는 눈으로 보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서 소리를 느끼는데, 별에서는 솔직하고 진실한 소리가 느껴졌다. 이 마음을 바탕으로 밤하늘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혜성 시리즈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전시장 1관에 설치됐다. 별에 관한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편안한 음악을 주로 틀 예정이다.
이어 전시장 2관엔 큐브 모양 ‘수직과 수평’ 스피커가 있다. 유 작가는 이곳을 “힐링의 공간”이라 강조했다. 여기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쏴아 하는 시원한 소리가 청량감까지 들게 하는 공간이다. 이 소리는 울진 앞바다에서 파도가 치는 소리다.
“어머니가 아이를 가지면 아이는 양수에서 헤엄을 치죠. 물속의 화이트노이즈를 태생부터 자연스럽게 듣고 자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물소리를 들으면 편안함을 느끼곤 해요. 이 편안한 감성을 전시장에서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눈을 감으면 앞에 정말 바다가 펼쳐진 것 같은 공간감도 재현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시장 3관엔 ‘셀레네의 말’이 있다. 기원전 4세기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에 있었던 셀레네의 말이 모티브다. 셀레네의 말은 달의 여신이 모는 마차의 말 두상인데, 이것을 스캔한 뒤 음질과 형태에 맞게 재구성해 스피커로 만들었다. 이 스피커로는 하루에 한 번씩 관객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 계획이다. “소리와 역사는 하나의 동일한 주제”라는 생각에서 이뤄진 작업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미래를 바라보는 지혜로 삼습니다. 따라서 역사는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다뤄져야 해요. 왜곡 없이 소리를 전달해야 한다는 제 작업관과도 같았죠. 그래서 역사적 소재를 꼭 스피커로 구현해보고 싶었어요.”
왜곡된 소리가 판치는 이 세상. 그래서 그저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들려주려는 유 작가의 작업은 더욱 인상 깊다. 전시는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2017년 1월 3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