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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요하네스버그] 백인·非백인 나눠 입장하는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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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2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12.05 09:22:03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6일차 (상파울루 → 요하네스버그)

상파울루 공항 A22 게이트의 해프닝

요하네스버그행 남아공 항공기를 탑승하려는 데 문제가 생겼다. 남미에서 남아공으로 입국하는 여행자들은 모두 황열병 예방접종이 필요하다며, 나는 그것이 없다고 비행기를 태우지 않는다. 내일(자정이 지났으므로 사실 오늘) 예방접종을 한 후 다시 오라니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열대 지역에는 가지 않았다” “도시 부근만 다녔다” 등등의 설명을 했으나 통하지 않는다.

게이트 책임자와 대화를 요구했다. 규정을 보여 달라고 하니 책임자는 모니터 화면을 띄워 규정을 설명해 주는데, 남아공 24시간 이내 통과여객(transit passenger) 예외 조항이 눈에 들어온다. 얼른 그 예외 조항을 거론하며 나는 24시간 이내 통과승객일 뿐이고(사실 나의 경우, 요하네스버그 환승 대기시간은 하루가 넘는다) 규정이 요구한다면 요하네스버그 공항 터미널 밖에 나가지 않은 채 공항 내 트랜짓 호텔에서 잘 것이라고 둘러대고 간신히 항공기 탑승 허가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탑승하자마자 항공기는 문을 닫고 새벽 2시 40분 이륙한다. 큰일 날 뻔 했다. 

남미 대륙을 떠나며

우여곡절 끝에 올라탄 항공기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쉰다. 3주일 전 바로 이곳 상파울루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시작한 남미 여행이 끝났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비행기로, 버스로, 열차로, 그리고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서 구석구석 누비고 다니느라 정든 대륙을 떠나는 감회가 깊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대륙, 전 세계 인구의 6%, 전 세계 GDP의 7%, 지구 육지 총면적의 12%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대륙이다. 무엇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좋다. 문명이 발달하고 소득이 앞선 그 어떤 지역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소박함과 여유가 남아있는 곳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는 그들의 삶이 넉넉하지 않다. 그러나 물질이 행복을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 대륙을 다니면서 느끼고 또 느꼈다.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 박물관은 출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백인(White)과 백인이 아닌 사람(Non-white)을 구분한 문을 지난다. 사진 = 김현주

▲1990년 넬슨 만델라가 석방 때 이용한 승용차가 전시돼 있다. 사진 = 김현주

다시 요하네스버그로

항공기는 만석이다. 비오는 상파울루 공항을 깔끔하게 이륙한 항공기는 동쪽으로 계속 날아간다. 옆자리에는 유리(Yuri)라는 이름의 브라질 남성이 탔다. 페트로브라스(Petrobras) 브라질 국영석유회사 직원인데 자기도 브라질 동쪽으로는 처음 여행가는 길이라고 한다.

항공기는 9시간 걸려 남아공 시각 오후 3시 30분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대에서 과연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을 요구할까? 일단 입국 시도는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열감지기 체크만 있을 뿐 아무도 예방접종을 요구하지 않아 무사히 요하네스버그 공항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호스텔에서 보낸 차량을 만나 편안하게 숙소로 이동했다. 공항에서 가까운 호스텔은 완전히 전원 단지 같다. 뜨고 내리는 항공기 소음만이 들릴 뿐이다. 긴 여행 끝에 녹초가 된 몸을 편안히 쉬게 한다. 해발 1800m 고원 도시 요하네스버그의 여름 저녁이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27일차 (요하네스버그 → 홍콩)

세계가 격려하는 나라

시차 때문에 밤새 여러 번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상쾌한 아침이다. 새소리에 잠깨어 아침 7시 숙소 무료 셔틀을 타고 공항으로 나왔다. 셔틀을 함께 타고 나온 케냐 여성이 나의 긴 여행에 행운을 빌어준다.

공항 수하물 보관소에 가방을 맡기고 낯익은 가우트레인(Gautrain) 공항철도를 타고 시내로 향한다. 어디를 가도, 백인이건 흑인이건 사람들이 친절하다. 흑백 혼성 커플도 자주 눈에 띈다. 월드컵을 치른 성숙한 나라 아닌가. 세계가 격려해 주는 가운데 이 나라가 과거의 아픔을 딛고 쑥쑥 커나가기 바란다. 시내로 가는 고속도로는 출근 차량들이 가득하다. 열차는 공항에서 시내 샌튼(Sandton)까지 20분 만에 닿는다. 여기서 환승해 로즈뱅크(Rosebank)역에 도착하니 요하네스버그 시내 중심까지 버스로 연결해 준다.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은 흑인들의 투쟁 기록 및 인종차별에 맞선 사람들의 역사를 전시한다. 사진 = 김현주

요하네스버그 도심 풍경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다는 칼튼센터(Carlton Center)의 전망 탑과 함께 즐비한 고층빌딩이 시야에 가까이 들어온다. 출근 인파에 섞여 아프리카 대륙 최대 도시의 아침 풍경을 맛본다. 높지 않은 언덕이 오르내리는 요하네스버그는 유럽과 미국의 도시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우아한 모습이다. 적당한 지점에서 버스를 내려 잠시 걸으니 파크 스테이션(Park Station)이다. 요하네스버그 한복판까지 왔지만 여기는 완전히 흑인 지역이다. 잠시 시내를 걷다가 택시 승차대를 만나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Apartheid Museum) 왕복 요금을 흥정한다.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은 요하네스버그 중심에서 남서쪽 외곽인 골드리프시티(Gold Reef City)에 있다. 이곳에는 19세기말 금광을 재현한 민속촌, 카지노, 테마파크가 들어서 있다. 골드리프시티로 가는 고속도로 양옆에는 공장과 산업물류기지가 들어서 있고 중국인들이 투자한 거대한 복합쇼핑공간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슴 뭉클한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 입구에는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단지 쇠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신장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넬슨 만델라의 글이 새겨져 있다. 함께 서 있는 일곱 개의 기둥은 인종차별 철폐 이후 남아공이 채택한 헌법이 표방하는 일곱 개의 가치, 즉 민주주의, 평등, 화해(reconciliation), 다양성, 책임감, 존중(respect), 그리고 자유(freedom)를 각각 상징한다.

박물관은 출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백인(White)과 백인이 아닌 사람(Non-white)을 구분한 문을 지난다. 나는 입장권이 무작위로 표기해 준 Non-White Only 게이트를 통과해서 박물관에 입장했다. 인종 분류 심사대를 지난다. 흑인(반투), 유색인(흑인 혼혈), 아시아인, 그리고 백인(European)으로 분류하는 인종 기준에는 물론 많은 오류가 있었다고 한다. 같은 가족이 서로 다르게 분류돼 다른 인생을 살아야 했는가 하면 중국인이 백인으로 분류된 사례 등 수많은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졌다. 백인으로 분류된 사람이 누리게 되는 혜택은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그야말로 생활 전반, 인생 전반에 걸친 것들이었다. 

▲도시 중심 로즈뱅크(Rosebank)의 화려한 거리. 사진 = 김현주

이어서 만델라 전시실에는 1990년 그가 로벤 감옥에서 석방될 때 타고 나온 빨간색 벤츠 승용차가 전시됐고, 그의 연설 동영상이 반복 상영된다. 1995년 럭비 월드컵 결승전에 남아공 주장 백인선수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 화합의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숨죽이고 지켜보던 10만 백인 관중을 울렸던 일화도 기록됐다.

이어서 흑인들의 투쟁 기록이다. 1976년 SOWETO(Southwest Township) 봉기로 시작된 각종 인권 운동, 아프리카민족회의(ANC, African National Congress)의 활동 기록은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숱한 피의 대가로만 얻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소웨토 봉기는 1976년 남아공 백인 정부가 모든 과목을 아프리칸스어(Afrikaans)로만 가르치겠다는 교육법 개정안을 내놓자 이에 대한 반발로 소웨토 지역에서 발생한 학생 시위 사건이다. 시위자 중 한 명인 헥터 피터슨(Hector Peterson)이 경찰 총에 맞아 죽자 소웨토 및 남아공 전역으로 흑인들의 봉기가 이어진다.

구역법(Areas Act)을 비롯한 각종 차별 정책에 관한 기록도 생생하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위해 1948년부터 1971년 사이에 수십 수백 가지의 각종 법령(Act)들이 제정됐다고 한다. 남아공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기록도 상세하다. 과거 유럽의 식민지를 겪었던 아시아, 아프리카 신생국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남아공에 대한 제재는 아랍, 북미와 유럽으로 번지게 된다.

OPEC 산유국 연합은 남아공에 원유 수출금지라는 강경 제재까지 들고 나왔다. 이에 놀란 보타(Botha) 정부의 유화정책, 그리고 마침내 1990년 만델라 석방까지 이어지는 격동의 남아공 현대사가 기록됐다. 끝으로 만델라가 이끄는 ANC와 백인 정당 NP(National Party)가 대결한 1994년 선거와 ANC의 승리, 그리고 새 헌법, 민주정부, 그리고 화해와 존중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전시 내용이 끝난다.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 입구에는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단지 쇠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신장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넬슨 만델라의 글이 새겨져 있다. 사진 = 김현주

가슴 뭉클한 박물관이다. 화해와 존중도 평등과 자유만큼 숭고한 가치라는 메시지가 가장 강렬하게 와 닿는다. 관람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갈대밭에 바람이 불어 마음을 다스려준다. 흑백 커플이 데이트하는 모습이 오늘따라 아름답게 느껴진다. 대기하고 있던 택시로 로즈뱅크역까지 나와 가우트레인을 타고 공항으로 되돌아오니 오후 2시쯤 된다. 

홍콩행 항공기는 오후 5시 20분 정시에 출발한다. 또다시 13시간, 1만 700km를 가야 하는 먼 길인데 이번에도 다행히 옆 좌석이 비었다. 세상은 넓고 아름답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멋지다. 그 넓은 세상과 그 멋진 사람들 중의 몇 만분의 일이라도 느끼고 만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홍콩행 항공기 승객들은 대부분 홍콩인 아니면 중국인이다. 남아공 항공기는 한없이 큰 인도양을 북동쪽으로 난다.


28일차 (홍콩)

홍콩 산책

13시간의 기나긴 비행 끝에 홍콩 시각 낮 12시 30분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여긴 동양이다.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 새삼스럽다. 시설이 낙후하거나 협소한 남미 지역 공항을 다니다가 아시아의 대표 공항을 다시 만나니 세계 최고 공항 중 하나임이 분명히 느껴진다. 인천행 아시아나 항공 연결을 위한 환승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12시간) 홍콩 시내로 나간다. 전에 없던 새로운 건축물들이 올라서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바다뿐이다. 홍콩이 잘 나가고 있음을 말해 준다.

▲케이프타운 인종분류국(1959~1991) 건물 앞 벤치가 그 시절의 아픔을 되뇌어준다. 사진 = 김현주

소고기 탕면 한 그릇 시켜 먹는다. 음식 이름을 몰라서 그림만 보고 시켜도 광동지방 국수는 반드시 맛있다. 한 달 만에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행복하다. 어둠이 내릴 때까지 거리를 산책한다. 홍콩의 야경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네온사인이 화려한 침사추이 거리를 걷자니 세계 각국 말이 다 들리는 것 같다. 홍콩은 세계인 누구에게도 매력적인 도시다. 9시간의 짧은 홍콩 나들이를 끝내고 공항으로 돌아와 새벽 1시 항공기 출발을 기다린다.


29일차 (홍콩 → 서울)

에필로그

새벽 1시 출발 인천행 아시아나 항공기는 만석이다. 한국으로 단체 여행가는 홍콩 사람들이 내 주위에 가득하다. 홍콩국제공항을 이륙한 항공기는 동북쪽 방향으로 속력을 내 한국 시각 오전 5시 10분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한 달 동안의 남아공-남미 대장정을 무사히 마친 감회가 솟구친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 속 미지의 대륙을 향해 인천공항을 떠난 후 거의 한 달이 지났다. 적도에서 남위 53도까지, 해수면부터 해발 3400m까지 오르내리며 수많은 기후를 겪었고 수많은 지형을 지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워낙 대륙이 방대해 남미에서만 1만 2000마일, 1만 9000km를 넘게 이동한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공항 대합실에서 혹은 버스 터미널에서 지새운 밤도 몇 번 있었던 강행군이었다. 지금 여기 건강히 돌아온 것이 스스로 대견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마음속에는 허전함도 크다. 아름다운 장면과 생각들을 신체의 오감과 기억의 창고 속에 가득 담아왔지만 너무나 먼 대륙이어서 언제 다시 가볼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내 조국의 눈부신 성취의 현장을 목격하고 온 것도 나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 넣는다. 칠레, 페루에서 본 한국 차의 물결, 에콰도르에서 본 한류의 물결, 남미의 모든 국제공항을 뒤덮은 한국 기업들의 대형 광고판…. 모든 것이 시작일 뿐이다. 그동안 나는 이 거대한 대륙을 너무나 몰랐다. 협소했던 나의 세계관이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초라했던 나의 인생관이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충만해졌고 부질없는 욕망을 쫓아 헐떡거렸던 나의 일상이 침잠의 시간을 가졌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 인간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면 이 여행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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