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우리나라 민예, 즉 공예품은 옛날에 고물딱지 취급을 받았어요. 그저 고물(古物)이었죠. 그러다 나중엔 서울 인사동, 황학동 등에서 조금 더 볼만한 것들이 골동품으로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나중엔 안목이 높은 사람들에 의해 아름다움을 가진 고미술로 격상됐죠. 그리고 이 안목이 높은 사람들 중 특히 비상한 안목을 가졌던 사람이 최순우 선생이었습니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이 본격 전시 소개에 앞서 한국 전통 공예와 최순우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가나문화재단은 문화재청, 혜곡최순우기념관의 후원을 받아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공예의 높은 미의식을 인식하고, 이를 대중들에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던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최순우(1916~1984)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마련됐다. 특히 올해 최순우 탄생 100주년을 맞아 최순우가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했던 ‘한국 민족의 조형기질과 미술 위에 드러난 한국적 특질 인식’의 의미를 되새기는 취지도 가졌다.
전시는 최순우의 기일 12월 15일부터 시작되는데, 시작에 앞서 김형국 이사장과 전시를 기획한 박영규 용인대학교 명예교수가 전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들은 일단 공예가 처한 현실을 꼬집었다.
박영규 교수는 “지금은 공예로 알려진 공예미술이 과거엔 민예미술, 즉 민중예술로 불렸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쓰지 않는 말이다. 서민적이고 소박한 미를 담은 것이 민예의 특징이었는데, 성격이 매우 다양했다. 정말 서민의 생활 속에서 쓰인 물건들이 있었고, 높은 기술이 사용되고 제작비가 높아 사대부가 쓰던 물건들이 있었다. 후자의 경우 소박한 미가 특징인 민중예술이라고 하기가 어려워 점차 공예로 이야기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폭넓은 범위를 가진 공예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정작 적다고. 그는 “공예는 소재도 다양하고, 담은 의미도 정말 다양한데 우리는 공예의 한쪽만 치우쳐서 보는 경향이 있다. 단순 장식품으로 여기기도 한다. 공예의 본질에 집중한 대규모 전시도 거의 없었다. 특히 6.25가 지나며 전통공예가 많이 꺾였다. 팔리는 형태는 제대로 만들지만, 비인기류의 공예품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예술인도 많이 생겼다”고 꼬집었다.
물론 현재에도 공예 관련 페어가 꾸준히 열리고, 전통과 현대의 공예를 결합하는 시도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전통 공예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진정 중요하다는 게 박 교수의 말이다.
“전통 공예와 현대 공예의 컬래버레이션이 요즘 트렌드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현대 공예에서 근본 재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현대 공예가가 전통 공예의 뿌리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죠. 트렌드도 좋지만, 우리 공예의 근본 DNA를 살펴봐야 공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이뤄지고, 보다 미래 지향적인 작업들이 펼쳐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생각도 전시에 담았어요.”
1975년 최순우가 선보인 ‘한국민예미술대전’의 2016년 재현판
전시의 주요 키워드는 ‘공예’와 ‘최순우’다. 특히 1975년 최순우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였던 ‘한국민예미술대전’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당시 전시에 나왔던 ‘화각장생문함’ 등이 오랜 세월을 지나 다시 관람객들을 만난다.
박 교수는 “한국민예미술대전이 이번 전시를 마련하게 된 특별한 계기이기도 하다. 다양한 공예물성과 아름다운 미를 지닌 공예품들이 대규모로 한꺼번에 전시된 일은 전무후무했다. 많은 관람객들이 이 전시를 통해 전통 공예품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았다. 이후 사회적으로 민속공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김과 동시에, 공예품 수집붐도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전시는 공예에 대한 최순우 선생의 애정에서 비롯됐다. 전통 공예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을 때 최순우 선생이 전시될 유물을 선정하는 과정을 지켜본 기억이 있다. 당시엔 잘 몰랐던 그 과정이 40여 년을 지나는 동안 계속 기억에 남았고, 나중에서야 이해가 조금씩 가더라”며 “이후 내가 조선시대 공예품을 대할 때 근본과 척도를 쌓는 데 도움을 줬고, 이번 전시품 선정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고 덧붙였다.
김형국 이사장 또한 “미술계의 권위 체계 아래 대량의 공예품을 박물관 자리에 옮겨 놓은 것 자체가 혁명적 조치와도 같았다”며 “이번 ‘조선공예의 아름다움’ 전시는 ‘한국민예미술대전’의 2016년 재현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시품은 조선시대 후반 공예의 다양한 소재와 제작기법을 중심으로 선정 과정을 거쳤다. 여기서의 특징은 서민적인 공예품과 사대부가 쓰던 공예품이 어우러졌다는 것. 그리고 현재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예품들은 가급적 지양했다. 이 과정에서 “오랜 인연의 개인 소장가들이 전시에 도움을 줬다”고 박 교수는 밝혔다.
“박물관 소장품은 이번 전시에 넣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지 많이 소개됐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이죠. 전시는 모두 개인 소장품을 어렵게 모아서 구성했어요. 전시가 끝난 뒤 소장자에게 모두 다시 돌아갑니다. 아주 서민적인, 주변에서 쓰던 물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공예품과, 사대부가 쓰던 높은 수준급의 공예품이 이번 전시에 공존해요.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으려 했죠. 산발적인 형태 또는 한쪽에 치우치는 형태가 아니라 다각도에서 공예를 바라보는 시도입니다.”
종이두루마리 3~4개를 꽂아 두던 ‘죽제지통’(조선 19세기), 천원지방(天元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이 네모지다)의 원리가 적용된 ‘철제은입사손화로’(조선 19세기), 어린이용 방한모자 ‘굴레’(1914) 등이 전시된다. ‘나전모란당초문상자’는 조선 16~17세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활짝 핀 모란꽃이 그려졌고, 각 측면엔 모란봉우리를 중심으로 줄기가 펼쳐지는 모습이 아름다워 눈길을 끈다. 아름다운 동시에 실용성을 갖춘 작품들이다. 이밖에 조형미가 뛰어난 물동이, 촛대, 주전자 등이 함께 전시된다.
선정된 작품들은 일상 생활용구로서의 공예의 본질에 접근해 배치된다. 다양한 물성과 기능성이 서로 조화되는 생활공간(사랑방, 규방 등)을 중심으로 분류된다. 전시에 맞춰 도록도 발간된다. 석/초 분야에 신탁근 온양민속박물관 고문, 금속 분야에 홍정실 전 원광대 교수, 도자 분야에 윤용이 명지대 석좌교수, 목/나전 분야에 박영규 교수, 종이 분야에 임영주 전 전통공예전시관 관장, 자수/섬유 분야에 최은수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장신구 분야에 최혜성 숙명여대 박사 과정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의 글과 도판 해설이 수록된다.
박 교수와 김 이사장은 “이번 전시는 한국 공예를 제대로 세우고 바라보는 자리”라며 “공예를 전승하고 있는 예술가들에게는 선인들의 뛰어난 공예품을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 일반 관람객에게는 전통 공예의 아름다움을 재인식하고 자부심을 갖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전시는 가나아트센터에서 12월 15일~2017년 2월 5일.